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1월23일
시136:1-3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의학용어에 '플라시보(Plasebo)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플라시보란 "기쁘게 해 준다"는 뜻으로 의사나 약사가 병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치료효과가 수십 배, 수백 배로 나타난다는 말인데 원래는 "가짜 약이 진짜 약과 같은 효력을 발휘 한다"는 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약사 에멜 쿠에가 약국의 문을 닫고 잠을 청하려던 어느날밤, '시간이 너무 늦어 병원에 갈 수 없고 너무 아프니 약 좀 지어 달라'며 환자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의사 처방전이 없어 병명을 모르는 약사가 망설이자 환자는 막무가내로 부탁하므로 할 수 없이 인체에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포도당 알약을 조제해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괜찮아 질 겁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보라"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며칠후 길에서 만난 환자가 "선생님 그 약이 무엇인지 참 신통합니다. 알약을 먹고 깨끗하게 나아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어요"하며 뜻밖에 말을 들려주었다. 쿠에는 환자에게 준 약은 가짜였고 그에게 한 말도 뻔한 거짓말의 위로였는데...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실제 효능이 없더라도 이 약만 먹으면 완쾌한다고 믿음을 주면 신기하게 환자의 병이 낫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관절염, 심장병, 심지어 폐결핵 말기 환자와 암환자에게까지 거짓말이지만 '기쁘게 해주는 플라시보'를 투약해보았는데 그를 찾아온 환자들에게서 놀라운 효과를 보게 됐다. '
플라시보 효과'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된것입니다. 쿠에가 일반인들을 위해 처방한 '플라시보'가 있는데 "나는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다"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everyday.) 이것을
하루 열 번씩 반복해 외우면 긍정의 힘이 뜨거운 온천수처럼 솟아나 삶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 보세요 )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는 지금 좋아지고 있다"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의 시에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오늘 지상의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촉구합니다. 감사는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며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향한 명령이며 성도들의 의무이다. 그리고 감사의 결과는 플라시보 효과 정도가 아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리는 감사와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예물은 물론 억지로라도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마음과 육신, 가정과 자녀교육, 사업과 일상생활 그리고 영적 삶에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렇다. 우리의 감사는 하늘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이다. 한 나라의 군주에게, 오대양 육대주의 한 지역 통치자에게, 또는 지구 유성을 다스리는 신이나 태양계를 다스리는 제한된 신이 아니다. 저 광활한 우주공간, 수조 억 개의 별들 그 모든 별들의 세계 넘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계신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이다. 오늘 안계수목사가 드리는 감사, 지금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 정성을 다하는 기도와 찬양, 자신의 생명과 함께 바치는 헌금과 헌신 그리고 우리의 자자손손이 드리는 감사는 바로 그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1. 감사의 방법
그러면 우리는 '나를 기억해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표시할까? 사람이 사람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병을 고쳐준 사람에게, 고통과 좌절 중에서 건져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은 은혜 받은 날을 기념하여 전화로, 선물로, 꽃다발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은혜 베푼 사람의 자손들을 돌보아 주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또 다른 사람에게 베프는 등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감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도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렇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하늘의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와 사랑, 축복과 은택은 오직 그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모든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2) 예물과 헌금으로 감사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감사할 때,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히스기야 왕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고 백성들에게도 감사제물을 가져와 드릴 것을 가르쳤으며(대하 29:31)
예레미야도 감사의 예물을 드릴 것을 가르쳤으며(렘17:26)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해 드리는 구제를 위한 감사헌금을 성도들이 당연히 해야 할 봉사의 직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후 9:11-12)은혜를 끼쳐준 사람에게 감사의 선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듯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예물과 헌금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기도문교회예화 365/4명 )
3) 예배를 드림으로 감사하라
다윗은 시35: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한다"고 했는데 대회 중에서(In the great congregation)란 "교회 가운데서", "예배 중에서"란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외적 증거이다. 예배를 많이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드리는 성도요 예배를 피하는 사람은 감사하기를 피하는 사람이다. 예배를 드리되 마음으로 다하고 정성을 다해 드려라. (선물을 들고 은혜를 보답하러 찾아간 사람 앞에서 조는 사람, 먼 곳 쳐다보는 사람, 몸가짐이 흐트러지는 사람 있는가?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4) 찬양함으로 감사하라
다윗은 시69:30 그 자신이 찬양함으로 열방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고 시 30:4 성도들에게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으며 대상16장에 보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세 사람의 찬양지휘자 밑에 찬양대장 288명과 4000명의 찬양대를 세워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였으며 느헤미야도 찬양대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했고 (느 12:21)  바울도 성도들의 찬양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엡 5:19-20) 시와 찬미와
우리들의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기쁨의 표현입니다 즐겁게 찬양하자.
5) 기도로 감사하라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 중에서 '해달라'는 요청의 기도와 '고맙다'는 감사의 기도, 어느 기도가 더 많은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맛다냐와 박부갸를 세워 감사하는 말씀을 전담하도록 대표기도하게 했고(느 11:17)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큰 시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단 6:10)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감사기도로 기적을 만드는 성도되기를 축원합니다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듯 요청기도와 감사기도가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기도의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6) 공의와 인자와 겸손의 삶으로 감사하라 (미가6:6-8)
미가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공의를 행하며(To do justice) 이것은 자신이 의롭게 바르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자를 사랑하며(To love mercy: 이웃에게 자비함과 친절함을 보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To walk humbly with your God 겸손하게 하나님 과 더불어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공의와 인자와 겸손의 마음이 있어야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헛수고라는 말이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의 삶은 공의와 인자와 겸손이 행동과 말에서 자연스럽게 열매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3. 감사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적극적으로 명령한 것은 감사 그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감사, 입술의 감사, 행동의 감사는 플라시보 효과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축복을 가져온다. 암이나 에이즈를 앓는 중환자 30명을 15명씩 반으로 나눠 1년 동안을 약을 주면서 15명 한 팀에게는 "감사합니다."를 열 번 이상 하고 먹게 했고 다른 팀에겐 그냥 약을 먹게 했는데 일 년 후 그들의 병의 상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감사합니다"를 말했던 사람들은 거의 완치가 됐던지 많은 치료가 있었고 그냥 약을 먹은 사람은 현상유지 또는 더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는 노시보(Nocebo) 효과이다. 노시보란 "해를 끼치다"란 뜻인데 아무리 적절한 처방을 통해 좋은 약을 제조해 주어도 본인이 믿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개념입니다 섹스피어는 "겨울바람과 눈보라가 아무리 거세고 살을에어도 감사하지 않는 마음보다는 모질지 않다"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보다는 노시보 효과만 나타날 것입니다. 하늘에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 감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1)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신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인생 중에서 최고로 자기 행위를 옳게 하는 자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며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후대해주심 (시 142: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로다"
"하나님이 후대해주심"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심, 하나님이 풍성케 해주심)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로다"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고, 유익한 사람과 내게 도움을 줄 복 받은 사람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는 축복을 주십니다. * 보장과 보증의 축복
3)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주신다 (단2장, 6:10)
다니엘은 살해 위협 때와 사자굴에 던져 넣음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죽음의 위기들이 축복의 기회들이 되게 했습니다 위기의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하십시요 어려움의 때일수록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고 고통스런 때일수록 예배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아플수록 목소리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괴롭고 힘들수록 요청기도와 감사기도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뱃속에서 배고픔의 소리가 들리고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공의와 인자와 겸손으로 살아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평강의 마음을 얻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감사와 감사기도, 감사 찬송, 감사예물, 성공적 예배는 지금 내가 자각하고 있는 불안한 현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절망적 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을 채우게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태산처럼 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며 평안의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5) 영적으로 깨어있게 함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어떤 시험에라도 빠져들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는 성도가 됩니다 (살전 5:18)
딤후2:26 깨어 있는 사람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축복의 사람이 되며 깨어 있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며 (고전15:34) 죄를 다스리는 권세 있는 성도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깨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에 죽지 않고 산 채로 들림 받아 공중으로 휴거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감사 하는 성도가 받을 축복은 영적인 축복에서 물질적 육체적 축복까지, 지상의 축복에서 하늘의 축복까지...그 수와 양을 계수할 수 없는 전천후 축복입니다 아무쪼록 2008년 추수감사절에 감사하는 성도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자료를 제공해 주신 김엘리야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16일
눅17:11-19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마음자세
마귀의 마진은 얼마일까요? 보통 사업은 20-30 % 마진을 보지만 마귀는 단 1%라도 이익이 되면 곧 성공이라 합니다.  개인의 심령을 파괴하고 가정의 화목을 무너뜨리며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는 사단의 장난에 넘어지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주일은 일년 중 가장 축복되고 즐겁고 고마워야 할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런데 감사절이 오는 때가 겨울 준비에 우리들의 고민이 하나 더 늘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때론 감사와 감격이 없이 맞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부담스러운 연례행사가 되어 버리지는 않는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더더욱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의 불안이 가중되어 모두가 힘들어 하는 가운데 맞게되는 금년 감사절을 과연 어떻게 지키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와 그 은혜를 감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는 하나님을 알고 기념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고백하는 감사입니다. 오늘 이시간 추수감사절의 정신 과 감사하는 생활의 비결을 성경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살펴보며 진정한 절기 성경적 절기 복된 절기를 지키고자 합니다.
1. 추수감사란 구원의 은혜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추수감사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신26:1-4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토지 소산의 맏물을 거두어들인 후 처음 익은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여호와의 성소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렇게 아뢰라" 가르쳤습니다. 다같이 스크린을 보며 함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신26:5-9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킴으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이 고백적인 감사의 주 내용은 조상이 겪은 역경과 여호와께 부르짖음, 그리고 구원과 가나안 땅으로 정착하도록 인도하심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얻은 열매로 추수감사절을 노래하면서도 추수에 대한 설명을 하지않고 여호와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추수감사는 추수한 기쁨에 도취되어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구원 역사를 기념하고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는 감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 추수시기를 따라 지킨 추수감사절의 이름은 추수와 관계가 없는 장막절, 혹은 초막절로 불려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신 행사를 기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또는 The fest of booths)은 초막절이라고도 부르며 히브리어로는 '쑤콧'이라고 부른다. '쑤콧'은 우리말로 초막 혹은 장막을 뜻한다. 장막절은 유월절,칠칠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삼대 절기 중의 하나로서 고대에는 이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었다. 따라서 장막절은 "여호와의 절기"(레 23:39; 사 21:19) 또는 단순히 "절기"(왕상 8:2,65,12:32; 겔 45:25; 느8:14; 대하 5:3,7:8)라고 불리웠다.절기중의 절기였기 때문이다.
가을 축제인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간 지속된다. 양력으로 티슈리월은 보통 9월달이다. 첫날은 일이 금지된 완전한 휴일인 '욤 토브'로 지킨다.
장막절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출애굽 이후의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역사적 요소요,둘째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추수하는 수장절(The Fest of Ingathering;출23:16b,34:22b)을 지키는 농경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은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터키를 구워먹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추수 감사 축제를 즐기고 기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수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전체의 표현이었습니다.  매년 11월4째 목요일을 정한 최근의 미국 감사절은 1621년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상륙하여 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어 처음 익은 열매들을 제단에 놓고 눈물의 감사를 드린 것이 그 효시가 된 것입니다.
2. 청교도들의 감사는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마음의 감사였습니다
 추운 초겨울 12월에 메사추세츠 플리머스 항구에 102명이 상륙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과 병으로 인하여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어 버리고, 그 이듬해 봄에 원주민 추장에게 감자와 옥수수 종자를 얻어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이 가장 필요한 때에 3개월 동안 가뭄이 들어 수확할 수 없는 폐농 직전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으로 성별한 기도의 날을 정하고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사 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던 기적이 그들에게서도 나타나서 가물었던 땅에 10일간 비가 내려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생명적인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는 본래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형식적이고도 관료적인 신앙에 항거하여 보다 더 생명적이고 내면적인 경건한 신앙생활을 살기 위한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12년 동안 본국에서 박해에 견디다 못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불리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생명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며 대서양을 건넜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 제일주의가 그들의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1621년 11월 11일에 체결된 메이플라워 계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할지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항해를 계속하였노라] 고 선언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든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신대륙에 와서 죽음과 투쟁하며 결실을 얻었으므로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들보다는 슬퍼해야 할 일이 많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신앙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추수감사절은 진정 기쁘고 감사하여 지키는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절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예물은 우리 신앙의 내면적인 은혜를 물질로써 바치는 것이기에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바쳐야 하며 과부의 엽전 두 개와 같은 헌금이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절기는 반드시 택한 제단에서 각 개인이 정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더 나가서는 오늘 본문에 주님을 만나 함께 깨끗해진 열 명의 나환자 중 한 명처럼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것을 본받아 우리도 진정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와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몸만 아니라 물질만 아니라 마음이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우리의 마음이 , 어둠에 잡혀있었던 우리의 생각이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면 삽니다 돌아오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음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음이 곧 타락이요, 병입니다. 감사는 창조를 낳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일 먼저 교회당 건축하고, 다음에 학교 건축하고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특별히 일년에 한번씩 한 주일을 정해 감사 예배를 드리는 오늘의 우리들은 우리 교회에 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내 개인과 가정에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시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평소의 생활이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문안 후에 감사하라는 권면이 수없이 나옵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뤼라], [범사에 감사하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 생활 자체가 감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감격으로 사무쳤고 그의 하루 생활은, 아니 일생의 생활은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러한 감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모든것이 다 평안하고 환경이 좋으면 누가 감사하지 않겠는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 하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로 인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3. 감사는, 가난했던 지난날을 기억하며 감사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바울의 일생을 간단히 기록한 말씀이 나옵니다. 수없이 매를 맞고 몇 번이나 감옥에 갔고 여러번 파선을 당하고, 에베소, 고린도,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핍박과 환난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언뜻 생각할 때 몸이 건강하거나 가정이 화평하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업이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면 감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몸의 건강이나 가정의 평안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독신생활을 하였으며 쉴 만한 집도 없이 살아온 사람입니다. 바울사도는 일생토록 나그네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사는 삶속에서 평안이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감사하는 생각과 생활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그 깊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을 심령속 깊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사탄에게서 해방을 받은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같이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는 신앙이 있으면 우리도 순경이나 역경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언제든지 감사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닌 줄 압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되니 자연히 그의 생활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선 마음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6:22). 바울이 가는 곳마다 죽은 생명을 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를 위해서 무슨 열매든지 맺는 사람일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주를 위하여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면 열매 맺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더 많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우리 매일 매일의 생활과 일생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과 역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같이 우리도 과거 가난하던 때를 기억하며 이처럼 풍요로운 미국땅에 살면서 가진 것이 많은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에 더욱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 9일
행5:17-32 옥 문이 열린 기적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며 각종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자 이를 시기한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감옥에 잡아넣었는데 주의 사자가 (Angel of the Lord" 천사로 이해 /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으로 구원 얻을 후사들을 돕는 직책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석방을 시키신 기적입니다. 주의 사자(천사로이해)는 석방된 사도들에게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보면 파수병도 그대로 있었고 옥문도 그대로 채워져 있었으나 사도들은 천사의 인도로 저절로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같이 능력을 행하신 것은 생명의 말씀 즉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영생의 도, 이 복된 소식을 증거하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으며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잠시라도 쉴 수 없고 멈출 수 없다는 뜻에서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의 원하는 뜻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사람이 막을 수 없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서 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전도하는 자에게 선교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아멘) 전도를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하나님이 원하는 뜻은 생명의 말씀이 계속해서 전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제는 전도에 좀 더 정성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지역에는 한인이 없다든지 , 전도할만한 한인 마켓이 없다든지 하는 핑계가 있을수 없습니얼마나 많은 한인 마켓들이 있습니까? 예전 캠프스프링스의 5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각 단체별로 특별전도 계획을 세워서 본격적으로 전도에 나셔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매월 1주를 정하고 각 단체별로 돌아가면서 특별전도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그저전도지) 주시는 교훈은?
1.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잠시라도 쉴 수 없으며 사도들 앞에는 가로막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업은 중단도 하고 폐업도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이나 폐업이 없는 것입니다. (요5:17)에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에는 멈출 수 없다는 뜻에서 기적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사도들이 감옥에 있으면 복음이 증거 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감옥의 문을 저절로 열리게 하시고 석방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사람이 막을 수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감옥이 저들을 수감치 못하였고 핍박이나 박해가 저들의 활동을 가로 막지 못했습니다.  또한 주의 일을 하는데 아무것도 제제하지를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 기사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에는 형통만 있지 불행이나 역 수난은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기사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든 간에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자기만 살기 위한 방법을 쓰기때문에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버는것도 주님의 뜻대로 살기위해서이고 정직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았지만..... 돈을 못 벌어 못 살아도 주님의 뜻인 줄로 알면.... 마음도 편하고 또한 그와 같은 생각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형통케 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 같이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요셉의 형통이 노예로 팔려 갔을때,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 갔을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릴줄 아는것이 축복입니다.  따라합시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형통입니다"
2. 사도들은 자신들의 의무와 직책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졌다는 교훈입니다.
사도들의 의무와 직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옥에 감금되었으니 이들은 사명을 감당해야 함으로 옥문이 절로 열리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 할 것은 이 제자들과 같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소임을 다 할 때에 이같은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물질을 드려 봉사하면 반드시 물질에 대한 보상이 있습니다
2) 몸을 드려 봉사하면 반드시 건강케 되는 보상이 있습니다
3) 마음을 드려 봉사하면 평안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들이 기적을 원하지만 그 기적이 이루어지는 배후의 사건을 알지 못하고 원하기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철저하게 영적 원리에 따라 일어납니다.  믿음의 원리, 순종의 원리, 헌신의 원리, 심은대로 거두는 원리입니다.
3. 사도들의 신앙을 통한 우리 신앙을 점검해 봅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위협은 물론 투옥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말씀 전파하는 일에 골몰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협박과 위협으로 죽인다고 해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감옥에 가서도 기도와 찬송하는 일에 전념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심한 고문과 매도 맞고 춥고 배고픈 일이 있었으나 육신에 대한 어떠한 고통과 염려와 두려움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아니했습니다. 육체야 어떻게 되던 신령한 구령 운동에 전념을 다하는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감옥에서) 옥문이 열림 그 순교적 자세의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정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나를 피곤하게 했던 "무너진 인격과 싸우지 말고 더 큰 하나님의 역사와 싸우라"
4. 사도들은 원칙에 충실하며 사명감에 불타고 있던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이 제자들의 삶의 원칙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며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순종하며 살려고 힘쓰는 자들이었습니다. 29절" We must obey God rather then men"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도 이러한 원칙의 사람을 주님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자기 좋은대로 살려고 하며 자유롭게 방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복종 같은 행위가 무엇을 하는 행위인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삶이 바로 되지 못한 자는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은 옥에서 나와 다시 성전에 가서 가르쳤습니다. 보통 예를 본다면 감옥에서 탈옥케 되었으니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쉬고 싶고, 보고 싶은 식구들도 만나 볼 수도 있는데 이들은 곧 바로 성전에 가서 기도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 증거를 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개인의 생활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생활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절로 문이 열리는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 수감 생활을 했다 풀려난 주기철목사의 간증 )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든 생활가운데 잠겼던 문이 저절로 열리는 형통함을 받기 위해서는 나 중심의 생활이 ......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바꾸어 져야 합니다.  나 중심의 생활은 내 힘밖에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 중심의 생활은 하나님이 힘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네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나 하나님의 신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가 해서 된것이 무엇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그 어떤것으로도 감금이나 제제 할수없는 자유함이 있고 형통만 있다고 하는것을 보여준 기사입니다. 사도들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며 원칙에 충실하여 사명을 감당 했을 때 그들은 자유를 얻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함을 받았습니다.
성도여러분! 교회에서 무슨 직책을 맡았던지 그 직무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실망되고 낙심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람이 산다는 자체가 이러한 역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릅니다. 버나드쇼가 일생을 회고하면서 "내 생애에는 언제나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오는 실망이요 또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질 때 오는 실망이다 이유는 소원이 이루어져도 허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분을 지켜 주십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어도 죽지를 아니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 불에 들어갔어도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원칙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것입니다.
지난주 한국 분당 만나감리교회 김병삼 목사 설교를 듣다가 간증을 통해 은혜 받았습니다.  교우가운데 진리부동산 개업 개업예배 설교시 상호대로 진리대로 사십시오.  3개월후 심방했더니 한건도 없었습니다 /원칙대로 하다 보니까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부동산은 적당한 거짓말)6개월후에 예배를 드려달라 / 예배드리고 문닫으려고 한다 목사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런데 폐업한지 얼마 후 십일조라고 하며 2300 만원 가져옴 / 폐업예배 드린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닫은 가게 앞으로 새 길이 나며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오고 건물이 비싼 값에 팔림 2억3천이익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건물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겼다는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앙 원칙에 충실하는 그 믿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축복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를 붙들고 사명 감당하며 사십시오 성공한 사업가 장관 미국 존 워너메이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자기의 일을 발견하고 그 길로 나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최배송 /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아멘
신앙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직무에 충실한 성도되어 언제나 하나님이 저절로 문을 열어주시는 ...그래서 하나님의 보장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 2일
딤후4:6-21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혹 기억하실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1997년 11월 첫주에 오늘의 본문을 설교하면서 매년 11월 첫주에는 같은 본문과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할것이라고 여러분들께 약속했습니다. 작년에는 교회 이전 사정상 건너뛰고 올해로 11번째로 그 약속을 지키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사도바울이 소아시아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있는 디모데후서는 디모데 개인에게 보낸 편지로 신약 성경에서는 사도 바울의 가장 마지막 편지입니다.
그러고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은 “관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말함으로 그의 임박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관제(Drinking Offering) 민 15:1-12 희생제사의 마지막 부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는 유대인 동족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디모데,...그는 제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목회를 돕는 동역자요, 그러면서도 친 아들과도 같은 깊은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겨울이 오기전에 너는 어서 오라”
왜 사도바울은.. 지금 에베소교회를 섬기기에 여념이 없는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전에 어서 오라는 부탁을 하는것일까요? 뭔가 급한 사정이 있는것은 분명하지만,..겨울이 오기전에“ 라고 단서를 붙이는 이유는... 또 다른 애정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지중해는 겨울철이 되면, 예측할수 없는 겨울풍랑이 갑작스럽게 불어 닥칩니다. 사도바울 자신이 선교 여행을 하면서, 이미 여러차례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죽음의 경험을 했었기에 폭풍시즌이 시작하는 겨울전에 오라고 말함으로... 디모데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서 오기를” 바라는 그의 말 가운데서 사도 바울도. 한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죽음을 넘어선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로인해 그는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살았지만.. 죽음 때문에 복음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아와 추위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때로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맹수와 싸우기도 하고 배가 파선을 당해 죽을 뻔 도 했고 심지어는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39이라고 하는 최고의 태장을 3번씩이나 맞았고 돌에 맞아 거의 죽음 직전까지도 갔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압력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이미 생명을 바친 하나님의 사도 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감옥에 갇힌 사도바울은 외로움을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자신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의 황제 앞에 서게 되자, 믿음의 형제들이 자기를 떠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과 3년간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제자들이 골고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듯이 사도바울의 믿음의 형제들도 다들 떠나고 만 것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위기 앞에서 보여 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면 주위에 친구가 많아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진정한 친구는 실패와 위기 가운데서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누군가가 자기 옆에 있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저 옆에만 같이 있어주는 것으로 족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려운 순간, 고통스런 순간, 우리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주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자기에게 자기에게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냥 말없이 있어주기만을 원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일에 바쁜줄을 알고 에베소 교회에 필요한 줄도 알지만 자기 곁에 디모데가 와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게 몇가지 부탁을 합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고 외투와 성경책을 가져 올 것을 부탁합니다.
11절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여러분 마가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로서 사도바울이 바나바와 같이 1차 선교여행을 함께한 복음의 동역자 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선교여행중에 이 마가가 어려움을 참지못하고 도중 하차해 버린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일로 매우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조금 어렵다고 도증하차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도바울은 너무 낙심이 된 나머지 ,... 마가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중에 2차 선교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는 이 마가를 데리고 가기를 원했고 바울은 전에 쓰라린 기억이 있어 마가와는 결코 같이 갈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마가로 인해 그토록 절친했던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고, 선교를 위해 이방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죽음의 사선을 같이 넘으면서 동거동락 하던 바나바와 바울이 이 마가로 인해 서로 다투어 갈라지고 만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바울은..... 이 마가를 데려 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때가 되면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여기 사도바울도, .... 교회에 보낸 많은 편지에 용서할 것을 권유했지.. 그 자신 권유할 뿐만 아니라 .. 스스로 용서를 베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린다고 하는 말을 다른말로 말하면 하나님과 화해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기 이전에 먼저 화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이웃과 먼저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다툰일이 생각나거들랑 먼저 화해를 구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
주기도문을 외우다 보면 참으로 우리가 감당키 어려운 구절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옵시고 라는 구절입니다. 이 말을 앞뒤를 바꾸어 말한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것같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게 하옵소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용서의 힘을 가지고/..남을 용서한다고 하는 것, 정말 순서도 맞는것 같고, 이래야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같습니다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내가 나에게 해를 끼친 ....나의 형제를 용서할 때 그 후에 주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지난 한주간에 마음에 상처받은 일이 있어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거들랑 지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하기전에 먼저 남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용서하신다면.. 우리 주님도 도저히 용서하실 수 없지만 무조건 용서 하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마가를 용서 했습니다.
용서 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나를 도와달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한다고 말은 하면서 같이..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이제 사도바울이 또 하나 부탁하는 것은 드로아 가보의 집에 가서 .....그가 평소에 입다가 ...두고 온 .... 외투를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어두 컴컴하고 음침하고 습기가 많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의 추위와 고통을 생각하고...겨울이 오기 전에 겉옷을 가져오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외투가 무슨 특별한 값어치가 있는 옷이었을까요? ...
혹 로마에서 다른 외투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요?... 차라리 디모데가
돈을 가지고 와서 로마의 시장에서 새것을 살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는 드로아의 가보의 집에 가서 예전의 그 외투를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원했던 이 외투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전도 중에 맹수를 만나 싸우다가 찢어지고 / 여기저기 꿰맨 자국이 남아 있는 옷이었습니다 . 거기에는.. 그가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아 피를 흘렸던 핏자국이 베어 있는 옷이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옷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받았던 고난과 아픔을 통해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총을. 다시 한번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죽음의 순간 입고 싶은 옷이 있습니다. 한국서는 수의를 입히지만 미국에서는,.. 평소에 입던 옷을 입힙니다.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습니까? 언제 어느 순간 죽을지 모르니까.... 미리미리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말해 두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거들랑 이 옷을 입혀 달라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은총이 담긴 옷, 에벤에셀의 옷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또 성경책을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 가죽 성경책에도 여러 가지 사연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로마에 두루마리 성경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새 성경책이 없을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기의 신앙의 얼이 담긴 그 성경책을 원합니다.  저도 제 서재에는 많은 성경책이 있습니다. 제 신앙의 대를 이어온 성경책이기 때문에 낡았지만 귀하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이 가져 오기를 원했던 이 가죽 성경책은 바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였을 것입니다.
겨울은 인생에 비교한다면 죽음에 비유됩니다. 푸르럿던 잎들을 다 떨쳐 버리고.. 벌거벗은 몸, 맨 몸으로 사는 계절입니다. 자신을 감싸던 오색 찬란한 잎들을 다 떨어 버리고 맨 몸으로 서는 계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는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다 벗어 버릴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겨울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2008 년도의 겨울이 아니라 인생의 겨울 말입니다.
신앙은, 아직 오고 있지 않은 것을 볼 줄 아는 힘입니다. 우리의 겨울은 이제 코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인생이란 시간은 우리의 생각대로 그리 움직여주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정한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시간,.. 우리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속히 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일도 할 때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할 수 있을 때 교회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성전 봉헌예배를 드린 후 많은이들로부터 격려를 들었습니다.  지난주 버지니아의 교회 제직 취임식에 가서도 많은 목사님들로 부터 " 모두들 열심하더니 좋은 결과 얻었다는 격려를 받았고 심지어는 한국식당에 가서도 직원으로부터 축하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새 생명 구원을 위하여 전도에 더욱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겨울이 오기 전에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를 읽어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인생이란 시계는 한번만 태엽을 감는다네, 그리고 이 시계의 바늘이 언제 멈출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조금 일찍 올른지, 아니면 조금 후에 올른지 오늘 이라는 시간만이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이지 지금 허락될 때 힘써서 일하고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해야지, 내일은 약속할 수 없다네 그 어느 누구도....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26일
민12:1~11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이번 주일 설교는 강중희 목사님이 선포 하셨습니다.
오늘 은혜의 말씀을 선포해 주신 강중희 목사님(인천세광교회)께 감사드립니다.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19일
민2:1-2 아름다운교회의 삶
오늘 우리교회는 창립 15주년을 맞이 했습니다 한없는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돌리며 오늘의 이 찬란한 새 역사를 이루기까지 함께 동역해 오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만 해서는 안되겠지만 역사를 알고 전통을 잘 보존하고 계승함은 오늘 우리의 과제입니다.
15년 교회 역사의 회고
년도 표어
1994 믿음으로 전진하는 교회 (히12:2)
1995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행9:31)
1996 일하며 성장하는 교회 (요5:17)
1997 새 역사를 창조하는 교회 (사43;19)
1998 네 장막 터를 넓히라 (사54:2) 교우들이 집 장만 대세
1999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49:22) 본격적 축복
2000 예수 사랑 총력전도 성전 건축 (요13:34)
2001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아쉽게도 본격적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교세가 약화됨
2002 날마다 더하여져 가는 교회 (행2:46-47)
200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12)
교회적 시련이 오면서 믿음을 보존하는 시기
2004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고후9:8)
2005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 (요15:10-11)
2006 희망을 주는 교회 (호12:6)
2007 선교하는 교회 (막16:15)
2008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교회 (사45:25)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교회의 삶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민2장에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12지파의 진 배치와 가난안을 목적지로한 광야 행진을 위한 행군 순서가 마련되어있다 즉 하나님께서 성막중심의 진 배치를 명하신 사실과 행진 및 숙영할 때에 각 지파가 위치할 장소에 대한 계시로 행진 때 중심이 될 유다, 르으벤, 에브라임, 단지파의 진 기에 각각 소속된 지파들의 명단과 그들의 장정 수가 소개되고, 그들보다 성막에 근접하여 위치할 레위 지파의 배치에 대하여 소개하고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 장정의 총 수와 레위지파의 특별한 위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성막 중심의 삶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1.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2절“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고 했다 여기 회막은 성막을 말하며 오늘의 의미로는 교회를 말한다 * 집의 출입문이 교회를 향하도록 하라
즉 이스라엘의 삶의 거처인 진 즉 천막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 배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생활의 모든 영역(동서남북) 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강조하신 것이다.
단지 숙영(잠을잠) 때문만 아니라 행진시 에도 성막중심의 진 배치를 함으로써 어느 환경과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사는 삶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은 없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진영배치는 죄악과 불의가 가득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소망 있는 일인가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결국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삶이다.
2. 성막 중심의 삶이란 상호 협력의 삶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살아가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부단히 필요하다 / 성막을 중심으로 한 진 배열을 보면
바로 이 협력정신이 강하게 들어있다 하나님께서는 동서남북 4방향의 진영을 각각 야곱의 아내와 첩들의 후손 지파를 고려하여 배치 하셨다.
그렇게해서 하나님께서는 혹 발생할지도 모를 감정적인 분규를 미연에 방지하고 각 지파들로 하여금 상호 협력하고 하나 되는 일에 힘쓰도록 조치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는 늘 협력하는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막2장 중풍병자 고침의 협력
3.성막 중심의 삶이란 질서와 조화의 삶이다
20세 이상으로 전투 가능한 수효는 603,550 명 이었고 그에 기준하여 여자와 노약자들을 합친다면 무려 2-3백만명으로 추산되는 큰 무리가 함께 숙영하고 이동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질서하고 혼란해 질수있는 대 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질서있게 진행 시켜 나갈수 있도록 특별한 지침을 마련해 주셨다 뿐만아니라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인구수를 적절히 균형있게 배치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해 지지 않도록 조치 하셨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많은 지파로 하여금 적은 지파의 약점을 보완 함으로서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질서있는 신앙생활과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원만하고 조화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 것이다.
목회자나 성도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하나님의 집의 질서를 위하여 직분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하나님의 교회의 여러 직임을 두신 것은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목사의 직임)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결론)이 뜻 깊은 주일에 드리는 회개와 소망의 기도의 제목입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듯이 우리들은 영적인 가나안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자
2.이스라엘이 성막중심으로 진을 쳤듯이 우리는 심령과 생활에서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성막은 예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중심의 삶이란 예수님이 나의 삶에 총 사령관이 되시는 것이요 내가 죽는 것입니다.
3. 교회생활에서 서로 시기하며 경쟁적인 삶을 사는가? 아니면 서로 돕고 상부상조하는 사역을 하는가?
4. 교회와 직장의 삶 가운데서 약한자를 돕고 짐을 서로 지는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12일
행 5:12-16 교회는 병원입니다
당신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믿음의 영웅이 됩시다 아멘...
지난주 말씀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범해서 징벌을 받아 그 생명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능력의 역사는 많이 나타나고 예루살렘 장안에 소문이 크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능력의 역사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에게 이 병고치는 능력을 주셨는데 심지어는 베드로가 지나갈때 그 그림자에 덮힘을 받아도 병이 낳는 줄로 믿어서 사람들이 병든자를 침대 위 또는 길거리 담요 위에 뉘여 놓고 베드로가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예루살렘과 그 주위에 있는 동네 사람들까지 병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못 고치는 병이 없이 다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부흥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모인 무리들에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모든 사람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교회가 불치의 질병을 고치고 괴로움을 받는 모든 사람을 치료하는 그런 병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종합병원입니다.  이병원에서 인생들은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구제 불능이었던 사람들도 교회에 나아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형편없던 사람들이 신사가 되고, 숙녀가 됩니다. 불행에 찌들리던 사람들이 행복해 집니다 .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주신 이 병원에서 모든 것을 고침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질병에 허덕이고 여러 가지 질병에 지쳐 있습니다. 아니 다른 질병이 아니더라도 인생들은 저마다 지쳐 있습니다 돈에 지치고, 사람에게 지치고, 자기 자신에게 지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는것에 지쳤고,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심지어 자식이나 배우자에게도 지쳤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지침으로 살 의욕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수고와 질병도 이 좋은 교회라는 병원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시골 여성도 자식 간증)
교회는 병원입니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육신적인 질병이든지, 정신질환이든지, 가난에 관한 질병이든지, 다 고침을 받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경제의 문제나 건강의 문제로 고통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은 고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병원인 이 교회는 여러분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교회라는 병원에서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본문 16절을 보면 다 나음을 입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침 받는 순서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고침을 받을 수 있느냐?
1. 첫 번째는 교회로 나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교회로 나아와야 고침을 받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이 가로막아도 나와야 고침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다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솔로몬 행각은 기둥이 162개나 되는 큰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거나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붙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도 나온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에게 나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모든 불행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할 것을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거북이도 먼저 목을 뽑아 내야 앞으로 갈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지만 먼저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기도로 모일 때 함께 모이십시오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함께 모이십시오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주저앉으면 바로 그 자리가 실패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 모이고, 더욱 힘써 성공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사이 다니엘 21일 기도회로 매일 저녁 모이는데 소위 직분 받았는다는분들 가운데 한번도 참여치 않으신 분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각성하셔야 됩니다 20일 부터는 새로 삽결줄 33 기도운동이 시작됩니다 많이 작정 하십시요
2. 병원에 와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의 처방을 따라야 합니다. 수술할 병이면 수술을 해야 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의사가 금식하라고 하면 배가 고파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의사가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하면 다리를 잘라야 합니다 그래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하십시오 설교를 통하여, 또는 구역회를 통하여 또는 성령의 감동으로 받은 모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설사 다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불행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썩은 다리를 아끼려다가 온 몸을 잃는 것보다 썩은 다리를 잃고 온 몸을 얻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큰 것을 잃게 됨이 너무나 많습니다. (소탐대실)
여러분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설교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것과, 성경공부 모임을 통하여 배운 것을 행하십시오 그것이 모든 질병을 물리치고 복되게 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처럼 해야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믿지 말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합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눅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령과 진리에 기초해서 전파하는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함이 곧 하나님을 경외함이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아 주일을 성수하고 전도생활에 힘쓰고 십일조를 드리고 봉사의 일에 참여하는것이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믿으므로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요 말라기서 4:2 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송아지 뛰는 것 보셨습니까? TV 한국 대관령 목장/ 교회사슴 온 대지가 자기 것처럼 누비며 뜁니다. 여러분 순종 하십시오 복종 하십시오 그것이 어려워도 복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늘 그렇게 살 뿐입니다. 늘 그 질병에 시달리거나 더욱 힘겨워질 뿐입니다. 그러나 복종하면 큰 기쁨으로 뛸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회복되는 시간이 아주 조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와서 처방을 받거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회복입니다. 조금 있으면 건강한 몸으로 일어설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병원 되는 교회에 나와서 그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였다면 우리는 잠시 후에 모든 것이 치유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여 행하였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 우리를 불행하게 하던 모든 것이 물러갈 것입니다.
가난이 불행이었다면 가난이 물러갈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불행이었다면 정신적인 것이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잘못된 습관이 불행이었다면 그 습관이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조금만 더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안되는것 같아도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 우리는 봉헌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성전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우리에게 있었습니까? 안되는것 같았지만 하나님이 행하셨잖습니까? 세틀먼트 날자도 세번씩이나 어겻고 , 융자는 더욱 힘들어 졌고, 더욱 마지막 세틀시에는 깨질 단계까지 갔지만 하나님이 결국 도와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병원인 교회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조금 그 축복이 늦는 것 같을 때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그곳에 좋은 곳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행복한 곳이 있습니다. 서둘러 주저앉아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였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순종하셨다면, 복종하셨다면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준비하신 치료의 광선이 비출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종하지 못하였다면 복종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지 복종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병원이 되는 교회에 날마다 다니면서도 늘 병든 인생으로 그렇게만 살 것입니다. 더욱 복종하고 순종하여 기적의 치유를 경험하는 모두가 되십시오 교회는 병원입니다 처방을 따라 순종하고 기다리면 누구든지 고침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성령의 감동과 설교 말씀에 순복하여 큰 축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 6일
행 5:1-11 하나님이 속으실까요?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로 크게 부흥의 불이 붙어 가자 밭과 집을 팔아 헌납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바나바가 자신의 밭을 팔아 바쳐서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되자 아나니아 부부도 부러운 생각이 들었든지 자신들의 땅을 팔아 바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잘못된 동기에서 헌금을 하다가 벌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무슨 수단으로 만인 위에 뛰어나는 명예를 얻을까 하는 것이 아나니아 부부의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인 사도를 속인 죄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의 책망을 받고 부부가 연속적으로 즉사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들이 더 많아졌고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음으로 교회는 더욱 크게 부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좋은 일이 아니라 불행한 일로 교회가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교회시험의 첫단계)
초대교회의 최초의 위기는 재정의 위기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단은 첫번째로 교회 재정의 문제를 가지고 교인들과 교회를 공격해 온다
1. 돈을 사랑하는 자의 결국을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축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바나바는 밭을 팔아 사도 앞에 드리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밭을 팔아 사도 앞에 드렸어도 영육이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헌신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헌신이 있고 죽도록 힘을써도 하나님이 안 받으시는 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인과 아벨처럼 말입니다.
잠22:4에 ""고 했습니다. 물질은 내것이면서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면 죄가 됩니다. 여리고성 정복 때 부정한 일을 행한 아간과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물질 문제로 죄를 짓게 되어 영육이 파멸되고 말았습니다.
1)그들은 돈을 사랑하므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손상시켰습니다.
이들이 진정한 제자들이었다 할지라도 돈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경건생활의 높은 경지까지 올라가는 것을 틀림없이 방해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돈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마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했습니다.
2)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오순절의 경이로운 사건들을 증거하였을 것이고 앉은뱅이가 치료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으며 제자들간의 친교를 누렸고 혹은 그들 자신이 회중의 기도를 인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자리 잡은 이 돈에 대한 열망은 그들을 하여금 더 이상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극악한 죄의 길로 빠져 버렸습니다. 즉 탐욕과 거짓, 위선, 허영, 속임으로 위장과 가식속에 빠짐으로 인하여 그 영혼 속에 악의 비참한 열매들을 추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딤전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하심과 같이 아나니아 부부는 이같은 지경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부부도 이 땅에 많이 있습니다.
뉴욕의 최현덕 집사 간증 수동기도원에서 강사님 안마해주는일 방문한 장로님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이민 결혼 / 뉴저지 병원 지압 치료사로 취직 6000불 소득/ 주일 못 지킴/교회 사찰로 들어감 월급여 2천불 얼마나 손해냐? 그런데 보세요 둘때 아이 임신때 임신중독으로 인하여 혈압이 고혈압 둘째 아들 장에 구멍 뚤림 /누구 하나 죽을 줄 모르는 상황 / 출산 600그램 마취가 깨지않아 인큐베이터 /하루 병원비 1만불 , 3개월 후 하루는 병원에서 오라고 해서 두 부부가 간절히 기도하고 감/ 인큐베이더 앞에서 아이에게 아빠왔다 아이가 깨어나는 기적 의사들이 놀람 오마이 갓 그런데 총 병원비 100만불 뉴욕주 유대인 병원 /1년에 무료 수술자 3 선정 /21살까지 병원 공짜 매월 200불씩 지원 돈보다도 하나님 편 선택 당시에는 손해 같아도 나중 이익 순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편을 산택하고 영적인 편을 선택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나중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2. 외식 된 자는 망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는 없는데 바나바 등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은 증표로 헌금을 하니 아나니아 부부도 은혜를 받은 것 같이 이를 모방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밭을 팔아서 헌금을 하며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자랑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1)주님은 외식을 제일 미워 하십니다
마23:13에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 가려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고 책망하셨고 (마23:23)에도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외식자의 기도까지 미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눅18:9-14 바리새인들은 기도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이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같이 외식된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미워하신 것입니다. 다만 주님은 진실을 원하고 계십니다.
2)성도는 물질 때문에 외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명예심이 합작할 때 흔히 인간들은 외식하며 교만해 집니다. 약1:15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했습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곧 그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3) 인간의 체면과 권위의식 때문에 흔히 외식합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물질을 바치지 않으면 체면과 교회안의 자기들 권위가 떨어질 것을 생각하여 거짓으로 외식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체면, 권위를 벗겨 주는 곳이며 어린이로 만드는 곳이지 사람을 외식으로 가장 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3. 사탄에게서 미혹을 받아서 성령을 속였습니다.
3절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아나니아는 사단에게 마음을 완전히 정복 당했습니다.  사탄은 속이는데 명수이며 속이면서도 믿음직하고 정직한 것같이 진실을 위장합니다 사탄의 공격에 녹아 떨어진 아나니아 부부는 완전히 사탄의 손에 붙들려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금요기도회때도 말씀 / 사단은 100% 거짓 사람들이 10%만 믿어주어도 성공이라 생각 탈렌트 최진실씨의 자살을 생각해 보라 거짓 소문을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인것은 아나니아는 은혜 받은자 중의 한 사람인데 사탄의 미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들 부부는 전 소유를 팔고 나니까 다 바치기에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다 내어 놓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살까하는 염려의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단이 그 틈 을 타서 그 마음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그 열매에만 호기심을 가져 신앙이 헤이해진 그 틈을 타고 마귀가 적극적으로 공격해 들어간 것입니다. 교단 수련회/화요일 오후 자유시간 /미국 목사님들 골프 /이요셉 목사와 함께 성극 관람 10분거리 천지창조 /하와/ 가인의 살인 /주변에 마귀들을 포진시켜 놓았더라 /주일학교 교육 / 차량필요
가룟유다가 공금을 취급하며 사용하다가 사탄이 그 마음속에 들어간 것처럼 아나니아 에게도 허영심과 불신앙심의 틈을 열어 놓았을때 사탄이 들어가 그의 불행을 가져 오게 한 것입니다.
4. 아나니아의 위선적 죄는 결국 성령님을 속인 죄가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의 잘못은 밭을 판 돈 중 얼마를 감추어 두고 다 바친 것처럼 위장한 것입니다. 더욱 과관 인 것은 그 재산 일부를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안 바친 돈을 찾으려고 그 집을 수색하지도 아니할텐데 그 모두를 하나도 남김없이 바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땅에 묻어둔 것입니다. 이 같은 일로 사람들을 속을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까지 속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이란 사람을 의식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코람데오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것이나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개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붙는 듯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중생의 은혜를 받고 새로운 영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세계를 향하여 가려고 하는 의욕을 소멸하고 세속적인 것을 취하는 것도,...... 성령을 조소하는 것도 죄악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탄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알고 광신적인 태도로 나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또한 여기에 미혹하는 자도 많으니 이것도 또한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잘 구별하여 성령의 역사는 취하고 사탄의 역사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발람은 천군 천사가 저의 길을 막기까지 했는데도 이를 거역하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아나니아 부부가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고서 멸망함을 당했습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요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사랑의 대상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또 신앙생활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사람 의식하려다가 외식의 죄를 범하고 더 나아가 성령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우리 교회에는 한분도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9월28일
행3:1-10 성공하는 신앙인이 되려면
오늘 야외예배를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자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예배하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날마다 사람들이 메고 와서 성전 문앞에 두었는데 이 사람은 성전을 출입 하는 자들을 향해 구걸하여 하루하루 생활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면서 앉은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배안에서 장애자가 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기술로나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임을 말해 줍니다.
하지만 이 불쌍한 생명을 불쌍히 여겨 동정심으로 이 앉은뱅이를 날마다 메어다가 성전문 밖에 놓아 주는 사랑의 실천자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병든 영혼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지옥으로 가는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약한자 불구자 불행을 당한 생명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 예수의 이름이 머무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 거지를 바라보는 베드로는 그 마음에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근본 문제 해결은 예수의 이름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물론 자신들에게 은과 금도 없지만 만일 은과 금이 있어서 그것을 앉은뱅이에게 준다고 해도 그 물질적 도움이란 임시적으로 그 육체의 굶주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고 앉은뱅이는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 이름을 준다는 것은 그 인격과 그 능력을 아울러 주는 것이 됩니다. 사람의 이름에는 언제나 그 인격 전체가 포함됩니다. 그 이름이 욕을 먹으면 그 인격이 욕을 먹게 되며 그 이름이 영광 받으면 그 인격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다는 것은 예수의 인격과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때 "예수 믿으십시요"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주는 행위로 전도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과 아울러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는 곳에 사탄이 두려워 쫓겨 갑니다 육의 병든 부분이 고침을 받고 마음이 상한자가 평안을 얻습니다 낙심된 자가 소망을, 슬픔을 당한 자가 위로를 얻으며 천한 자가 귀해지고, 악한 자가 선해지고, 어둠이 변해 광명이요 영원히 죽을 자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나의 시선을 주님께 맞추라는 교훈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지나가는 사람을 자세히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손만 내밀고 한 푼만 도와 달라고 구걸했지 누가 주고 가는가를 자세히 쳐다보지도 아니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하고 쳐다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의 눈과 성령받은 베드로와 요한의 눈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은혜의 초점이 마주친 것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렌즈의 초점이 잘 맞아야 사진이 선명하게 잘 나오는 것이지 초점이 잘 맞지 않으면 사진이 흐릿하게 나옵니다.
그와 같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려면 우 리의 마음과 주님의 마음이 똑바로 맞아야 합니다. 시선이 흐트러진 자세는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입니다. 심령이 흐트러지면 눈이 맑지 못합니다. 눈이 목표 없는 흐트러진 자세 광적인 태도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처럼 정신이 주님을 향해 집중 될 때 주님과의 올바른 만남으로 은혜와 축복과 갖가지의 기적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도는 성전에서 항상 기도해야 불신자들에게 영향력을 줄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들은 제9시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의 거룩한 풍습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의 일정한 시간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단6:10)그들은 때를 정하여 놓고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힘으로 한날 한날을 걸어가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주일 낮뿐 아니라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매일 새벽에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막1:35).
정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 유지하게 하는데 큰 유익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에 올라간 것은 합심하여 기도하기 위함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합심하여 여럿이 기도하는 것은 더욱 뜻이 큰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 같은 목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요사이 다니엘 21 기도회 중인데 반드시 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응답이 벌써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부탁까지 하셨으니 우리도 성전에 나와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 21일 기도회 강조
다니엘 기도가 끈나면 계속해서 33기도운동을 하고자 합니다 전4;12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사람이 세명의 기도동지를 모아 9시에 33분 합심기도하자
4. 이 병자를 통해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실제적 신앙생활의 교훈은
1)성전 밖의 인간을 성전안의 신자로 변화케 하시려는 주님의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계3:20)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은혜밖에 생활에서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8절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이 거지는 물질 이상의 장소로 그는 자리를 옮기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위치 이상의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옮기게 되어 하나님의 집안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2)인본 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변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1)인본주의 /사람을 쳐다보는 생활 신본주의/하나님의 영광을 쳐다보는 사람.
일부러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고자 하던 생활에서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며 슬픈 소리 애걸하던 목소리가 견딜 수 없는 기쁨이 넘치는 찬송하는 소리로 바뀌었으며 사람들의 비난과 간섭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동조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2)인본주의 /사람들에게 구걸 신본주의/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그의 상태는 하루 종일 인간의 노래를 하는 사람이였으나(그의 노래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왔네) 이제는 자나 깨나 오직 하나님만을 찬송하는 사람이 된것입니다(어둡던 내눈 밝히사).
물질을 초월한 신령한 생활이 그의 일과가 되었으며 하루 종일 앉아 있어
슬픈 노래를 부르던 것이 이제는 하루 종일 뛰면서 주를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인본주의 사람에게 구걸하지만 신본주의는 하나님께 구합니다 LA 산타모니카 정현숙 권사 간증 목사님이 신학교 졸업후 개척위해 기도원 40일 금식기도 20일째 되는 날 정권사가 목사님께 질문 왜 금식하느냐? 돈 없고 사람 없고 하나님밖에 없으니 기도한다 40일 기도 마치는 날 정권사가 100만원 (30년전당시 큰 돈) 가지고 와서 전도사님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척자금으로 쓰라 그런데 그 100만원은 당시 정권사 가정 청계천에서 스덴그릇 장사하다가 사업이 부도나서 망한상태 빛 잔치하고 남은 모든 부동산 팔아 가져왔다 목사님의 간절한 축복기도 일평생 하나님앞에 물질어려움 없게 해달라 남편은 인도네시아로 도망 우연히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 아들과 친분을 갖음 마침 한국건설경기 대우 현대 모든 공사계약은 남사장을 통해서 하라 공사 수주하면서 일약 거부/(사람들에게 구걸 말고 하나님께 구하라
살다보면 선택의 순간이 온다 하나님편이냐 사람편이냐 영적이냐 육적이냐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잘될 때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 누군들 못하랴 어렵고 힘들 때 더욱 주 의지하라
3)의타주의에서 자립주의로 변화케 하시는 교훈입니다.
거지의 전의 생활은 순전히 의타주의였습니다 성전에 나오는 일도 남의 도움을 얻어 메어다 주어야 겨우 올 수가 있었고 와서 하는 일도 사람만 바라 보는 일이었습니다. 몇푼의 돈을 벌어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도 역시 그는 남의 충분한 도움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어 자립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걸어 다니게 되었고 이제 성전 안으로 돌아다니며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게 됨으로 사람을 기대하거나 사람에게 도움 받던 생활은 이제 완전히 청산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 밖의 신자가 성전 안의 신자로 변하고 인본주의 신앙이 신본주의 로 바뀌며 의타주의에서 자립주의를 바뀌기를 오늘도 주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8절에 "하나님을 찬미하고"했습니다. 하루하루 구걸로 겨우 연명해 가면서 영적인 문제보다 우선 눈에 보이는 일 육신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을 그에게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라는 이름이 지닌 권세를 체험했으며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예수를 만났으므로 영혼이 살수 있었고 일어나 걸을수 있는 생명력 있는 영혼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십시오 살아납니다.
오늘 우리를 성공적 신앙인으로 이끌 실제적 교훈
1. 남의 불행을 제거해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앉은뱅이의 평생의 은인이었던 베드로 요한같이 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기억에 남을 일을 하며 삽시다.
2. 인간들의 참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해결해준 사도들 같이 우리가 은과 금으로는 주지 못하지만 예수의 이름은 줄 수 있으니 이같은 일에 인색하지 맙시다.
3.사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서 충만한 사람이니 오늘 우리 마음속에는 무엇이 충만한가 자신을 조명해 보고 이제부터 사도들과 같이 예수만 충만한 자가 되기 위해 힘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9월21일
행1:4-11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그동안 우리는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생존 당시의 기적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었는데 오늘 부터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되어 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중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 하시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승천하신 분이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신 에녹이요(창5:24). 또 한분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가 있습니다 (왕하2:11). 그러나 그들이 죽지 않고 그대로 변화하여 승천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속죄의 공로가 없고 개인의 영광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 값을 십자가의 피로 지불하고 속죄의 공을 세우고 다시 사셔서 승천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도 죽지 않고 승천하셨다면 속죄의 공을 세우지 못했고 구원의 역사도 완성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번 죽어 속죄 제물과 화목제물의 사명을 완수하고 부활하여 승천했기 때문에 그것은 인류를 위한 영광의 승천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리스도의 신분에 관한 교리 곧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의 몸에서의 탄생, 십자가의 죽음 후 삼일만의 부활, 사십일만의 승천, 마지막 날의 재림 이 모든 교리가 다 중요한 것이지만 그 중에도 현재 우리에게 직접 관계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한 교리인 것입니다.
1. 그러면 첫째로 ,.. 예수 승천의 광경과 의의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보는데서 영광중에 구름타시고 흰 옷 입은 두 천사의 호위 속에 승천하시며 두 천사가 주님 이 다시 오실 것을 예언하면서 승천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교주 석가모니가 승천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가 숲속에 들어가 머리는 북으로 발은 남으로 두고 죽을 때에 승려들이 입관하여 그 관을 옮겨 가려고 했지만 들리지 않았는데 그 관이 허공에 올라 그 도시의 공중에 머물다가 7일만에 성중에 내려왔고 화장하려고 했으나 불이 관에 붙지 않았고 그후에 관이 다시 허공으로 올라가며 불이 스스로 나서 타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승천치고는 묘한 승천 이야기입니다. 거짓/ 1988년 5월 초파일을 맞은 당시 조계종 종정스님이신 성철스님의 법어 / 중생위해 부처는 지옥에 계신다. 지옥은 말하였지만 찬국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모마리아가 승천했다고 주장하며 1950년 11월1일 전 교황 비오 12세가 그 승천을 공포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마리아가 승천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 승천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 승천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1) 예수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귀향을 의미합니다.
그가 하늘로 부터 오셨으니 하늘로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하늘은 예수님의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요14:4에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바로 그길은 승천하시는 주님의 향방을 뜻합니다 이는 주님이 가신 천국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 장막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때 누구든지 이 영광의 본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는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는 사실앞에 절망하지 말것입니다. 요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요8:23에 예수님은 "나는 이 세상에 속허지 아니했다"라고"하셨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세상의 생활은 머리 둘 곳 집 한 채 마련하시지 않으셨고 그런 그의 삶은 자기의 본향이 천국이라고 생각할 때에 그의 귀향은 지당한 것입니다.
2)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영원한 거처를 준비키 위한 승천입니다.
요14:1-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곳에 너희도 항상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목적중 하나가 신자들의 영원히 살 수 있는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래 천국의 개척자요 선구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거처할 곳이 다 준비가 되면 각자에게 주시고자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가시기도 하시고 또한 어떤 자들은 재림시에 데리고 가시어 주시기도 합니다. 불교는 이 거처할 집을 마련할 신이 없어서 그들의 영혼이 이곳저곳 유리 하다가 여러가지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 어떤자는 동물로 어떤자는 미물로 어떤자는 사람으로 태어 난다고서 살상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런 유리하는 영이 되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집을 주님이 준비하시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3)예수의 승천은 천국의 실재성을 확인하신 기사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영체의 몸이 되었지만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인간과 다른것 없이 똑같이 생활을 하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시고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몸이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 가실 곳이 있고, 거처할 곳이 있어서 그곳에 계시고 이 땅에 아직 내려오시지 않고 있으니 이는 분명코 그가 말씀하신 대로 천국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천국에 대해서 눅23:43에 한편 강도가 당신에 나라에 이를 때에 나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할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심을 보아도 천국이 있음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고후5:1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육신) 무너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을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하게 될 때에 행7:56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것을 보노라"고 외쳤으며 고후12:2에 사도바울은 "세째 하늘 즉 천국에 가 보았노라"고 했고 사도요한은 계21-22장에서 천국이 있음을 소상히 전해 주고 있습니다.
4) 예수의 승천은 승리를 보여준 증거입니다.
사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영적 생활에 있어서 승리자 보다는 패배자가 더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진 자 가 적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그 길을 어김없이 생활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승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는 문제로 인해 아버지께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시고 그 길을 피하시지 아니하시고 고초를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들처럼 교훈이나 하시고 십자가를 안지셨더라면 한 위인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 승천하시는 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로마의 정부가 그를 죽이면 예수는 완전 멸망하고 그의 자취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권세자들이 본 빈 무덤만 남기고 승천하셨으니 박해자와 죽음에서 완전 승리를 하신 것입니다.
5)승천은 주님의 통치가 시작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호흡이 끊어지고 심장의 고동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때 인간의 생명이 완전히 끝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더 높고 더 좋은 영생이 시작됨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승천은 주님을 섬기는 사역의 입장에서 볼 때 더욱 성스럽고 영광된 사업입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을 뒤덮은 구름을 타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 육신 생애의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갈 길을 갔다고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실 그의 통치는 이제 부터인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들을 불러 구원시키려 하심이지 세상의 권세나 명예를 위해 오신것이아니기 때문에 그의 능력이나 통치력을 나타내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승천하시고 가신 그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그의 능력과 권력이 회복되고 그가 주관 하시는 대로 되어지는 영원한 나라이므로 그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의 세력이 없어서 다시 그의 선한 성품을 꺽어 버리려고 하는 자는 없고 평화로운 세계의 주인공인 주님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찬양/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 받으소서, 받으소서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6)예수의 승천은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시려 의미입니다.
(요16: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했습니다.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 옆에서 돕는분 위로자 보호자 변호자 성령충만을 사모하자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으로 당시의 사명을 마치고 남은 뒷 사업은 성령께 일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 하신것을 기다리라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백이십 명의 성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은 지금부터 예수 오시는 날까지 성도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우리를 신부로 단장시켜서 주 예수께 신부로서 드림으로써 그 임무를 마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7) 마직막으로 예수의 승천은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일어나셨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승천하셨다는 소식이 조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 초기에 니고메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20:17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하시며 이 사실을 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의 권위는 그의 말씀이 너무나 정확히 이루어짐으로써 증명되었습니다. 승천은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심과 강림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응답과 사명 완수만 남았습니다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이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내가 살아있고 우리교회가 존재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고로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영광 중 기쁨으로 맞기위해 믿음으로 살고 선한 일을 하며 살고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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