2008년 8월 3일
눅13:10-17 진정한 안식을 얻으라
 
은혜 가운데 2008 가족수련회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것은 수련회에 참석치 못하신 분들이 주일예배에 불참케 됨이 앞으로는 가족수련회를 어떻게 치를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안식일 날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니 때마침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고 예수님은 그녀가 요구하지도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은혜로 그를 고치셨습니다. 이는 오직 주님만 베푸시는 능력이요 그만 가지고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18년간 고생한 이 여인을 고치고 나니 그곳의 회당장이 이를 못 마땅히 여기면서 왜 안식일을 거역하느냐고 질책을 하였습니다. 이때에 주님이 "이는 아브라함의 딸인고로 고치어야 하며 나는 의료행위가 아니고 마치 너희들이 안식일날 소나 나귀를 기갈을 면하기 위해 물을 먹이는 것과 같이 이 여인은 짐승들의 기갈과는 비교가 아니되는 18년간 장기간 고생한 자이니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 하시며 참 안식일을 지키는 교훈까지 하신 기사입니다.
1. 이 여인은 신체적으로 동정을 받을 만한 처지였습니다.
이 여인은 18년간 귀신에 붙들려 허리를 피지도 못하고 구부러진 상태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지낸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생활하기가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며 살아온 세월 이었습니다.
이 같은 처지를 잘 아신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 그를 그냥 돌려보내시지를 아니하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특별히 이 여인은 예수의 원수인 마귀로 부터 이같은 불행을 받고 있으니 더욱더 동정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 여인의 신앙을 보아서라도 동정을 받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병이 장기화 되면 실망하고 낙망하여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주를 떠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초기 증세에는 하나님의 어떠한 섭리가 있다고 하며 기도하고 이 시험을 이기어야 된다고 하다가 좀처럼 낫지 아니하면 기도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섭리도 없어지고 의술에만 의존합니다. 그래도 고치지 못하면 생을 포기하고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어떠한 심적 동요 없이 주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로 부터 동정을 받아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기다림이 정말 필요 합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병자의 기다림. 성전미문의 앉은뱅이의 기다림 / 끈기
2. 이 여인은 예배의 참예심이 대단한 신앙자 였습니다.
허리를 피지 못하는 불구가 된 육체로 여인은 회당에 모이는 예배시간만은 늘 빠지지 아니하고 꼭 참예한 신앙의 소유자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18년간 교회를 출입했지만 신의 도움도 얻지 못하고 세인들로부터 비난도 받으며, 신앙 생활하기엔 힘든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세상인 들이 바라는 육적 만족보다 자기가 믿고 있는 신관과 미래의 소망만 가지고 실망 없이 성전을 출입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 처지에 있다면 교회에 빠지지 아니하고 나갈 수 있는 신앙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만족스러운 일이 없어도 여인과 같이 신앙에 열의를 가져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에는 생명을 내걸고 지키라/ 윤중섭목사 의 사세청장 반문으로 인한 주일 예배 불출석 염려에 대한 간증 /한번이 문제/마귀는 연속공격
3. 타락한 모든 인간의 영적 상태를 묘사해 준 기사입니다.
꼬부라져 있는 상태는 죄악에 빠진 상태로 하나님의 얼굴조차 올려다 볼 수 없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시40:12)에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 사람들의 대개의 생활을 보면 자기들의 생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 매여 자유로운 몸이 못되고 속박적 생활을 하는 것을 봅니다.
본문의 여인은 꼬부라진 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그 고통이 18년간이나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환자는 예수를 만나서 그 고통이 제거되고 새로운 삶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나의 환경은 어떠한가요. 이 환자처럼 꼬부라진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면 오늘 예수 만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자유로운 생활, 고통이 없는 평안과 기쁨의 생애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11절을 주의 해서 묵상해 보십시요 " 18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 혹 지금까지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하는것, 지긋지긋한 가난에 억매어 사는것 등등이 혹 사단의 묶임으로 인한 장난이 아닌가? 만약 사실이라면 이겨야 합니다 ?아야 합니다.  특별히 마음의 꼬부라짐에서 벗어나라
4. 예수를 믿어도 불행은 계속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여인을 보시고 이는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후손. 축복의 자녀, 그런데도 18년 동안 고생 했습니다.
1)욥은 마귀의 시험으로 자기의 질병은 고사하고 자녀들의 생명 재산의 손실 부인의 배척 친구들의 조롱 등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기도 했습니다.
2)(눅16:19-31) 거지 나사로도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는데 죽는날 까지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며 살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백성들이 때로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연단을 통하여 온전케 하기 위해서(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는 까닭에(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였으니 /주마가편
*하나님의 은혜주심을 더 깨닫게 하기위해서 아픈 만큼 성숙하다/아파본사람 아픈자/봉사할수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휴가 차 뉴욕 방문중에 백도현권사/ 사명자 의 길로 들어섬 / 하나님의 깊은 섭리는아무도 모름 다만 순종의 차원에서 이해되는것임
*세상이 약하기 때문에 의인도 괴로움을 당함
5. 이날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이같은 은혜를 입지 못할 뻔한 것임
18년 동안을 귀신들린 이 여인은 어느날 강한 경련을 일으켜 꼬부라져 있었으며 조금도 피지 못하는 병신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러한 와중에도 불구하고 안식일마다 성전에 나왔다는 것이 이병을 고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은 명심하여 들어야 할 말씀이요 또한 이 여인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성도 가운데 공 예배에 참석을 소흘히 하는 자가 있습니다. 성도여 이 불구자처럼 언제나 예배에 참예하여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고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같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6. 어떤 피조물보다 가장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이 안식일에 축복을 베푸시는 것을 본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날 병고치시는 것을 불법이라고 질책하면서 다시는 이같은 일을 하지 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들의 소행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주일날에도 소나 말을 끌어다가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한데 나도 이 아브라함의 딸의 육신을 위한 나의 능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하신 뜻으로 그를 치료 시키신 것입니다. 또한 이 여인은 짐승이 아니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자녀이니 그녀를 치료해 주는것은 당연하다고 하신것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무엇보다도 많이 사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7. 안식일은 기쁨을 얻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17절에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여인을 절망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 기쁨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기적을 본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질병, 모든 고통, 모든 근심에서 해방되어 기쁨을 얻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오늘의 주일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통하여 사탄에 얽매인 죄의 사슬을 끊고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진정한 안식,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면 그것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사탄의 구속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자비를 베풀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안식과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배 의식으로 인해 우리가 하늘의 기쁨을 얻는데 방해를 받아서는 아니 될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께로 부터 치료를 받은 여인은 어떻게 보면 그 꼬부라진 몸으로 회당에 출입만 했지 어떠한 예배의식도 없고, 또한 목적의식이 분명치 못한 가운데 회당 뜰만 밟고 다닌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날도 예수님이 계셔도 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께서 먼저 보시고 고쳐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 여인과 같이 목적 없이 교회에 다니지 말고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께 모든 소원을 구하여 축복을 받아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찾으면 이 여인처럼 하지 못 한 것 까지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7월27일
요 9:1-12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가족수련회가 오늘 주일 예배로 마쳐지게 됩니다
지난 말씀들을 다시한번 정리해 보면 첫째날 저녁에는 야곱의 깨어짐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하면서 야곱의 거짓과 간사함을 깨뜨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야곱보다 더 사기꾼인 라반을 예비하여 놓으셨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당한 사건 우리가 만나는 사람 나를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사람, 사건인지 살펴보자는 말씀을 드렸으며 어제 저녁에는 가나안 땅은 저절로의 축복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음이 있어야만 농시를 지을수 있는 땅이기에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땅이기에 좋은 땅임을 말씀 했습니다.
오늘은 함께 읽은 말씀속에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제목으로 말ㅆ므을 전하고 자합니다.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낮은 곳에 임하소서"란 영화 속의 실제 주인공인 소경 안요한 목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신앙을 떠나 세속의 생활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하루하루 재미있는 생활을 하였지만 1975년 그의 나이 37살이 되던해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이상하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목숨을 연명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온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괴로워하면서 결국 아내와 이혼 후 지하철 계단에서 구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버려진 인간이라 생각하고 그날그날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목숨인데 어느 날 지나가는 나그네가 사업에 실패하여 한강에 가서 자살하려고 하다가 걸인 안요한을 보고는 말하더랍니다 "당신 같은 소경이며 거지도 사는데 나라고 못살겠느냐?"고 하면서 용기를 얻고는 안요한의 손을 잡고 "당신 때문에 나는 자살하지 않기로 하였소" 하면서 고마워하더랍니다. 그때 그는 자기 같은 쓸모없는 인간도 이 세상에 살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자기가 소경이 된 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새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어느면으로 보나 보람 있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기 어려운 한 불쌍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일생동안 예루살렘거리 한쪽 모퉁이에서 구걸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불행한 사람이 제자들 간에 화제가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의 죄이오니까, 그 부모이오니까?"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이 그대로 순종하자 곧 눈이 떠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육신의 눈은 건강하지만 영적으로 소경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이 눈이 밝아야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듯이 천성을 향한 순례의 인생길에서도 영적인 눈을 밝게 떠야 낙오되지 않고 잘 찾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가 고침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어두웠던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새롭게 바라보는 은혜 충만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과거에 집착하는 옛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1-3절).
제자들이 소경을 만나 "이렇게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불행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지은 죄에 대한 결과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기치 못한 재앙은 죄의 업보로 써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와 같이 나면서부터 불행을 타고났으면 그 불행 역시 누군가의 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은 상당하게 성서적 근거가 있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질병이나 고통은 죄로 말미암아 오기도 하고 부모의 죄로서 자손에 미친다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의 죄로 근원이 되기도 하고 또한 병의 원인은 죄 때문이라고 성경 여러 곳에서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날 때 부터 소경된 이 불쌍한 사람에 대해서 아주 냉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소경을 대하는 그들은 아주 사색적인 눈초리와 배타적인 사고로 그를 취급했습니다.
그를 향한 뜨거운 동정심이나 불타는 사랑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지나가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비참함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주님께서는 그 소경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3절)이라고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인식의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처럼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주어진 문제를 놓고서 그것이 누구 때문인지 따지고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린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항상 과거에 얽매여 후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죄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모든 과거지사를 덮으시고 치유하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것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과거로만 향하던 우리의 발걸음을 돌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여러가지 재난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일만 생각하고 한숨만 쉬면서 탄식하는 경우가 많습니! 다. 어찌해서 이런 고통이 나에게, 우리 가정에 올 수가 있느냐고 넋두리하기에 바쁩니다. 우리는 그런 고통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하고 찾아야 합니다. 영어의 'think' 생각하다 와 'thank' 감사하다는 뜻이 전혀 다른 말이지만 같은 어간을 가지고 있다합니다 아마도 이 두 단어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은 무엇이든지 깊이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들고 또한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자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고 가르치시는데 우리도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찾으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만 매여 있으면 안됩니다. 낳기도 전에 자기 죄 때문이거나 부모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으니까 한탄이나 하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2.만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을 보게됩니다 (4-6절).
예수께서는 이상한 방법으로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는데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성경에서 병자나 장애자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은 여러가지 방법을 쓰셨습니다. 어떤 때는 손을 대시며 고쳐 주시고, 어떤 때는 말씀만 하시고, 또 어떤 때는 큰 소리로 명하시며 귀신을 쫓기도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또 새로운 방법을 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다양한 치유의 방법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치시는 방법이 아니라 그때 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주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와 친절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될텐데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신 것은 그 불쌍한 자에게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이 보이더라도 우리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주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손길이 아픈 환부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입니까?
우리 주님의 사랑은 너무 깊고 놀라운 것입니다.
방송광고 가운데 공익광고 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적으로 유익 내지는 계도하는 광고입니다. 광고중 배달소년이 던져넣은 신문이 높은 벽에 맞고 떨어지자 샐러리맨은 소년 대신 신문을 주워서 던져넣는다. ‘신문 대신 던져주는 시간 6초’혼잡한 건널목, 할머니를 부축해 드리며 건네는 인사, “할머님, 조심해서 가세요.”어르신과 함께 횡단보도 건너는 시간 23초’후배에게 커피를 타주며 하는 격려. “김대리 어제 야근했어? 쉬어가면서 해.”‘후배에게 커피 타주는 시간 27초’혼잡한 버스 안에서 내리려는 여학생이“잠시 만요”하자 나오는 자막. ‘버스벨 대신 눌러주는 시간4초’그리고 엔딩 자막과 내레이션.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시간, 하루1분이면 충분합니다 6.23.27. 4
신학자 칼 바르트 교수는 성경의 진리를 한 마디로 결론 지은다면 "성경은 결국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보았네'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늘의 권세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험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주님의 사랑의 표현이 바로 나면서 소경된 자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어두운 영적인 눈에도 그의 침이 묻은 진흙을 발라주십니다. 이 시간 예수의 사랑의 침이 우리의 영혼에 흠뻑 젖도록 발라주시길 바랍니다.
3. 주님은 순종할 때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7-12절).
침으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주신 주님께서 이제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의 식수의 근원으로써 성전 남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저수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그 소경은 이런 시시한 짓이 어디 있느냐고 그만 항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공연히 자기의 눈을 침으로 이긴 진흙으로 발라놓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한다고 귀찮아하며 짜증을 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눈이 밝아져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주님도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빌2:5-8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빌 2:9-11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셨듯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모두가 하나님께 절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크게 쓰임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절대 순종했습니다.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들도 순종할때는 복을 받았지만 불순종할 때는 비참한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특히 이 소경 거지에게는 진흙을 이겨 눈에 발랐기 때문에 씻으러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순종할 수밖에 없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데도 마음이 강팍해져 더욱 불순종합니다. 더 곁길로 갑니다. 이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곁길로 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즉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축복 받는 길입니다. 나면서 소경된 거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아니 영적인 소경이 되어 진리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던 우리의 눈이 확 뜨여져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매일매일 감격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과거에 사로잡혀 환경과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구하는 자에게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주님께 순종하여 우리의 영적인 눈을 고침 받고 우리도 광명의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땅에 보내셨으며,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7월20일
창21:8~21 이스마엘의 회복
금주 말씀은 김홍일 선교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선교사님 내외분게 감사 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7월13일
마17:24-27 왜 세금을 안내십니까?
하루는 예수님 일행이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 세금 징수원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이 반세겔을 내지 아니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여기 반 세겔이란 당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인의 남자 모두에게 부과된 성전 세로서 유대인들이 출애굽한 후 시내 산에서 인구 조사를 한 직후에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내었던 생명의 속전, 즉 애굽에서 건져주신 생명의 대가로 여호와께 바쳤던 양과 같은 것입니다.
이 세금은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의무적으로 부과 된 것이었으며 예수님 당시에도 느헤미야의 수정된 의무조항에 따라 매년 유월절 전인 봄에 바쳐야 했으며 이 세금은 성전 창고에 보관했다가 성전 사업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금을 주님이 내셨느냐고 물어 본 것입니다.
이들은 세금을 내냐 안내냐 하는 문제보다는 예수님은 성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의도로 즉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모략을 가지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금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목회자 세금제도 비교, 담임목사는 아름다운교회 SELF-IMPOLOYMENT TAX )
1. 예수님이 세금을 내신 이유는?
1)저희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7절 저희로 오해치 않게 하기 위하여..
원어/히나 데 메 스칼달리소멘 아우투스)- 직역하면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실족지 않게 하기 위하여'(But that we may not offend them)가 된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성전세도 안내는 사람이라고 오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성전세를 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세를 납부할 의무가 없으신 분입니다 성전세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해받지 않도록 자진하여 납세를 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오해케 한다'는 '스칸달리소멘'은 단순히 넘어뜨린다는 뜻이 아니라 아예 함정에 빠뜨려 치명적인 피해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오해가 있으면 미움이 옵니다 *불화가 생깁니다. *협조가 안됩니다 *사랑이 단절됩니다 *오해가 극심하면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인간들의 이같은 행동의 가능성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이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세금을 내신 것입니다 눅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것이 없을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오해케 하는 행동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2)예수님이 세금을 내신 이유는 의무를 다 하며 사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1)셋돈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거나 믿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국민의 한사람으로 보았으므로 국민이면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세 를 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표면적으로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 하는 것을 옳게 여긴 것입니다.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 공무원이면 공직의 의무를 * 사원이면 사원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이면 성도의 의무가 있습니다.
(1)교회에서 헌금의 의무 : 구약의 성전 신약의 교회 유지를 위한 헌금 (출30:12 생명의 속전)
(2)사회에서 납세의 의무 : 국가 발전과 의무를 위해 국가의 국세를 내어야 합니다 (롬13:7)
(3)단체에서 회비의 의무: 교회나 사회단체에서의 회원된 의무를 다할 것이며 (롬15:1) 교회의 직분자이면 직분자로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의무를 못하면 모든 자격에서 박탈되는 것입니다.
3)예수님이 세금을 내신 것은 본이 되기 위한 뜻입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면에서는 성전 자체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성전세를 안내도 되지만 표면적으로는 유대 사회의 랍비며 지도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본이 되기 위해서 내신다는 뜻입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은 본을 보이신 예가 많이 있습니다.
(1)예수님은 세례를 안 받아도 되지만 죄인들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2)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하는데도 섬기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3)예수님의 기도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신성을 가지신이가 기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약한 인간들에게는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교회의 봉사 생활에도 본이 되고 율법의 제도에도 본을 보여야 하며 사회에서의 공중도덕과 인간사의 윤리도덕을 지키는 데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2. 순종 봉사자에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제자들의 세금을 주님이 내어 주시었습니다. "너는 한 세겔을 얻으리니 그것으로 나와 너 두사람을 위한 세금으로 가져다 내어라"하셨으니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과 베드로의 세금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자들은 그와 함께 그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와 함께 빛날 것입니다. 여기에 베드로를 위하여 지불한 것이 그에게 베푼 주님의 호의였습니다.
Open its mouth and you will find a four dracma coin 낚시를 던지는 것은 베드로의 몫, 고기안에 동전이 있게하심은 주님의 기적
(성직자의 세금제도) 소득세 면제 사회보장세 납부 일을 하라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 자기의 밥벌이는 자기가 하는 것이다
3. 예수님의 관찰력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다 속에 있는 고기 입에 돈이 들어 있는 것까지도 아신 예수님입니다. 이로 보아서 예수님은 사람의 가슴속과 머리속에 무엇이 들어 있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까지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십니다.
1)나다나엘의 간사함이 없는 것을 아시었습니다 (요1:45).
빌립집사의 전도를 받아 예수 앞에 나올때에 "이때에 나다나엘이 나를 어떻게 아시나이까 하니 내가 너를 무화과 나무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2)과부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도 관찰하신 예수님이십니다(막12:41-44).
많은 사람들이 연보를 하는데 어떤 자는 많은 액수로 헌금하고 어떤 자는 적당하게 하지만 여기 한 여인은 "두렙돈 곧 한 고드란트"을 헌금했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 여인은 참으로 헌금을 많이 했다고 극찬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칭찬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할 때에 주님은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임의로 하였지만 이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주님의 관찰은 많은 사람들의 헌금하는 것까지 보신 것입니다.
야러분의 헌금 생활은 어떻습니까? 준비하여 드리라 정성으로 드리라 . 교회에 와서 체크 쓰지 말라
3)한 여인이 군중속에서 자기에 옷자락을 만진 것도 관찰하신 예수님이십니다(막5:25-34).
12년간 혈류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자기의 불치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생기어 손을 댄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고 하시니 제자들은 "지금 우리의 일행이 많아서 서로 부딪쳐서 잘못 손을 댄것 같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찰은 한 여인이 고의로 행한 것을 아셨습니다. 또한 그 여인은 예수님이 벌써 자기의 행위를 알고 계심을 짐작하고 그 앞에서 떨며 발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은혜를 입어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소원을 알고 계신다 나의 상처 받은 심령을 알고 계신다 나의 병든 몸을 알고 계신다 구하라 만지라
4. 이는 물질관이 분명하라는 뜻입니다.
신안생활하면서 물질관이 분명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질은 제2의 생명 , 인격척도
1)(마22:15-22)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세금에 관한 질문을 할 적에 이에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국민의 의무인 국세는 나라에 내고 하나님께 드릴 헌금은 감사함으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십일조와 헌물)
2)(눅19:4)에 삭개오는 "만일 뉘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예수님 앞에 맹세를 했습니다 삭개오는 세금을 거두어 드리던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세금을 거두던 자이므로 혹시나 세금을 거두다가 잘못 계산해서 부정이 되었다면 그 액수에 사배나 갚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물질관이 분명해야 함을 잘 묘사한 기사이기도 합니다.(출22:1)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 찌니라"고 했습니다.
3)수7:22-26에 아간이 전쟁터에 나가서 노획한 물건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간은 전쟁터에서 노획한 물건 중 외투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얼마를 감추어 두었다가 여호수아가 이 사실을 알고서 공개하므로 그는 그 죄 값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부터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4)행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물질관이 분명하지 못해서 멸망 받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게 자기의 전 소유를 팔아 헌금한다하고서 이중 절반은 감추어 두고 절반만 헌금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우리는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바치라고 명한 십일조 헌금도 꼭 바쳐야 영과 육이 살게 될 것입니다. 영과 육이 사는 길은 바로 물질관이 분명한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저희로 오해하지 않게 하려고 성전세를 주도록 베드로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와 구속 사업의 성취를 위하여 쓸데 없는 오해와 충동을 피하려는 것이며 이것은 지혜롭고 덕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넓은 아량과 양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세리에게 쓸데 없는 오해와 충돌을 피하여 거룩한 사업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양보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다 같은 죄인들이 하찮은 일에도 사소한 감정을 가지고 쓸데없는 오해와 충돌을 불러 일으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가정과 국가에 해가 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나의 작은 양보와 희생 그리고 관용만 있으면 잘 해결 될 일을 나의 고집과 혈기로 주장하다가 일을 그르치고 화를 초래하는 일들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양보하시면서 복음전파와 구속사업 성취에 충성을 다하신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고 나의 고집을 양보하며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주님의 사랑을 성취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움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7월 6일
막9:14-29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마가복음9장은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장면은 지난 두주전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던 산 위에서의 예수님의 변화의 장면이고 한 장면은 산 밑의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올라간 산 위에서는 예수님의 변화되어진 모습으로 인한 은혜의 장면이었으나 산 밑에서는 남은 제자 아홉명이 비난을 받고 있는 비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한 아버지가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제자들은 좀 더 신중하게 예수님이 내려 오실때까지 환자를 대기 시켜 놓아도 좋았을 터인데 아마도 서로 먼저 자기가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들은 막9:6-7절에서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둘씩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귀신을 내 쫓았으며 병도고치는 능력을 행사 했습니다 불과 며칠전의 경험이었기에 오늘도 할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덤벼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지금은 두사람씩 파송할때와는 달리 아홉명이나 되니 서로 경쟁적으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모든 제자들이 한결같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호령 했습니다... 이때 귀신이 나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제자들은 열심히 소리를 질렀지만 결과는 형편없이 실패 했습니다.
주위에 섰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그들은 스스로 놀라며 초조해 지고 초라해 졌을 것입니다. 그 순간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난처하고 실의에 빠진 순간 이었겠습니까? 이제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그간의 사정을 듣고 저들의 불신을 책망하시면서 귀신을 내어 쫓으십니다. 때론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으로 나타날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교회 다니는것 사람들이 다 압니다 직분자임을 다 압니다 그래서 때로는 저들이 우리에게 영적 도움을 요청할때도 있습니다.  그때 나타나는 우리들의 모습들의 예화
여기서 제자들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하나는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귀신이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주님의 이름으로 안되는 것입니까?
2)또 하나는 자기들의 경험과 지식입니다 지난날과 똑같은 방법으로 시도 했는데 그때는 되었던 일이 오늘은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왜 안되는 것입니까? 바로 여기서 그들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심각하게 물어봅니다 28절/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종용히 묻자오되.. (헬)이디안 에페로톤 Private Question One's own 개인의 사사로운 , 뚜렷한 His disciples asked him privately (푸라이버시)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때로는 종용함이 정말로 필요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용하여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18:4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도다/ 감찰/ 빛을 비추다
격동하는 마음이나 급한 생각이나 자기 명예만을 앞세우거나 남의 평판에 신경을 쓰다보면 무슨 일이든 제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또한 자기 체면이나 욕심을 챙기거나 초조하게 굴면 바른 능력을 행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종용히 묻고 있는 것입니다.  Why couldn't we drive it out?.... 그들은 벌써 하나의 대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아이의 아버지가 나의 믿음이 없는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소리 지를 때에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그 믿음을 도와서 어린 아이를 고치셨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예수님도 19절에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제자들은 믿음이 문제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할것이 없느니라 하신 무서운 선언을 그들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것의 결국은 믿음이 문제임을 알았으므로 이제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믿음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을 통해 알아보자
1.산 밑의 제자들은 믿음을 지식으로 오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나 성경에 대한 지식과 믿음은 별개입니다. 추상적인 지식이나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나 수긍이 믿음이 아닙니다. 특별히 오래 믿었던 사람들이 이런 타성과 착각에 빠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좀 알고 상식적인 신학적 지식을 가진 것이 곧 믿음인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는 별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능력이며 권세입니다 막16:2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신앙 경력과 믿음을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을 하신후 막10:31 먼저 된자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자가 많으니라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때로는 처음 믿는 사람이 아주 순수해서 오히려 깨끗한 믿음으로 승리할수 있습니다. 담배는 처음 믿을 때 끊어야지 /성경을 알면 담배 피지 말라는 성경 말씀이 어디 있냐?
오랫동안 종교의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믿음이 타성화 되어 알맹이가 없는 형식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이 있는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영국의 부흥전도자 웨슬레가 미주 인디안들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받아 미국으로 가던중 바다 한가운데 풍랑을 만났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함께 타고있던 독일의 경건파 기독교도들인 모라비안 교도들은 뜨겁게 찬양을 부르는 것입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그때 그들은 당신 예수 믿습니까? 나는 선교사입니다 선교사가 왜두려워 합니까? 정인찬목사님의 간증/한신대학교교수 신학대학원생/시험치를때/성령 받으셨나요?
내가 지금 신학교 교수라는 사실이 나의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또한 나의 직분과 믿음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의 신앙적인 경험이나 실적과, 신앙을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서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내가 남을 인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 믿음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선행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업의 실적이 곧 믿음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제의 나의 경력과 오늘의 내 믿음을 동일 시 하지 말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감리교회 신학 /칭의 성화 완전 성화
3.믿음은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제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했습니다
엡2:8에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이 믿음을 우리는 잘 관리 해야 합니다. 선물은 잘 관리하고 간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기가 십상입니다. 그저 한번 받았으니 있으려니하고 무관심 하다보면 잊어 버린지가 벌써 옛날입니다. 그리고 껍데기인 형식만 남았고 의식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사건을 만나면
언제 믿었는가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럴수가 없을 정도로 흔들려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우리는 제자들에게서 보게됩니다 .믿음과 은사는 잘 관리해서 내게주신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열심히 봉사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게으르든지 소흘하게 하면 은사는 잃어버린다거나 빼앗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개인간증/ 찬양의 은사/목이 계속아픔 (2년고생)잘 보관 하지도 않는 필요 없는 은사를 왜 계속적으로 주시겠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주어졌고 또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을 새롭게 하고 이 은혜의 선물을 잘 관리하고 키워야 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감사와 순종입니다.. 예수 믿게 된 사실에 감사하고 내게 주신 은혜의 선물에 감사하며 그리고 순종해 나갈 때 이 은사를 지켜 나갈 수 가 있는 것이지요 (삼손의 승리의 비결과 실패의 원인분석 삿14:6 19, 15:14 여호와의신이)
4. 믿음이 능력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믿음을 잃게 됩니다
고전4:19-20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자의 말을 알아 볼것이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알고 있는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믿음이 문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능력이 없었고 귀신을 이길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믿음을 회복할수 있겠습니까? 29절을 함께 읽읍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기도외에 다른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기도함으로 나를 알고 기도함으로 나의 믿음을 알아서 믿음을 보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가장 큰 실수는 기도를 포기하는것 신앙인의 가장 큰 범죄는 기도를 방해 하는것 저는 지난 금요일 새벽에는 교회당이 기도하는 분들로 가득찰줄 알았습니다 저녁기도회로 모이지 않기에 또 휴일이기에.... 기대카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더군요
스콧틀란드의 개혁자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 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는데 그중에 눈먼 아이가 함께 연을 날렸다고 합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도 신통해서 "예야 너는 연을 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연을 날리니"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대답하기를 연줄을 잡아 당겨보면 연이 잘 나는지를 알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볼수는 없지만 기도의 줄을 한번 당겨 보십시오 끊어진지 오래 된것도 모르고 착각속에 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수 없느니라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어제까지 기도했다고 오늘은 기도 없이 될 것 같습니까? 어제 능력을 행사했다고 그 능력이 오늘까지 그대로 있을것 같습니까?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인 관계는 기도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 없이 듣고 기도 없이 생각하고 기도 없이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실수가 연발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실수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이유는 바로 기도 때문 이었습니다 나의 무능은 불신 때문이요 불신은 기도가 없어서 입니다.  또한 기도를 했으나 능력이 없음은 기도의 바른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말씀을 찾아 봅시다
사45: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영적 호흡이요 기도는 영적 노동입니다. 아무쪼록 바른 기도의 자세를 가지고 쉬지말고 기도하여 귀신을 이기고 능력을 행사하는 권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움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6월30일
시116:12-19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오늘은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반드시 지키라 하신 3대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입니다.  이 3대 절기에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사를 드려야 했으며 정한때에 제사를 드리지 않거나 고의로 빠지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이 절기를 유월절은 부활절로 맥추절은 첫열매 드림과 오순절 성령강림의 감사로 수장절은 추수감사절 절기로 볼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할줄 아는 동물은 세상에 사람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사는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감사를 표현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로 제사를 드릴때 그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요란한 제물을 드려 제사를 드린다할지라도 마음 중심에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역겨워하십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물을 드리며 예배를 드리셨습니까?
감사는 하나님만 좋으신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받는 사람도 좋지만 드리는 사람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선물을 준다고 할때 얼마나 마음으로 부터 기쁨이 넘쳐 납니까?  무슨 선물을 살까 하면서 얼마나 흥분이 됩니까? 주는것도 큰 기쁨인데 하물며 받는것이야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느낄수만 있다면 그는 항상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수 있게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언제나 함께 있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이 감사만 넉넉하고 충만하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고 가정에 감사가 넘치시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속에 감사를 넘치게하도록 여러분이 앞장서서 기도하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모든 삶속에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즉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좋은 감사가 그렇게 쉽지를 않습니다. 감사가 어려운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1. 받은 은혜를, 입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아는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짐승들도 자기 새끼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데 사람이 자식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 ,..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 때문에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불효자식들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스승이 무료로 우리를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요 우리 부모가 낸 세금을 가지고 월급받고 가르쳐 주는 것이니 감사할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때 감사한 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들 대부분이, 그것을 받는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장학금을 받는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은 맞는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어리석음입니다 그것은 감사한 일이지 당연한 일들이 아닌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은혜를 당연한것으로 치부하려고 하는 치명적인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이 마음을 없애야만 합니다 (한국지하철경험) 젊은 여성 /..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들 속에서 감사를 찾아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범사란 평범한 일을 의미합니다. 평범한 일이란,,... 당연한 일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란 말씀은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속에서 감사를 찾을수있는 사람이 되라는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게 살 때 항상 기쁘게 살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감사가 어려운 이유는 ,.. 도움과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아는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줄 모르고 사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교만입니다 저는 목회하는 목회자입니다. 목회할 때 어렵고 힘든일이 생기면 그것은, 누구누구 때문이며, 또 무슨 무슨 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조금이라도 잘되고 발전을 하게되면 그것은 내가 목회를 잘하고 유능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인 줄을 알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그러한 마음을 버리기가 쉽지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냥 말로 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내가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도적질하고 있는 것이며 내 마음속에서 그 소중한 감사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자기를 내 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늘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하기를 힘써야만 마음과 삶속에 감사가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어제 새벽기도후 개인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앞에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더 무엇을 기대하느냐 이제는 네 몫이다" 사실 요사이 매일 기도의 제목이 " 하나님 교회 확장 공사를 해야 겟는데 물질좀 허락해 주세요" 하나님은 본질에 충실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배 입니다 환경을 만들어 가려 하지 말고 본질에 충실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더하시리라" 예배에 성공합시다.
3. 감사가 어려운 이유는 , 우리들의 부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일은 우리 인간의 일과같이 그렇게 단순하신 것이 아닙니다.
2)하나님의 일은 처음 속에 나중이 있고 나중 속에 처음이 있습니다.
3)하나님의 일은 하루 속에 천년이 있고 천년 속에 하루가 있습니다.
4)하나님의 일은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 속에 위기가 있습니다.
5)하나님의 일은 부정 속에 긍정이 있고 긍정 속에 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보면 항상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보면 항상 긍정적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범사를 긍정적으로 보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뜻이 있으며 축복과 기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놓치게 되면 그는 평생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찾지 못하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채 항상 불평과 불만을 일삼고,... 그로인하여 ,.. 자신과 세상을 파괴하면서,... 불행한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넷째로 감사가 어려운 이유는 잘못된 가치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치관과 세속적인 가치관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은 말씀속에 있으며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것을 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가치관은 다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은 욕심에 있으며 그 욕심이 이루어지는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가나다 큰 많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말씀 속에 있지 우리의 욕심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관이 잘못되어 세속적이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그것은 복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감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 할 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늘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형통의 복을 받았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때는 잘되었을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었을때라고 말씀합니다.  종으로 팔렸을때, 감옥에 갖혔을때.... 하박국 선지자는 외양간에 소가 없고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감사의 조건은 외양간의 소와 무화과 나무의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는 하박국 3장 18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말씀 속에 하박국의 감사의 조건이 설명되고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를 인하여'라는 말씀과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 자신' 과 '구원' 이었습니다. 세상과 그 세상의 욕심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주신 구원 때문에 세상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은 상황속에서도 감사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감사의 조건은 하늘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이십니까? 여러분은 무화과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여러분의 구원때문에 감사하십니까? 감사처럼 우리의 생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것은 없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신의 자녀가 부모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여러분께 효도한다면 .....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자녀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부모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며 사는 사람과 / 부모의 은혜를 은혜인줄 알고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의 삶이 더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생각이 되겠습니까? 어느 마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눈에 보이는 부모와 스승의 은혜만 알고 살아도 삶은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지고 훌륭해지는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겠습니까? 시50:23절에 보면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 즉 하나님의 축복을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로운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여야만 합니다.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면 새로운 은혜와 축복이 그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 즉 축복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의 마음속에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마음인지 이루말로 다할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이 진심으로. 마음속에 우리 부모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우리의 자녀들이 가지고 산다고만 하면 그 자녀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겠습니까? 어제 아침 기독교 방송에 한국에서 연예인보다 더 웃기고 연에인보다 더 인기잇는 목회자로 알려져 있는 장경동 목사님 가족이 모는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대담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 받았습니다.  그분의 그런 정신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구나 느꼈습니다 부모님이 잘 살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해서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았는데 실제로 첫 아이는 태어날때 부터 영양실조가 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결혼하면 부모는 모시는 것이요 효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도움을 전혀 받지 않으셧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품고 산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영광을 받으실것이며 또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까? 받은 은혜에 먼저 감사 하는 생활 , 구원의 주가 되시고 삶의 평간의 근원이 되시는 주
하나님의 은혜를 늘 깨달으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살 수 있기를 소원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여러분의 삶과 마음속에 감사가 넘칠수 있기를 바라며 그 감사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늘 영광을 받으시고 여러분들의 삶속에는 늘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눈에 보이도록 충만할수 있는 남은 한해의 삶이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움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6월22일
눅 9:28-36 변형된 모습의 기적
 
오늘은 우리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변형된 모습의 기적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기도중에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베드로는 변형 중에 계신 예수님과 대화하는 율법의 대표자 모세와 예언자의 대표 엘리야와 예수를 위하여 초막셋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서 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말하는것은 베드로가 율법과 예언은 예수의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오묘한 진리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없어지고 엘리야도 간 곳 없으나 주님만이 그들 옆에 남아 계셨던 것처럼 과연 주님만이 우리의 위로와 소망과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이 변화는 예수가 메시야 되심을 그들에게 알려주시는 동시에 복음 즉 예수 자신이 모세와 엘리야 즉 율법과 예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을 그들에게 명백하게 보여 주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그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의 변형은 신앙이 약한 그들과 우리에게 능력이 되고 위로가 되며 소망이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귀한 진리를 우리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 역사하심으로써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훈
1. 기도를 하면 .... 변화의 역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8절에 보면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다 했습니다. 기도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여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는 40일간 산에서 기도하여 얼굴에서 광채가 날 정도로 하나님과 교통의 기도를 했고 엘리야 역시 기도를 많이 했으니 그가 기도하여 3년반동안 비가 오지 않고 다시 기도하여 그 땅에 비가 오기도 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크고 작은 전쟁의 승리도 기도중에 나타났고 태양과 달이 머무르는 기사도 여호수아의 기도중에 나타났습니다 병들어 죽음을 선고받은 히스기야 왕의 수명이 15년간 연장되는 기적도 기도하므로 이루어졌고 엘리야의 갈멜산 제단에 불이 내려 제물이 타는 기적도 기도하므로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물으시려고 산에 올라 기도하시다가 모습이 변화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은 성도에게 큰 소망이 되는 것인데 그 변화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나라에 계실 때의 본래 형상으로 돌아간 것으로 예수님이 부활 후에 가지게 될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자들이 더 확실히 믿게끔 증거 해 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제자들은 물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알면서도 믿음이 변하기 쉽고 약해지기 쉽고 시험에 넘어지기 쉬운 불안전한 인간성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이 확실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이신 줄 믿고 어떤 어려운 핍박과 시련에도 낙심치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확신을 주시기 위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는 나를 변화 시킵니다 내가 변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변화될것을 기대하지 마시고 내가 변하면 됩니다.  우리교회가 지금 상황속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없어도 은혜로 전진하는 것은 그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성전 봉헌때까지 계속 기도로 전진하면 주께서 계속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실줄 믿습니다 기적을 베풀어 주실줄 믿습니다.
2. 예수의 변형되신 형태와 주위의 광경을 살펴 봅시다
1)얼굴이 해같이 빛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광이 세계를 덮는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제사장들에게서 바리새인들에게서 이방인들에게서 인간 세계에서 우리 예수께서 만민의 수모를 당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높임을 받는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2)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했습니다.
(1)흰빛은 겸손의 상징입니다. 예수처럼 세상에 겸손하신 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2)흰빛은 비었다는 표입니다. 예수님은 비었습니다. 아무런 더러운 것이나 흉칙스러운 것이나 가시 돋힌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만 간직하고 계십니다.
(3)흰빛은 넓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마음은 온 세상도 다 들어 갈 수 있는 넓은 마음입니다 죄인도 들어갑니다. 권세자도, 교만한자도, 살인자도, 사랑이 식은 자도 다 포용하는 넓은 마음이십니다.
3)구름이 덮으며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름으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던 일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때 영광중에 구름이 임하였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보여줌으로 제자들이 앞으로 복음증거 함에 있어서 핍박이 있어도 너희와 함께 하여 인도하여 주실 것을 증거 하신 표시입니다.
4)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고 하셨습니다. 일반인들은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며 요셉 가문의 자녀로만 생각한 점에 대한 의심을 벗겨 주신 증표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분명히 성령으로 잉태하심을 확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종말론적인 종이요 사역자이시니 그의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이 하늘의 음성이 어떤 때는 불방망이와 같이 임하여 죄악의 아성을 쳐부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임하여 범죄한 심령들을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 진노의 음성과 책망하시는 음성, 위로하시며 칭찬하시는 음성을 들을 때마다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이런 음성들이 어떻게들려오고 있습니까? 강단의 설교 말씀으로 들려 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 심령의 죄악을 지적박고 통회하기도 하고 , 말씀을 듣다가 상한 심령을 형을 치료 받기도 합니다
3. 오직 예수만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빛난 구름도 사라졌고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하늘의 음성도 그쳤습니다. 오직 예수만 남아 계셨습니다.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친구는 내가 성공할 때 나를 따르고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하고 몰락하면 추풍낙엽처럼 나를 떠나고 나를 멸시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몰락할수록, 내가 실패할수록 나를 도와주시며 위로해 주시며 힘주십니다 오직 주님께만 소망과 위로와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고 실수한자를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하고 실패한 자리에서도 실망치 않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주께 의지하는자를 들어 쓰십니다.
1)예수만 남았다는 것은 오직 예수만이 대속주란 뜻입니다.
모세가 그 자리에서 떠난 것은 그는 대속주가 아니고 율법 계시의 사명자로써 이 사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도 그 자리를 떠나야 한 것은 대속의 주가 아니고 예언자로써 이 사명이 끝났으니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것은 그의 사명은 십자가를 지실 대속의 사명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대속의 재물이 될 수 없고 혹은 대속의 제물이 있다고 자원해도 가치가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가 계셔야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남아 계신 것입니다.
2)주님만이 오직 믿음의 주시기 때문에 남아 계셨습니다.
영웅들과 호걸들이 있지만 인간들에게 금생 내세와 생사 화복의 주관자가 없었습니다 또한 담당하려고 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홀로 남은 예수님은 길이시요, 진리시오,생명이시요, 부활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소망이시요, 궁극적 실재가 되십니다. 오직 예수 외에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없고 구원의 방도가 없습니다.
3)보는 것도 오직 예수 뿐이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뿐이였고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 것보다도 예수님만 볼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예수님만 보아야 할 사람들이 예수가 보이지 않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보이고 죄만 짓게 되고 영안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예수만 바라보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이 예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4)듣는 것도 오직 예수뿐이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시매 모세와 엘리야의 말로 치우쳐 듣기도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음성은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곧 택함을 받은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별별 소리가 많고 우주에 가득한 것이 음파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예수의 말씀보다 위인, 학자, 목사의 말을 더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의 말씀만 들읍시다.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종의 말씀만 들어야 하겠습니다.
5)예수님만 보이는 신자가 정상적인 신자입니다.
말씀하시던 모세도 엘리야도 천국으로 올라가 버렸고 예수님만 바위위에 홀로 앉아 계셨습니다. 천국에도 예수 외에는 주관자가 없고 예수 외에는 영적 지도자가 없습니다. 세상에 행복을 주시고 행복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도 홀로 하나밖에 없는 예수이십니다. 그는 나의 생명이 되시는 분이요 나의 길이 되시는 분이요 나의 진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오늘에 있어서 변화산의 체험은 무엇입니까? 이는 교회 생활입니다. 교회는 속세에 우뚝 솟은 변화산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나와서 변화산의 체험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서는 변화산의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신령한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며 예배에 진정으로 참예 할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율법도 만나고, 예언도 만나고, 예수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령한 은혜의 빛이 우리의 심령에 차고 오직 예수만을 중심에 모시고 변화된 우리의 심령을 가지게 될 때 천국에 들어간 것 같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에 있어서의 변화산의 체험입니다. 예수님이 변화할 때 본체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도 은혜받고 변화되어 축복의 동산 에덴으로 돌아가는 체험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움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6월15일
갈 6:8 후회 없는 삶
이번주 주일 설교는 후회 없는 삶이란 제목으로 대만주재 이기복 선교사님께서 선포해주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해주신 선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움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6월 8일
막 8:22-26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인간의 몸 가운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눈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경은 우선 세상의 사물을 보지 못하니까 보는 눈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보는 것을 크게 나누어 세 가지로 본다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1)눈으로 보는 육안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경치, 수시로 나타나는 교회의 사슴들 찬란한 태양, 천지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교회 체리 열매 따 먹어보셨나요? 지난주 금요기도회 전 어느 집사님이 교회 뒷뜰에서 따온 체리라 하시면서 주시기에 먹었더니 아주 맛이 있엇습니다.  아무도 몰랐는데 그 집사님은 눈이 좋아서 열매를 발견하셨네요 육안이 좋은 집사님 이십니다.
2)생각해 보는 눈인 상상해 보는 눈이 있습니다.
모든 건축물들은 완공되기 전 설계자의 설계에 따라 집이 건축되고 다리가 놓여지고 아름다운 환경이 조성 되는데 이런 일에 필요한 상상하는 눈이 있습니다.
3)새로운 차원의 신비를 보는 영안이 있습니다.
인간의 육안과 상상을 초월한 새 차원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영적인 눈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안수로 인하여 서서히 눈이 떠져서 보기를 시작한 소경이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오늘 본문의 소경처럼 심령의 눈이 어두어 진리의 세계를 못보던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육안의 눈이 떠지는 동시에 예수의 진리도 알고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우리는 매 순간마다 우리들의 영안이 떠져서 진리를 보고 신앙이 날로 성장하여야 하겠습니다.
1. 불구자가 있어도 데려 오기만 하라는 기사 입니다.
이 소경은 친구들에 의해 주께 데려옴을 받았습니다. 눅14:21 이하에 예수님께서는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주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기를 소원하시는가를 잘 표현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강권하여 데려오기 보다는 이 복된 소식을 많이 전하지도 못하니 이 죄송함을 깊이 사죄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는 여생에 심혈을 기울여 만민에게 이 귀한 소식을 전하며 주의 전으로 인도하여 교회가 부흥케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려움을 당하는 자가 각가지 문제를 해결 받아 산증인이 되게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원하기는 여러분들의 차 안에 항상 교회 전도지가 준비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한국 마켓이나 식당에 들릴 기회가 되면 잘 비치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또 각 단체에서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노방 전도에도 힘써 주기시를 바랍니다.
2. 영적 식별이 불투명한 자에게 교훈하시는 기사입니다.
이소경은 예수님의 안수로 눈을 고치기는 하였는데 처음에는 정상적인 눈으로 고침받지못했습니다 왜 온전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영적비밀 이비밀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신앙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 불투명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요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 같은 사람도 신앙이 불투명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 종교계의 선생이었습니다 랍비요 공회원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육을 시키는 자였지만 자신의 영생의 문제를 알지 못하고 구원 받을 확신이 없어서 예수께 찾아와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신앙이 불투명한 것입니다 . 여러분은 거듭 나셧습니까?
2)요11장에 나오는 마르다 같은 자도 영적 불투명 한 자입니다 .
예수께서 이들의 가정에 찾아가셨을때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시에는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직도 예수님의 능력 중 죽은자를 살리신다는 것을 믿지못하는 신앙입니다. 오늘날 부활신앙 없는자 많습니다 심지어는 목회자 신학자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확실한 소망이 있으십니까?
3)마 9장에 나오는 전신 간질병자의 아버지 같은 자가 신앙이 불 투명 한 자입니다.
귀신들인 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불투명하여 주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의 말씀이 떨어지면 이 세상도 없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다 믿음이 불투명한 자들입니다.
3. 오늘 말씀은 신앙의 향상을 의미하는 기적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소경은 예수님의 첫 번 안수에는 눈이 희미하였는데 예수께서 다시 안수하시니 눈이 완치되어 사물을 똑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실수 하셨을까요? 그래서 한번에 못 고치셨을까요? .... 고전3;1에 보면 바울의 영안에 비추어진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아직까지 어린아이 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른들처럼 단단한 식물로 먹이지 못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한 젖으로 먹였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린 아이들과 같게 보여진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분쟁이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하면서 저희 속에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즉 신앙이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인간의 방법대로 대하기 때문에 분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생활 속에 시기가 있고 분쟁이 있으면
이 역시 어린아이 신앙입니다. 직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륜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나이가 들어도 알쯔 하이머(치매) 병에 걸리면 그 행동은 어린아이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의 알쯔하이머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어리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그러기위해서
1)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했고 고후10;15에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 지기를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자랑스러운 믿음을 사도들이 인정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인정받을 만한 믿음으로 성장토록 신앙생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인정, 주의 종 인정, 사탄도 인정
2)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야 합니다.
골1:10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했습니다. 이것은 골로새 교우를 향한 사도의 기도 제목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를 생태적으로 신뢰하고 난 다음 이제 구체적으로 아는 단계로 성장함과 같습니다. 처음 단계는 어린 아이가 단순히 부모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라 갈수록 그의 부모를 구체적으로 압니다. 부모의 모습, 키, 웃음, 취미, 개성을 분별하는 단계입니다. 부모가 자기에게 어떻게 해 주는 가 깨닫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요6:68-69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습니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벧후3:18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하였습니다." 믿으십시오 알게 될 것입니다 자라게 될 것입니다.
3)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합니다.
벧전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진하고 신령한 절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엡4:15"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영생의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농부의 마지막 소망이 가을 추수 마당에 있음과도 같습니다. 야고보는 성도가 구원받은 최후의 날을 추수하는 농부의 열매에다 비유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성도의 마지막 구원을 추수군의 타작마당에다 비했습니다 (계14:14-15) 낫을 휘둘러 거두라 내 맘에 구원이 확정되도록 은혜의 생활을 해야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
4. 오늘 말씀은 , 부정적인 감정이 걷히고 신앙의 눈이 뜨면 기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와 장소에 따른 감정의 변화에 따라 사물을 달리 보게 됩니다. 만일 초조, 불안, 편견, 탐심, 정욕, 이런 마음으로 사물을 보면 세상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럽게 보일 것이며 감사와 기쁨이 사라질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위에 올라 가 있던 삭개오를 향하여 예수님은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삭개오는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주님이 인자한 얼굴로 권면 하실 때 삭개오는 큰 은혜를 받아 죄를 회개했으며 자기의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날 때 인격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회개하고 사죄를 받으며 새 결단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버릴 때 이런 기적이 일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신앙의 눈을 뜬 사람에게는 기적이 보이게 됩니다. 비록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신앙에 성장이 있을수 없고 하나님의 기적을 볼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린아이 같은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인간의 책임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을 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많은 성도 가운데 육신은 어느 한곳의 하자가 없는데 영적으로는 불구자가 되어서 눈이 무용지물이고 귀가 있어도 무용지물인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아야 할 하나님을 보지못하고 들어야 할 귀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름가족 모두는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져 영육간 강건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실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6월 1일
마 15:29-31 예수님의 장애인 선교
우리는 매 주일 마다 성경에 기록된 각종 기적의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고 한편으론 믿음의 기적을 사모하는 마음을 훈련해 왔습니다.
15년전 우리교회가 창립된 이후 오늘까지 어떤 특별한 개인이나 기관의 후원이 없이 은혜롭게 성장해 온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만 굳이 한 가지 영적 비밀을 추적해 본다면 우리교회는 창립하는 해부터 도움 받는 교회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선교를 실천해 왔다는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중 특별히 지금까지 작지만, 지속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는 선교단체중 하나가 워싱턴밀알 즉 장애인 선교 후원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읽다가 아 바로 이 말씀은 기적 사건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에 교회의 사명을 다시한번 일깨우는 말씀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장애인 선교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선포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체불만족 , 꿈이 사람을 만든다의 저자인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는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없었고 성장하면서 10cm밖에 안자란 팔다리로 달리기· 야구· 농구· 수영 등을 즐겼습니다 그는 초·중·고를 거쳐 일본의 명문 와세다대 정치학과를 를 졸업하면서 총장으로부터 '장애물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공로'로 특별상을 받아서 정상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애는 "단순한, 신체적 특징일 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팔다리가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기에 앞으로 장애 극복을 위해 '마음의 장벽 없애기 운동' 에 매진하겠다고 피력했습니다. 그의 삶을 대하는 자세는 세계 모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체장애자, 시각장애자, 벙어리 각종 장애자와 각종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니 예수님이 모두 치유해주셔서 관중들이 깜작 놀라,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장애인들을 치유하시면서 시작하셨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방인들이 직접 장애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치유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선교를 장애인 선교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중에 장애인 사역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1. 예수님의 장애인 선교와 그 당시 잘못된 전통에 매인 장로들과의 충돌 예수님께 고침 받고 구원받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긴장을 했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장로들의 잘못된 유전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는 왜 전통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여기에 장애인 선교의과제가 있습니다. 율법의 전통에는 장애인은 하나님의 일을 할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장애자들이 우리의 잘못된 부정적 의식 때문에 사회에 적응도 못하고 복음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픔을 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장애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무관심 때문에 그들삶 전체에 치명적 상처를 주는 사회적 장애를 맛보며 좌절합니다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난 수요일 밀알 단장이신 정택정목사님과 통화를 해서 워싱턴 한인사회 장애인 실태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현재 워싱턴밀알과 연관된 장애가정은 150 가정정도 되지만 한인사회 전 가정의 5% 정도가 장애인을 두고 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미국 전체는 10%, 카나다는 15%  정도된다 하셨습니다 앞으로 더더욱 우리 교회는 저들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받아 영생을 얻고 밝은 삶을 살아가도록 더 큰 사랑의 손길을 펴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께 장애 자녀들을 데려온 부모들의 믿음이 귀합니다
예수님은 장애문제를 가지고 나온 이들을 향해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장애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칭찬과 구원을 받도록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약함이 강함이 되도록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우리 지역 사회의 장애인들로 하여금 이 믿음의 길을 걸어 영생을 얻도록 하여야 합니다. 천국에는 장애· 비 장애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믿음의 가족들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장애도 이 믿음만 있으면 더 이상 절망이 아닙니다.
3. 장애 그리스도인들을 양육시켜서 장애인 전도자로! (3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
미국 내 자체 예배당을 가진 한인 교회에서 함께 예배당을 사용하는 농아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교회가 새로이 교회를 건축하게 되면서 함께 예배당을 사용했던 농아인 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옮긴 이유중 하나는 교회를 새로 건축하기 전 구 건물의 본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새로 건물을 지은 후로는 새 건물 본당에서는 예배드림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본당을 사용하지 못할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나 저는 이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저의 바램 가운데 하나는 앞으로 우리 교회가 모든 시설이 완비되면 주중 어느 날이라도 밀알 선교단이 장애인 선교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면 내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장애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에 동참하고 영광을 돌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안식일에 고침 받은 소경 사건이나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복음전도의 기회가 된 것 같이, 장애인 전도는 장애인 크리스쳔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치유의 은사가 재활로 나타나 소망을 가지고 성숙한 신앙의 반응자들로 증인된 삶을 살아가도록 장애인 선교에 더욱 최선을 다 하여야 합니다 .
4. 우리 모두는 장애 후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아로 태어나기도 하지만 출생 이후에도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수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저희부부가 지금도 감사하고있는것/ 우리 딸 지은이가 그저 지금껏 건강하기만 해 감사 합니다 / 기도원 가기위한 작정후의 사고 간증 장애인 안된것 특별히 교통사고 안난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요 대형사고 한번 당하면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됩니다.  삶의 문제로 인하여 일순간에 정신 적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 모두 육은 장애가 아니더라도 내적장애인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점검합시다. 육이 건강해서 주의 일에 힘쓴다고는 하지만 사실 주님 구원사역에 역행하는 영적 장애는 아닌지?
(Henri Neouen) 헨리 나우엔 교수님이 계십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 났지만 예일대를 졸업하고 예수회 사제로 서품 받은뒤 하버드대학 신학대학원 교수로 일하던중 인기 있고 화려했던 하바드 대학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신체 장애인들을 위해 설립된 페루 빈민가의 라르쉐 공동체에서 사역하신분이십니다.  그분은 장애인들과 함께 동거하면서 그들의 대소변을 돌봐주고 목욕· 음식·옷 등 가장 힘든 궂은일들을 하면서 자신의 영성의 무르익음을 체험했던 분입니다 1996년 안타깝게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영적 발돋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서로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돕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서로에게 일깨워 주어야 할 점은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함께 있음 너머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도움이 되는 것은 공통의 소망 안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헨리나우엔 처럼 우리도 우리 주 예수님의 제사적 감정, 제사적 언어, 제사적 손길로 장애자를 끌어안고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하는 주님의 손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저 그늘진 곳에 있는 장애자의 구주이십니다.
5.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 육체의 장애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영적인 막힘 들입니다.
육체적 장애는 주위의 관심과 당사자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장애를 극복해 갈 수 있으며 나아가 시각 청각장애인이었으나 5개국어능통 최초청각학사 "헬렌켈러"같은 위대한 위인도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영적인 눈이 닫혀있고 귀가 막혀있고 입이 굳어 있으면 영원히 불행함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 중의 한 가지는 하나님께 대한 무지라고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했습니다. 즉 영적 장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적 귀머거리가 되어도 안 될 것 입니다.  사람들은 시장의 돈 세는 소리,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에 민감하지만 하나님의 음성과 양심의 흐느낌과 이웃의 한숨과 광야에서 울부짖는 선지자의 진실한 소리에는 귀가 막혀 있습니다.
영적 벙어리가 되어도 안 됩니다 막7장 어눌한 자란 반벙어리란 뜻입니다. 반벙어리 성도는 기도할줄모르고 전도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불의 앞에 잠잠하고 위로와 칭찬에 인색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 귀가 열리지 않아서, 주님이 선포하신 성경을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설교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자가 있고 본문에 나온 벙어리 같이 혀가 풀리지 않아서 기도와 전도와 찬양을 못하는 자가 우리 성도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오늘 말씀처럼 각종 불구자가 고침 받아 새로운 삶을 가졌듯이 우리 모두 영적으로 고침을 받아서 더욱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며 예수 구원 복음의 산 증인으로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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