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0월26일
민12:1~11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이번 주일 설교는 강중희 목사님이 선포 하셨습니다.
오늘 은혜의 말씀을 선포해 주신 강중희 목사님(인천세광교회)께 감사드립니다.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19일
민2:1-2 아름다운교회의 삶
오늘 우리교회는 창립 15주년을 맞이 했습니다 한없는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돌리며 오늘의 이 찬란한 새 역사를 이루기까지 함께 동역해 오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만 해서는 안되겠지만 역사를 알고 전통을 잘 보존하고 계승함은 오늘 우리의 과제입니다.
15년 교회 역사의 회고
년도 표어
1994 믿음으로 전진하는 교회 (히12:2)
1995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행9:31)
1996 일하며 성장하는 교회 (요5:17)
1997 새 역사를 창조하는 교회 (사43;19)
1998 네 장막 터를 넓히라 (사54:2) 교우들이 집 장만 대세
1999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49:22) 본격적 축복
2000 예수 사랑 총력전도 성전 건축 (요13:34)
2001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아쉽게도 본격적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교세가 약화됨
2002 날마다 더하여져 가는 교회 (행2:46-47)
200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12)
교회적 시련이 오면서 믿음을 보존하는 시기
2004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고후9:8)
2005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 (요15:10-11)
2006 희망을 주는 교회 (호12:6)
2007 선교하는 교회 (막16:15)
2008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교회 (사45:25)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교회의 삶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민2장에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12지파의 진 배치와 가난안을 목적지로한 광야 행진을 위한 행군 순서가 마련되어있다 즉 하나님께서 성막중심의 진 배치를 명하신 사실과 행진 및 숙영할 때에 각 지파가 위치할 장소에 대한 계시로 행진 때 중심이 될 유다, 르으벤, 에브라임, 단지파의 진 기에 각각 소속된 지파들의 명단과 그들의 장정 수가 소개되고, 그들보다 성막에 근접하여 위치할 레위 지파의 배치에 대하여 소개하고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 장정의 총 수와 레위지파의 특별한 위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성막 중심의 삶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1.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2절“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고 했다 여기 회막은 성막을 말하며 오늘의 의미로는 교회를 말한다 * 집의 출입문이 교회를 향하도록 하라
즉 이스라엘의 삶의 거처인 진 즉 천막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 배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생활의 모든 영역(동서남북) 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강조하신 것이다.
단지 숙영(잠을잠) 때문만 아니라 행진시 에도 성막중심의 진 배치를 함으로써 어느 환경과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사는 삶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은 없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진영배치는 죄악과 불의가 가득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소망 있는 일인가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결국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삶이다.
2. 성막 중심의 삶이란 상호 협력의 삶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살아가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부단히 필요하다 / 성막을 중심으로 한 진 배열을 보면
바로 이 협력정신이 강하게 들어있다 하나님께서는 동서남북 4방향의 진영을 각각 야곱의 아내와 첩들의 후손 지파를 고려하여 배치 하셨다.
그렇게해서 하나님께서는 혹 발생할지도 모를 감정적인 분규를 미연에 방지하고 각 지파들로 하여금 상호 협력하고 하나 되는 일에 힘쓰도록 조치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는 늘 협력하는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막2장 중풍병자 고침의 협력
3.성막 중심의 삶이란 질서와 조화의 삶이다
20세 이상으로 전투 가능한 수효는 603,550 명 이었고 그에 기준하여 여자와 노약자들을 합친다면 무려 2-3백만명으로 추산되는 큰 무리가 함께 숙영하고 이동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질서하고 혼란해 질수있는 대 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질서있게 진행 시켜 나갈수 있도록 특별한 지침을 마련해 주셨다 뿐만아니라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인구수를 적절히 균형있게 배치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해 지지 않도록 조치 하셨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많은 지파로 하여금 적은 지파의 약점을 보완 함으로서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질서있는 신앙생활과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원만하고 조화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 것이다.
목회자나 성도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하나님의 집의 질서를 위하여 직분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하나님의 교회의 여러 직임을 두신 것은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목사의 직임)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결론)이 뜻 깊은 주일에 드리는 회개와 소망의 기도의 제목입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듯이 우리들은 영적인 가나안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자
2.이스라엘이 성막중심으로 진을 쳤듯이 우리는 심령과 생활에서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성막은 예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중심의 삶이란 예수님이 나의 삶에 총 사령관이 되시는 것이요 내가 죽는 것입니다.
3. 교회생활에서 서로 시기하며 경쟁적인 삶을 사는가? 아니면 서로 돕고 상부상조하는 사역을 하는가?
4. 교회와 직장의 삶 가운데서 약한자를 돕고 짐을 서로 지는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12일
행 5:12-16 교회는 병원입니다
당신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믿음의 영웅이 됩시다 아멘...
지난주 말씀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범해서 징벌을 받아 그 생명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능력의 역사는 많이 나타나고 예루살렘 장안에 소문이 크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능력의 역사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에게 이 병고치는 능력을 주셨는데 심지어는 베드로가 지나갈때 그 그림자에 덮힘을 받아도 병이 낳는 줄로 믿어서 사람들이 병든자를 침대 위 또는 길거리 담요 위에 뉘여 놓고 베드로가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예루살렘과 그 주위에 있는 동네 사람들까지 병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못 고치는 병이 없이 다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부흥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모인 무리들에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모든 사람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교회가 불치의 질병을 고치고 괴로움을 받는 모든 사람을 치료하는 그런 병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종합병원입니다.  이병원에서 인생들은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구제 불능이었던 사람들도 교회에 나아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형편없던 사람들이 신사가 되고, 숙녀가 됩니다. 불행에 찌들리던 사람들이 행복해 집니다 .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주신 이 병원에서 모든 것을 고침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질병에 허덕이고 여러 가지 질병에 지쳐 있습니다. 아니 다른 질병이 아니더라도 인생들은 저마다 지쳐 있습니다 돈에 지치고, 사람에게 지치고, 자기 자신에게 지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는것에 지쳤고,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심지어 자식이나 배우자에게도 지쳤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지침으로 살 의욕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수고와 질병도 이 좋은 교회라는 병원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시골 여성도 자식 간증)
교회는 병원입니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육신적인 질병이든지, 정신질환이든지, 가난에 관한 질병이든지, 다 고침을 받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경제의 문제나 건강의 문제로 고통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은 고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병원인 이 교회는 여러분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교회라는 병원에서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본문 16절을 보면 다 나음을 입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침 받는 순서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고침을 받을 수 있느냐?
1. 첫 번째는 교회로 나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교회로 나아와야 고침을 받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이 가로막아도 나와야 고침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다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솔로몬 행각은 기둥이 162개나 되는 큰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거나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붙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도 나온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에게 나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모든 불행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할 것을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거북이도 먼저 목을 뽑아 내야 앞으로 갈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지만 먼저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기도로 모일 때 함께 모이십시오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함께 모이십시오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주저앉으면 바로 그 자리가 실패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 모이고, 더욱 힘써 성공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사이 다니엘 21일 기도회로 매일 저녁 모이는데 소위 직분 받았는다는분들 가운데 한번도 참여치 않으신 분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각성하셔야 됩니다 20일 부터는 새로 삽결줄 33 기도운동이 시작됩니다 많이 작정 하십시요
2. 병원에 와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의 처방을 따라야 합니다. 수술할 병이면 수술을 해야 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의사가 금식하라고 하면 배가 고파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의사가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하면 다리를 잘라야 합니다 그래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하십시오 설교를 통하여, 또는 구역회를 통하여 또는 성령의 감동으로 받은 모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설사 다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불행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썩은 다리를 아끼려다가 온 몸을 잃는 것보다 썩은 다리를 잃고 온 몸을 얻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큰 것을 잃게 됨이 너무나 많습니다. (소탐대실)
여러분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설교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것과, 성경공부 모임을 통하여 배운 것을 행하십시오 그것이 모든 질병을 물리치고 복되게 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처럼 해야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믿지 말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합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눅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령과 진리에 기초해서 전파하는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함이 곧 하나님을 경외함이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아 주일을 성수하고 전도생활에 힘쓰고 십일조를 드리고 봉사의 일에 참여하는것이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믿으므로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요 말라기서 4:2 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송아지 뛰는 것 보셨습니까? TV 한국 대관령 목장/ 교회사슴 온 대지가 자기 것처럼 누비며 뜁니다. 여러분 순종 하십시오 복종 하십시오 그것이 어려워도 복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늘 그렇게 살 뿐입니다. 늘 그 질병에 시달리거나 더욱 힘겨워질 뿐입니다. 그러나 복종하면 큰 기쁨으로 뛸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회복되는 시간이 아주 조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와서 처방을 받거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회복입니다. 조금 있으면 건강한 몸으로 일어설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병원 되는 교회에 나와서 그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였다면 우리는 잠시 후에 모든 것이 치유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여 행하였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 우리를 불행하게 하던 모든 것이 물러갈 것입니다.
가난이 불행이었다면 가난이 물러갈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불행이었다면 정신적인 것이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잘못된 습관이 불행이었다면 그 습관이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조금만 더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안되는것 같아도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 우리는 봉헌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성전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우리에게 있었습니까? 안되는것 같았지만 하나님이 행하셨잖습니까? 세틀먼트 날자도 세번씩이나 어겻고 , 융자는 더욱 힘들어 졌고, 더욱 마지막 세틀시에는 깨질 단계까지 갔지만 하나님이 결국 도와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병원인 교회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조금 그 축복이 늦는 것 같을 때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그곳에 좋은 곳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행복한 곳이 있습니다. 서둘러 주저앉아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였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순종하셨다면, 복종하셨다면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준비하신 치료의 광선이 비출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종하지 못하였다면 복종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지 복종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병원이 되는 교회에 날마다 다니면서도 늘 병든 인생으로 그렇게만 살 것입니다. 더욱 복종하고 순종하여 기적의 치유를 경험하는 모두가 되십시오 교회는 병원입니다 처방을 따라 순종하고 기다리면 누구든지 고침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성령의 감동과 설교 말씀에 순복하여 큰 축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 6일
행 5:1-11 하나님이 속으실까요?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로 크게 부흥의 불이 붙어 가자 밭과 집을 팔아 헌납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바나바가 자신의 밭을 팔아 바쳐서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되자 아나니아 부부도 부러운 생각이 들었든지 자신들의 땅을 팔아 바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잘못된 동기에서 헌금을 하다가 벌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무슨 수단으로 만인 위에 뛰어나는 명예를 얻을까 하는 것이 아나니아 부부의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인 사도를 속인 죄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의 책망을 받고 부부가 연속적으로 즉사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들이 더 많아졌고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음으로 교회는 더욱 크게 부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좋은 일이 아니라 불행한 일로 교회가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교회시험의 첫단계)
초대교회의 최초의 위기는 재정의 위기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단은 첫번째로 교회 재정의 문제를 가지고 교인들과 교회를 공격해 온다
1. 돈을 사랑하는 자의 결국을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축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바나바는 밭을 팔아 사도 앞에 드리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밭을 팔아 사도 앞에 드렸어도 영육이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헌신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헌신이 있고 죽도록 힘을써도 하나님이 안 받으시는 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인과 아벨처럼 말입니다.
잠22:4에 ""고 했습니다. 물질은 내것이면서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면 죄가 됩니다. 여리고성 정복 때 부정한 일을 행한 아간과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물질 문제로 죄를 짓게 되어 영육이 파멸되고 말았습니다.
1)그들은 돈을 사랑하므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손상시켰습니다.
이들이 진정한 제자들이었다 할지라도 돈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경건생활의 높은 경지까지 올라가는 것을 틀림없이 방해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돈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마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했습니다.
2)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오순절의 경이로운 사건들을 증거하였을 것이고 앉은뱅이가 치료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으며 제자들간의 친교를 누렸고 혹은 그들 자신이 회중의 기도를 인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자리 잡은 이 돈에 대한 열망은 그들을 하여금 더 이상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극악한 죄의 길로 빠져 버렸습니다. 즉 탐욕과 거짓, 위선, 허영, 속임으로 위장과 가식속에 빠짐으로 인하여 그 영혼 속에 악의 비참한 열매들을 추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딤전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하심과 같이 아나니아 부부는 이같은 지경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부부도 이 땅에 많이 있습니다.
뉴욕의 최현덕 집사 간증 수동기도원에서 강사님 안마해주는일 방문한 장로님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이민 결혼 / 뉴저지 병원 지압 치료사로 취직 6000불 소득/ 주일 못 지킴/교회 사찰로 들어감 월급여 2천불 얼마나 손해냐? 그런데 보세요 둘때 아이 임신때 임신중독으로 인하여 혈압이 고혈압 둘째 아들 장에 구멍 뚤림 /누구 하나 죽을 줄 모르는 상황 / 출산 600그램 마취가 깨지않아 인큐베이터 /하루 병원비 1만불 , 3개월 후 하루는 병원에서 오라고 해서 두 부부가 간절히 기도하고 감/ 인큐베이더 앞에서 아이에게 아빠왔다 아이가 깨어나는 기적 의사들이 놀람 오마이 갓 그런데 총 병원비 100만불 뉴욕주 유대인 병원 /1년에 무료 수술자 3 선정 /21살까지 병원 공짜 매월 200불씩 지원 돈보다도 하나님 편 선택 당시에는 손해 같아도 나중 이익 순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편을 산택하고 영적인 편을 선택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나중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2. 외식 된 자는 망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는 없는데 바나바 등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은 증표로 헌금을 하니 아나니아 부부도 은혜를 받은 것 같이 이를 모방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밭을 팔아서 헌금을 하며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자랑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1)주님은 외식을 제일 미워 하십니다
마23:13에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 가려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고 책망하셨고 (마23:23)에도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외식자의 기도까지 미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눅18:9-14 바리새인들은 기도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이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같이 외식된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미워하신 것입니다. 다만 주님은 진실을 원하고 계십니다.
2)성도는 물질 때문에 외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명예심이 합작할 때 흔히 인간들은 외식하며 교만해 집니다. 약1:15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했습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곧 그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3) 인간의 체면과 권위의식 때문에 흔히 외식합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물질을 바치지 않으면 체면과 교회안의 자기들 권위가 떨어질 것을 생각하여 거짓으로 외식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체면, 권위를 벗겨 주는 곳이며 어린이로 만드는 곳이지 사람을 외식으로 가장 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3. 사탄에게서 미혹을 받아서 성령을 속였습니다.
3절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아나니아는 사단에게 마음을 완전히 정복 당했습니다.  사탄은 속이는데 명수이며 속이면서도 믿음직하고 정직한 것같이 진실을 위장합니다 사탄의 공격에 녹아 떨어진 아나니아 부부는 완전히 사탄의 손에 붙들려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금요기도회때도 말씀 / 사단은 100% 거짓 사람들이 10%만 믿어주어도 성공이라 생각 탈렌트 최진실씨의 자살을 생각해 보라 거짓 소문을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인것은 아나니아는 은혜 받은자 중의 한 사람인데 사탄의 미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들 부부는 전 소유를 팔고 나니까 다 바치기에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다 내어 놓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살까하는 염려의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단이 그 틈 을 타서 그 마음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그 열매에만 호기심을 가져 신앙이 헤이해진 그 틈을 타고 마귀가 적극적으로 공격해 들어간 것입니다. 교단 수련회/화요일 오후 자유시간 /미국 목사님들 골프 /이요셉 목사와 함께 성극 관람 10분거리 천지창조 /하와/ 가인의 살인 /주변에 마귀들을 포진시켜 놓았더라 /주일학교 교육 / 차량필요
가룟유다가 공금을 취급하며 사용하다가 사탄이 그 마음속에 들어간 것처럼 아나니아 에게도 허영심과 불신앙심의 틈을 열어 놓았을때 사탄이 들어가 그의 불행을 가져 오게 한 것입니다.
4. 아나니아의 위선적 죄는 결국 성령님을 속인 죄가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의 잘못은 밭을 판 돈 중 얼마를 감추어 두고 다 바친 것처럼 위장한 것입니다. 더욱 과관 인 것은 그 재산 일부를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안 바친 돈을 찾으려고 그 집을 수색하지도 아니할텐데 그 모두를 하나도 남김없이 바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땅에 묻어둔 것입니다. 이 같은 일로 사람들을 속을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까지 속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이란 사람을 의식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코람데오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것이나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개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붙는 듯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중생의 은혜를 받고 새로운 영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세계를 향하여 가려고 하는 의욕을 소멸하고 세속적인 것을 취하는 것도,...... 성령을 조소하는 것도 죄악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탄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알고 광신적인 태도로 나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또한 여기에 미혹하는 자도 많으니 이것도 또한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잘 구별하여 성령의 역사는 취하고 사탄의 역사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발람은 천군 천사가 저의 길을 막기까지 했는데도 이를 거역하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아나니아 부부가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고서 멸망함을 당했습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요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사랑의 대상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또 신앙생활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사람 의식하려다가 외식의 죄를 범하고 더 나아가 성령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우리 교회에는 한분도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9월28일
행3:1-10 성공하는 신앙인이 되려면
오늘 야외예배를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자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예배하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날마다 사람들이 메고 와서 성전 문앞에 두었는데 이 사람은 성전을 출입 하는 자들을 향해 구걸하여 하루하루 생활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면서 앉은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배안에서 장애자가 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기술로나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임을 말해 줍니다.
하지만 이 불쌍한 생명을 불쌍히 여겨 동정심으로 이 앉은뱅이를 날마다 메어다가 성전문 밖에 놓아 주는 사랑의 실천자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병든 영혼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지옥으로 가는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약한자 불구자 불행을 당한 생명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 예수의 이름이 머무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 거지를 바라보는 베드로는 그 마음에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근본 문제 해결은 예수의 이름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물론 자신들에게 은과 금도 없지만 만일 은과 금이 있어서 그것을 앉은뱅이에게 준다고 해도 그 물질적 도움이란 임시적으로 그 육체의 굶주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고 앉은뱅이는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 이름을 준다는 것은 그 인격과 그 능력을 아울러 주는 것이 됩니다. 사람의 이름에는 언제나 그 인격 전체가 포함됩니다. 그 이름이 욕을 먹으면 그 인격이 욕을 먹게 되며 그 이름이 영광 받으면 그 인격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다는 것은 예수의 인격과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때 "예수 믿으십시요"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주는 행위로 전도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과 아울러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는 곳에 사탄이 두려워 쫓겨 갑니다 육의 병든 부분이 고침을 받고 마음이 상한자가 평안을 얻습니다 낙심된 자가 소망을, 슬픔을 당한 자가 위로를 얻으며 천한 자가 귀해지고, 악한 자가 선해지고, 어둠이 변해 광명이요 영원히 죽을 자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나의 시선을 주님께 맞추라는 교훈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지나가는 사람을 자세히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손만 내밀고 한 푼만 도와 달라고 구걸했지 누가 주고 가는가를 자세히 쳐다보지도 아니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하고 쳐다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의 눈과 성령받은 베드로와 요한의 눈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은혜의 초점이 마주친 것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렌즈의 초점이 잘 맞아야 사진이 선명하게 잘 나오는 것이지 초점이 잘 맞지 않으면 사진이 흐릿하게 나옵니다.
그와 같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려면 우 리의 마음과 주님의 마음이 똑바로 맞아야 합니다. 시선이 흐트러진 자세는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입니다. 심령이 흐트러지면 눈이 맑지 못합니다. 눈이 목표 없는 흐트러진 자세 광적인 태도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처럼 정신이 주님을 향해 집중 될 때 주님과의 올바른 만남으로 은혜와 축복과 갖가지의 기적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도는 성전에서 항상 기도해야 불신자들에게 영향력을 줄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들은 제9시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의 거룩한 풍습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의 일정한 시간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단6:10)그들은 때를 정하여 놓고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힘으로 한날 한날을 걸어가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주일 낮뿐 아니라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매일 새벽에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막1:35).
정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 유지하게 하는데 큰 유익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에 올라간 것은 합심하여 기도하기 위함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합심하여 여럿이 기도하는 것은 더욱 뜻이 큰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 같은 목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요사이 다니엘 21 기도회 중인데 반드시 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응답이 벌써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부탁까지 하셨으니 우리도 성전에 나와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 21일 기도회 강조
다니엘 기도가 끈나면 계속해서 33기도운동을 하고자 합니다 전4;12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사람이 세명의 기도동지를 모아 9시에 33분 합심기도하자
4. 이 병자를 통해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실제적 신앙생활의 교훈은
1)성전 밖의 인간을 성전안의 신자로 변화케 하시려는 주님의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계3:20)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은혜밖에 생활에서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8절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이 거지는 물질 이상의 장소로 그는 자리를 옮기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위치 이상의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옮기게 되어 하나님의 집안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2)인본 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변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1)인본주의 /사람을 쳐다보는 생활 신본주의/하나님의 영광을 쳐다보는 사람.
일부러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고자 하던 생활에서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며 슬픈 소리 애걸하던 목소리가 견딜 수 없는 기쁨이 넘치는 찬송하는 소리로 바뀌었으며 사람들의 비난과 간섭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동조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2)인본주의 /사람들에게 구걸 신본주의/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그의 상태는 하루 종일 인간의 노래를 하는 사람이였으나(그의 노래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왔네) 이제는 자나 깨나 오직 하나님만을 찬송하는 사람이 된것입니다(어둡던 내눈 밝히사).
물질을 초월한 신령한 생활이 그의 일과가 되었으며 하루 종일 앉아 있어
슬픈 노래를 부르던 것이 이제는 하루 종일 뛰면서 주를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인본주의 사람에게 구걸하지만 신본주의는 하나님께 구합니다 LA 산타모니카 정현숙 권사 간증 목사님이 신학교 졸업후 개척위해 기도원 40일 금식기도 20일째 되는 날 정권사가 목사님께 질문 왜 금식하느냐? 돈 없고 사람 없고 하나님밖에 없으니 기도한다 40일 기도 마치는 날 정권사가 100만원 (30년전당시 큰 돈) 가지고 와서 전도사님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척자금으로 쓰라 그런데 그 100만원은 당시 정권사 가정 청계천에서 스덴그릇 장사하다가 사업이 부도나서 망한상태 빛 잔치하고 남은 모든 부동산 팔아 가져왔다 목사님의 간절한 축복기도 일평생 하나님앞에 물질어려움 없게 해달라 남편은 인도네시아로 도망 우연히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 아들과 친분을 갖음 마침 한국건설경기 대우 현대 모든 공사계약은 남사장을 통해서 하라 공사 수주하면서 일약 거부/(사람들에게 구걸 말고 하나님께 구하라
살다보면 선택의 순간이 온다 하나님편이냐 사람편이냐 영적이냐 육적이냐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잘될 때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 누군들 못하랴 어렵고 힘들 때 더욱 주 의지하라
3)의타주의에서 자립주의로 변화케 하시는 교훈입니다.
거지의 전의 생활은 순전히 의타주의였습니다 성전에 나오는 일도 남의 도움을 얻어 메어다 주어야 겨우 올 수가 있었고 와서 하는 일도 사람만 바라 보는 일이었습니다. 몇푼의 돈을 벌어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도 역시 그는 남의 충분한 도움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어 자립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걸어 다니게 되었고 이제 성전 안으로 돌아다니며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게 됨으로 사람을 기대하거나 사람에게 도움 받던 생활은 이제 완전히 청산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 밖의 신자가 성전 안의 신자로 변하고 인본주의 신앙이 신본주의 로 바뀌며 의타주의에서 자립주의를 바뀌기를 오늘도 주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8절에 "하나님을 찬미하고"했습니다. 하루하루 구걸로 겨우 연명해 가면서 영적인 문제보다 우선 눈에 보이는 일 육신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을 그에게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라는 이름이 지닌 권세를 체험했으며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예수를 만났으므로 영혼이 살수 있었고 일어나 걸을수 있는 생명력 있는 영혼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십시오 살아납니다.
오늘 우리를 성공적 신앙인으로 이끌 실제적 교훈
1. 남의 불행을 제거해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앉은뱅이의 평생의 은인이었던 베드로 요한같이 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기억에 남을 일을 하며 삽시다.
2. 인간들의 참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해결해준 사도들 같이 우리가 은과 금으로는 주지 못하지만 예수의 이름은 줄 수 있으니 이같은 일에 인색하지 맙시다.
3.사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서 충만한 사람이니 오늘 우리 마음속에는 무엇이 충만한가 자신을 조명해 보고 이제부터 사도들과 같이 예수만 충만한 자가 되기 위해 힘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9월21일
행1:4-11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그동안 우리는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생존 당시의 기적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었는데 오늘 부터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되어 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중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 하시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승천하신 분이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신 에녹이요(창5:24). 또 한분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가 있습니다 (왕하2:11). 그러나 그들이 죽지 않고 그대로 변화하여 승천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속죄의 공로가 없고 개인의 영광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 값을 십자가의 피로 지불하고 속죄의 공을 세우고 다시 사셔서 승천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도 죽지 않고 승천하셨다면 속죄의 공을 세우지 못했고 구원의 역사도 완성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번 죽어 속죄 제물과 화목제물의 사명을 완수하고 부활하여 승천했기 때문에 그것은 인류를 위한 영광의 승천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리스도의 신분에 관한 교리 곧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의 몸에서의 탄생, 십자가의 죽음 후 삼일만의 부활, 사십일만의 승천, 마지막 날의 재림 이 모든 교리가 다 중요한 것이지만 그 중에도 현재 우리에게 직접 관계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한 교리인 것입니다.
1. 그러면 첫째로 ,.. 예수 승천의 광경과 의의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보는데서 영광중에 구름타시고 흰 옷 입은 두 천사의 호위 속에 승천하시며 두 천사가 주님 이 다시 오실 것을 예언하면서 승천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교주 석가모니가 승천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가 숲속에 들어가 머리는 북으로 발은 남으로 두고 죽을 때에 승려들이 입관하여 그 관을 옮겨 가려고 했지만 들리지 않았는데 그 관이 허공에 올라 그 도시의 공중에 머물다가 7일만에 성중에 내려왔고 화장하려고 했으나 불이 관에 붙지 않았고 그후에 관이 다시 허공으로 올라가며 불이 스스로 나서 타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승천치고는 묘한 승천 이야기입니다. 거짓/ 1988년 5월 초파일을 맞은 당시 조계종 종정스님이신 성철스님의 법어 / 중생위해 부처는 지옥에 계신다. 지옥은 말하였지만 찬국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모마리아가 승천했다고 주장하며 1950년 11월1일 전 교황 비오 12세가 그 승천을 공포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마리아가 승천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 승천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 승천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1) 예수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귀향을 의미합니다.
그가 하늘로 부터 오셨으니 하늘로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하늘은 예수님의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요14:4에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바로 그길은 승천하시는 주님의 향방을 뜻합니다 이는 주님이 가신 천국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 장막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때 누구든지 이 영광의 본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는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는 사실앞에 절망하지 말것입니다. 요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요8:23에 예수님은 "나는 이 세상에 속허지 아니했다"라고"하셨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세상의 생활은 머리 둘 곳 집 한 채 마련하시지 않으셨고 그런 그의 삶은 자기의 본향이 천국이라고 생각할 때에 그의 귀향은 지당한 것입니다.
2)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영원한 거처를 준비키 위한 승천입니다.
요14:1-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곳에 너희도 항상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목적중 하나가 신자들의 영원히 살 수 있는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래 천국의 개척자요 선구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거처할 곳이 다 준비가 되면 각자에게 주시고자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가시기도 하시고 또한 어떤 자들은 재림시에 데리고 가시어 주시기도 합니다. 불교는 이 거처할 집을 마련할 신이 없어서 그들의 영혼이 이곳저곳 유리 하다가 여러가지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 어떤자는 동물로 어떤자는 미물로 어떤자는 사람으로 태어 난다고서 살상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런 유리하는 영이 되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집을 주님이 준비하시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3)예수의 승천은 천국의 실재성을 확인하신 기사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영체의 몸이 되었지만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인간과 다른것 없이 똑같이 생활을 하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시고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몸이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 가실 곳이 있고, 거처할 곳이 있어서 그곳에 계시고 이 땅에 아직 내려오시지 않고 있으니 이는 분명코 그가 말씀하신 대로 천국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천국에 대해서 눅23:43에 한편 강도가 당신에 나라에 이를 때에 나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할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심을 보아도 천국이 있음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고후5:1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육신) 무너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을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하게 될 때에 행7:56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것을 보노라"고 외쳤으며 고후12:2에 사도바울은 "세째 하늘 즉 천국에 가 보았노라"고 했고 사도요한은 계21-22장에서 천국이 있음을 소상히 전해 주고 있습니다.
4) 예수의 승천은 승리를 보여준 증거입니다.
사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영적 생활에 있어서 승리자 보다는 패배자가 더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진 자 가 적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그 길을 어김없이 생활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승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는 문제로 인해 아버지께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시고 그 길을 피하시지 아니하시고 고초를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들처럼 교훈이나 하시고 십자가를 안지셨더라면 한 위인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 승천하시는 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로마의 정부가 그를 죽이면 예수는 완전 멸망하고 그의 자취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권세자들이 본 빈 무덤만 남기고 승천하셨으니 박해자와 죽음에서 완전 승리를 하신 것입니다.
5)승천은 주님의 통치가 시작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호흡이 끊어지고 심장의 고동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때 인간의 생명이 완전히 끝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더 높고 더 좋은 영생이 시작됨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승천은 주님을 섬기는 사역의 입장에서 볼 때 더욱 성스럽고 영광된 사업입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을 뒤덮은 구름을 타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 육신 생애의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갈 길을 갔다고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실 그의 통치는 이제 부터인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들을 불러 구원시키려 하심이지 세상의 권세나 명예를 위해 오신것이아니기 때문에 그의 능력이나 통치력을 나타내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승천하시고 가신 그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그의 능력과 권력이 회복되고 그가 주관 하시는 대로 되어지는 영원한 나라이므로 그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의 세력이 없어서 다시 그의 선한 성품을 꺽어 버리려고 하는 자는 없고 평화로운 세계의 주인공인 주님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찬양/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 받으소서, 받으소서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6)예수의 승천은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시려 의미입니다.
(요16: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했습니다.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 옆에서 돕는분 위로자 보호자 변호자 성령충만을 사모하자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으로 당시의 사명을 마치고 남은 뒷 사업은 성령께 일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 하신것을 기다리라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백이십 명의 성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은 지금부터 예수 오시는 날까지 성도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우리를 신부로 단장시켜서 주 예수께 신부로서 드림으로써 그 임무를 마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7) 마직막으로 예수의 승천은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일어나셨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승천하셨다는 소식이 조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 초기에 니고메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20:17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하시며 이 사실을 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의 권위는 그의 말씀이 너무나 정확히 이루어짐으로써 증명되었습니다. 승천은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심과 강림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응답과 사명 완수만 남았습니다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이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내가 살아있고 우리교회가 존재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고로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영광 중 기쁨으로 맞기위해 믿음으로 살고 선한 일을 하며 살고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9월14일
요 21:1-13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오늘은 파란 만장한 생애를 걸어온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삶에 주께서 기적을 행하신 사건을 통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주님의 부름을 받아 제자로서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지만 최후 십자가의 길에서 비참한 생각이 들어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면서 사랑하고 존경하던 주님을 버렸습니다. 이로써 베드로는 인생길에서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실의와 허무 속에서 예수의 제자 이전 생활이었던 옛 어부 생활로 돌아가 갈릴리바다에서 육적 인생을 이어가기 위해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얻지 못하고 애쓰던 어두운 밤이 지나 동쪽에 환하게 날이 밝아 올 무렵 뜻하지 않던 어떤 분이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지시했습니다. 기진맥진한 베드로는 어떻게 하든지 고기를 잡아야했으므로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갈망하던 나머지 피동적으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게되었습니다.
어부로써 최선을 다한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지 못했는데 어떤 분이 명한대로 그물을 던진 것이 적중하여 153마리를 잡고 보니 그의 믿음의 눈이 떠지고 그제야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같이 생각해 보면서 오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이 기적은 사업에 실패한 자를 찾아 도와 주신 사건입니다.
3년간 부름 받은 자로서의 교육 받은 것을 포기하고 어부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책망대신 자비와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협력하시며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의 한량없으신 사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제자들은 배신자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주님은 그들을 찾아가 사업을 성공케 하시고 위로 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같은 사랑을 주시고 한 영혼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시며 진노를 참으시고 사랑을 베풀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느끼고 받을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내가 대신 일하리라
2. 이러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 없이 순종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지 아니했더라면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상태로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므로 많은 고기를 잡고 또한 예수의 능력도 알게 되고 그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순종이 필요하겟습니까요 1)내 생각과 의견이 틀려도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밤새도록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았으니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같은 생각을 버리고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일도 주님의 명령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의 의미 (1)기록된 말씀 (성경) (2)나타난 말씀(예수)(3)희생되어진 말씀(성례전)(4)선포되는 말씀 (설교)
2)하기 싫어도 순종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그물을 씻고 짐을 챙기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물을 다시 던졌습니다.  사실 그물을 다시 던지면 고기를 잡든지 못 잡든지 간에 또다시 그물을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많이나 잡히면 그것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날 밤의 경험을 보면 실망 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3)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이 안 믿어져도 순종했습니다.
사실적 정황에 따르면 고기가 안 잡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순종했습니다.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3. 세 번째 교훈입니다 / .. 예수님이 함께 하시어야 사업이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내니 저는 옛 직업을 찾아 고기를 잡으려 바닷가에 가서 고기를 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옛날처럼 자기 생각대로 사업이 잘 안되었습니다. 이는 주님을 떠나서 저 나름대로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와 헛 노력만 했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성도가 예수를 떠나서 인간의 방법대로 사업을 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헛수고 뿐이라는 것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부모를 떠난 탕자와 같은 생활이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네가 내안에 내가 네 안에 있어야" 절로 과실을 맺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시라도 주님을 떠나있는 생활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예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신 주님의 음성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이 질문은 오늘 아침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방대한 성경 66권 1189장 가운데 유독 본문에서만 유일하게 한 번씩만 사용된 두 단어에 유의해야만 합니다.
첫째, 5절에 나오는 `고기'란 단어입니다.
물고기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는 익투스 ikthus로써 신약 성경에 나타난 물고기는 원문에 모두 이 단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딱 한군데 예외가 있으니, 바로 본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실 때 익투스 ikthus가 아니라 “프로스파기온 prosphagion이란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성경 중 본문에서 주님에 의해 단 한 번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원래 물고기란 의미가 아니라 식탁 위에 올려지는 진미, 즉 진귀한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KJV Meat 따라서 이 단어의 참뜻을 살리면 주님의 질문은 이런 의미가 됩니다. `얘들아! 너희가 정말 귀한 것을 얻었느냐? 주석을 가하면 더 깊은 의미를 포착하게 됩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진리인 나를 등져서는 아무리 수고하여도 결코 귀한 것을 얻을 수 없단다”
두번째로 유의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사용하신 `얘들아'란 단어 paidion입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어린아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이미 성인이 된 제자들을 부르는데 사용되기에는 전혀 적합치 않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본문 이외에 이 단어가 성인에게 부르는 명칭인 호격으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주님 역시 이제껏 제자들을 이런 식으로 부르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갈릴리 바다에서만은 제자들을 딱한 번 `어린아이들아!'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 채 단지 허망한 바다를 향해 헛수고만을, 그것도 밤을 새워 가며 열심으로 헛수고하는 제자들이 주님 눈에는 어린아이―철없는 아이와 같이 비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이 철부지들아! 그처럼 철없이 살아서는 귀한 것을 절대로 얻을 수 없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철부지 아이들입니까? ... 아니면 분별력을 지닌 성인들입니까? 무엇인가 잡으려고 그처럼 기를 쓰고 있는 우리 손안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귀한 것들입니까? 아니면 허망한 공허함입니까?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5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헛수고를 헛수고 인줄 알지 못한 채 헛되이 반복하는 철부지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4절에 보면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 지라"말씀 했습니다. 다시 갈릴리 호수의 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간 제자들은 열심히 그물을 칩니다. 그리고 분주히 생활에 매달립니다 그들의 머리속엔 예수님의 말씀은 물론 이젠 예수님의 형상까지 사라졌습니다. 바쁜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들에게 예수님을 기억에서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 앞에 오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마치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처럼 바로 곁에 예수님이 계시는데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3년 동안 함께 생활한 예수님을 그들은 자신들의 세속적 관심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예수와 함께 있음을 통하여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들이 3년 동안 공들였던 신앙의 수고가 세상 관심 때문에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세상에 빠지면 이들같이 예수를 모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과거나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고 당장 내일부터 우 리는 세상으로 나갑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하는 사업, 직장, 있는 곳에서 우리들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도와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삶의 그 현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의견이 틀려도 예수님께 순종하고 하기 싫어도 순종하고 믿어지지 아니해도 순종합시다.
또한 나 혼자서 사업을 하려다가 실패와 낭패를 당하기보다 사전에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면 하는 사업은 빨리 성공할 것이며 또한 주님은 함께하셔서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철없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시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사명에 충실한 믿음으로 한주간도 승리하는 삶을 사실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9월 7일
사 56:7 나의 사명
금주 말씀은 선교사님께서 해주신 관계로 내용은 없습니다.
이번 주 은혜의 말씀을 선포해 주신 필리핀선교사 황필환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 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8월31일
마21:18-22 삶의 변화를 이루는 기적
하루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면서 시장하시었던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열매를 얻기 원했지만 열매가 없으므로 그 나무를 저주하시니 그 나무가 시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여러분 모두 무화과의 열매를 먹어본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참 맛있지요 목사님께 맛없는 것이 뭐있습니까 하실분이 계실지 몰라도 여하튼 맛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먹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보통 5m 정도 높이로 자라는데 때로는 8m까지 다다르며 잎이 무성하여 태양 빛이 강한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열매뿐 아니라 그늘을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보통 4월의 무화과는 열매부터 열리고 잎이 무성해 지는 것인데 이 나무는 비정상이었습니다.
차라리 잎이 피지 말거나 아니면 열매를 맺어야 했는데 잎만 무성하게 피고 열매는 없었기에 나무 구실을 못한 고로 주님께서 저주하신 것 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거의 살리는 생명의 기사였으나 이번 기적은 심판을 예고하시는 냉엄한 기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이 기적은 이스라엘 민족의 심판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나라 국화입니다 예로부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왕상4:25에 보면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 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안연히 살았다고 했습니다. 스가랴 3:10절에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는데 서로 초대할때는 열매가 풍성하기 때문이요 이는 곧 영적으로 큰 은혜받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화과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유대민족의 심판을 예고해 주시는 교훈인 것입니다.
렘8: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심판의 경고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2.예수님은 열매를 요구하시는 분이시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에 열매가 없으니 존재의 의미가 없는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눅13:6-9에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 중에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3년간이나 그 나무에 열매를 구했으나 얻지 못하므로 찍어 버리겠다고 경고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3:10에는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 버리겠다고 하심은 존재 가치가 없는 무용지물은 그냥 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셨건만 저들은 영접하지도 않았고 천국의 진리를 전해 주었건만 듣지 않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외쳤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멸망 될 것을 경고한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열매 없는 인간,. 무용지물의 인간이 되면 언젠가는 주님께 찍히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요?
시쳇말로 친구들에게 찍히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찍히면 어떻게 됩니까? 살아남을수 있겠습니까? 앞길이 막힙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면에서, 열매가 없는 인간의 유형은? ...
(1)책임성이 없는 인간입니다 (2)회개가 없는 인간입니다 (3) 개선의 변화가 없는 인간
(4)매를 맞아도 알지 못하는 사람 끊임없이 하나님의 채찍을 맞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해요
(5)의무를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무에 무관심한 사람
(6)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 믿음의 성장도 변화도 열매도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의 준엄한 책망을 면치못할 것입니다 심판의 경고장을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리에 내가 아직 머물러 있다면 회개하고 존재가치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3. 조물주의 기대에 맞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주님이 길가에 있는 나무를 찾아가 기대하고 요구하셨던 것은 잎사귀가 아니라 열매였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주님의 기대와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어긋났기 때문에 말라 죽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기대가 있고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기대를 걸고 교육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과실을 많이 맺게 하려고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농부가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은 뜻은 열매를 기대하고 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열매 하나와 비교가 아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과 인생들에게 요구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은 열매인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또한 직분이 높다고 해도 하나님의 요구에 맞도록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잎사귀뿐이고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진정 생존의 가치는 오직 하나님의 요구에 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시간 우리 모두 자신을 성찰해 봅시다 나는 잎사귀만 무상한 신자인가? 열매가 있는 신자인가? 주의 일을 해도 소리만 요란하고 그 수고한 만큼의 결과가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작은 수고에도 아름답고 오묘한 열매가 맺히는 성도가 있습니다.  어떤일을 맡겨보면 큰수고 하고도 효과가 별로 없는 경우 종종 봄 (기도뒷바침.신앙인격)
오늘 본문의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는 그의 본분인 열매를 맺지 못하여 말라 죽었습니다. 나무의 본분은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여기 본분이라는 말은
*자기 구실을 다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책임을 수행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의무를 바로 감당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 구실을 해야 참 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기독신자면 다 신자가 아니라 신자 구실을 바로해야 참 신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전12:13-14)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본분,.. 신자의 본분과 의무를 바로 이행 감당하는데 참 삶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열매는 나무의 본질이요 실속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사람이란 유명무실하게 살지 말고 무명유실하게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무엇이나 내용이 없으면 외식이나 위선자가 되고 방해물이 되고 사회의 독버섯이 되기 쉽습니다.
*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유명무실 *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유명무실
* 되지도 못하고 된 척하는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성도로서의 갖추어야 할 신앙의 알맹이를 갖추고 살아야 할 것 입니다.
4. 열매가 없는 인간은 심판 하신다는 종말의 교훈입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치는 꽃이 아름답거나 목재가 좋은데 있는것이 아니고 열매 맺는데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가치도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는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가 아무도 안보는 산중에 있는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길가에 있었습니다.
즉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인간은 누구나 다 열매를 맺어야 하되 특별히 은혜를 많이 받고 중요한 위치에 세움 받은 사람에게는 책임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받은자는 두 달란트를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나무 하나라도 자기역할을 못할 때 저주하셨는데 인간이 열매 없을때 어찌 그대로 둘수 있습니까? 시간과 정력을 소비할 뿐입니다. 요15:2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소비와 생산의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많은 희생을 하셨습니다. 이 희생의 보답을 우리는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니 또한 열매가 없을시는 심판이 있기 때문에 더욱 열매 맺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기대에 어긋난 생활을 회개하고 주님의 요구에 맞도록 살아가며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생활을 청산하고 본분을 다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나의 본분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삶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5.무화과 비유는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열매를 요구하시는 종말의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를지라도 이 세상의 종말의 확실성과 분명성을 인식하며 우리의 삶의 자세를 점검하며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롬13:11∼12의 말씀은 우리 모두를 향한 권고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며 남은 생을 살아갑시다 종말의 확실성이 오늘 하루 나에게 어떠한 도전과 변화로 인도하고 있는가? .. 아무쪼록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맡은바 본분을 다하며 좋은 열매 복된 열매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 8월24일
마20:29-34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신 믿음
오늘 본문은 여리고 성에서 예수님이 나오실 때 두 사람의 소경이 예수님을 향해 고쳐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안수하고 고쳐주신 놀라운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천 년 전 여리고 도성의 두 소경의 체험은 확실한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이 기적인 이유는 현대과학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소경의 병을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소경의 눈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러자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은 두 소경이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주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몇 시간을 따라오는 것을 보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민망히 여겼다"는 말은 Jesus had compassion "간절히 열망했다" "긍휼히 여기며 동정심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두 소경의 믿음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만 움직일 수 있으면 내 모든 문제는 그대로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 34절을 보면 "저희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만진다는 말의 원어함토는 는 "불을 피운다"는 의미입니다. 눅8:33 즉 예수님의 손으로 만졌을때, 불이 피어나듯이 뜨거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소경들의 눈에 손을 대자마자 단번에 신적인 능력이 ,.. 치료의 불길이 역사하여 그들의 눈이 떠졌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보통 성도들은 "뜨겁다"는 말을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즌ㄴ 말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고 은사를 체험하게 되면 육신적으로도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수하면 병도 낫습니다. 안수하면 불도 받고 안수하면 방언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암울한 현실 때문에 절망하지 마시고 육신적인 질병과 현실적인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만 소유하시면 그 문제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해결해 주십니다.
믿음이 진정으로 내 마음속에 있고, 그 믿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역사가 일어나기만 하면 기적은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게 되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두 소경에 눈에 손을 얹어 안수했을 때 곧 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수 후 일주일이 지나자 눈에서 딱지가 떨어지면서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안수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치유의 체험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병마를 물리치는 능력을 가지신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말씀을 듣다가 감동을 받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예수님의 마음에 충격을 주기만 하면 소경이 눈을뜨게 된것처럼 기적을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이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안고 있는 인생의 문제는 모두 나의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문제가 될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두 소경이 가지고 있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민망히 여기실 정도로 충격을 주었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1.열정적인 믿음입니다.
두 소경의 믿음에는 열정이 들어있었습니다. 30절에 "소리질러 가로되"라고 했고 31절을 보면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소리 지르다"는 말 크라죠는 원래 격정적으로 소리를 지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소경의 고백은 격정에 넘쳐 울부짖는 뜨거운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었고 말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르짖은 것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열정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열정을 가지고 부르짖고 아우성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르짖는 열정, 신앙의 불, 신앙의 열정, 신앙의 뜨거움을 맛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처럼/.....올림픽수영 8관왕 마이클펠프스의 포효)
오늘 신앙의 문제점은 신앙은 있으나 열정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현대 교인들은 부르짖지 않습니다. 외치지 않습니다. 생명있는 신앙은 박해 속에서 더욱 운동력을 나타내듯이 신앙은 운동력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믿음속에는 불이 있어서 열정이 움직여야 합니다 열정이 식은 신앙은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뜨거워야 합니다 기도도 . 봉사도 뜨거워야 합니다. 헌신도 뜨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정없는 신자들에게 라오디게아 교회를 비유하면서 뜨뜻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차지도 않은 자는 토하여 내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열정적인 신자를 좋아하십니다. 왕하19:31절에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구원, 여러분의 축복, 여러분의 앞날의 모든일을 이루려는 열심을 가지고 지금도 움직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59:17에 "하나님은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엘리야를 선지자로 택하시고, 왜 바울을 사도로 택하셨습니까? 빌 3:6절이하를 보면 바울은 과거의 자신을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왕상 19:10절과 14절에서 엘리야는 열심히 특심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할 특, 매우 심 / 매우 열중함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니까 모두 미적지근한데 사울이라는 청년이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를 핍박하는일에 보통 열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니까 "저 사람 바꾸어 놓기만 하면 그 열심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그 열심가지고 성경을 읽고 그 열심 가지고 구원하고 대단한 주의 일을 할 것 같다" 싶으셔서 다메섹 도상에서 뒤집어 놓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화/ 하나님은 왜 깡패출신 부흥사들을 사용하셔서 한국 교회 부흥을 이루었을까
김익두 이천석 이태희
벧전 3:13절을 보면 "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열심히 세상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열심히 살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열심히 돈을 버십시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열심히 예수 믿으십시오. 열심히 뛰십시오. 우리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아서 움직이면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으시려면 열정적으로 믿으십시오. 열정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듣는다는것은 말씀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불입니다. 그래서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하시면서 말씀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불입니다. 불 옆에 가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피부가 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같은 말씀을 듣고도 감동이 전혀 없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실 정도로 충격을 주었던 믿음은 참된 영적인 지식이 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에 덕/덕에 지식 /영적지식 영적인 지식이 믿음 안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두 소경은 주님을 향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구주로 알았습니다. 또한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당신은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독립운동가나 혁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소경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실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기에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알고 나를 아는 것, 이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알수 있습니다 요일2:20"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것을 아느니라 거룩하신 예수님께 성령의 기름을 부음받고 나면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학교를 못다닌 사람들도 예수 믿고 은혜받아 믿음이 생기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하늘나라를 알게 되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성령 충만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믿음을 주시고 믿음이 생기면 믿음 속에 있는 수직적인 지식, 하나님이 주신 지식, 신령한 지혜를 통하여 예수가 구주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구원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천국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지식이 마음속에 생기면 그 지식을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되고 사망과 생명을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세계를 분별하여 하나님 편에만 서게 됩니다. 만약 여리고 도성의 두 소경이 예수가 구주임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들은 예수를 찾아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실 정도로 충격을 주었던 믿음은 분명한 소원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소경들을 향하여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분명히 대답 했습니다.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장사가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승진하기 원하십니까? 병고치기를 원하십니까? 소원이 분명하면 응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두 소경에게 눈뜨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그 소원을 들어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민망히 여기셔서 직접 창조적인 손을 얹어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안에서 소원이 있는 곳에는 응답이 있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트레이드 밀/ 30분을 채우면 문제 해결/ 참게 되더라
제일 위태로운 신자는 세상말로 팔자가 편해서 별로 구할 것도 없고 집에 돈도 적당히 있고 좋은 차도 타고 남편도 잘 만나고 아이들도 쑥쑥커가고 편안하고 한가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환경이 좋아서 원하는 것이 다 있으니까 구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할 것이 많은 사람들은 이것 저것을 구하다 보면 믿음이 독수리 날개 치는 것처럼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삶을 꾸려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고 자기 삶을 새롭게 하고 더 확장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천식에 걸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는 호흡이 곤란해서 온 세상이 움츠러 들어 보입니다. 그는 숨쉴 공기를 찾아 구석으로 기어가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시 자유롭게 숨을 쉴수 있습니다. 그는 일어서서 손을 뻗어 구석에서 빠져나와 이 세상을 자류롭고 담대하게 활보합니다 이제 두려워하지않고 움직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시한번 자유롭게 숨쉴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수 있는 자유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소원을 세상 사람은 외면해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원이 크고 작은 것은 믿음의 분량입니다. 큰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기도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우리의 기도들이 모두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32절을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머물러 서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신 분임을 표현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시간에도 머물러 서서라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고야 지나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1)신앙의 열정을 가지십시오
2)영적인 지식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소원을 가지십시오. 이 세가지로 뭉쳐진 온전한 믿음으로 응답받고 예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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