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2월08일
충성된 일꾼
이 번주 주일 설교는 신년 축복성회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은혜의 말씀을 선포해주신 노희석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감리교회 신년축복성회
노희석 목사, 하늘의 능력을 사모하자 [2009-02-08 19:45]
 
▲강사 노희석 목사
▲노희석 목사(왼쪽)와 안계수 목사(오른쪽)
▲찬양을 인도하고 있는 아름찬양팀
▲축도 한성호 목사(가운데)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 있는 아름다운감리교회(담임 안계수 목사)가 지난 2월6일(금) 저녁부터 8일(주일) 오후까지 한국 명일성결교회의 담임 목사이며 한국 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 대표회장, 세계 한민족복음화협의회 대표회장, 2010천만인성령화대회 대표 강사단장을 맡고 있는 노희석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신년축복성회를 열었다.
노희석 목사는 성회 첫째날 요한복음 2장 1-11절을 본문으로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노 목사는 은혜는 사모하는 자가 받는 것이니 사모하는 믿음을 갖기를 권면하면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야 할 것이며 이런 변화를 이루기 위해 생활 속에서 항상 예수님을 모시고 살며 삶의 문제가 발생 했을 때도 주님께 간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생활을 하여야 함”을 강조했다.
둘째날 저녁에는 열왕기상 19장 30-40절을 본문으로 "불로 응답을 받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갈멜산 제단에 불이 임함은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심이요 성령의 충만함을 의미함이니 오늘의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 무너진 예배 중심의 삶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할 때 능력이 임하며 이로 인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케 될 것이니 하늘의 능력을 사모하자.”고 말했다.
아름다운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안계수 목사는 “말씀중심, 예배 중심, 교회중심의 철저한 복음주의에 근거한 성령 충만한 노 목사님의 집회 인도를 통해 모든 교우들이 큰 은혜를 받았으며 주신 은혜를 간직하며 앞으로 지역 복음화와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며 힘써 매진 할 것을 결단 하게 된 축복된 성회였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전했다.
주소 : 708 Sherbrook Dr. Silver Spring, MD 20904
전화 : (301)622-1132, (301)452-6271
조요한 기자 john@chdaily.com
출처:http://dc.christianitydaily.com/view.htm?id=184661&code=cg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9년 2월01일
행12:20-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오늘 본문은 유대 지역의 분봉 왕 헤롯 왕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생깁니까? 20절에보면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연안에 있던 유대 북쪽의 항구 무역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헤롯이 그들에게 분노를 가지면서 그들에게 식량 공급을 중단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왕의 신하 블라스도를 매수해서 악화된 양국관계를 정상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겼습니다.
헤롯이 로마황제를 위한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두로와 시돈 지역에서 가까운 가이사랴를 방문해서 의전에 따라 일장연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헤롯의 환심을 사기 위해 두로와 시돈 지역에서 동원된 사람들이 헤롯의 연설을 듣고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저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다!" 헤롯이 그 환호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진정 대단한 존재인 줄 알다가 결국 그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충이 먹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취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면서 가장 주의하며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칭송할 때입니다. 그때는 "내가 잘해서!" 혹은 "내가 똑똑해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됩니다. 일이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인생에게 하나님은 더욱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1. 인생에는 작품 인생과 졸작 인생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병든 제물, 흠이 있는 제물, 신체의 일부가 손상된 싸구려 제물 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큰 죄였기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온전하고 건강하고 흠이 없는 제물을 가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우리 자신이 '산 제물'입니다(롬 12:1). 그렇다면 우리 자신도 흠이 없는 모습, 건강한 모습으로 드려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없고, 건강할 때에는 왜 이리 하나님을 외면하다가 꼭 문제가 생기고, 병이 들어야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망하거나 병들어서만 나오면 안됩니다. 일이 잘되고 건강할 때 하나님 앞에 나오는 모습이 더 중요합니다. 건강할 때는 하나님을 철저히 외면하다가 병들어서야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죄송한 일이고, 얼마나 처량한 일입니까? 어려서 부터 신앙적 훈련을 잘 받으면서 세상으로의 이탈됨이 없이 성결한 샒을사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갖은 죄를 , 갖은 타락 다 거친후에, 혹은 세상 물정 안 후에 주 위해 헌신 하겟다는것은 조근 미숙합니다.
우리는 일이 잘되고 건강할 때일수록 더욱 겸손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는 재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더욱 큰 축복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 존재 목적에 합당하게 살 때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인생, 가장 창조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는 인생은 반드시 작품인생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취하는 인생은 반드시 졸작인생이 될 것입니다.
2.그러면 어떤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일까요?
1) 하나님 중심적인 삶 입니다 어떤 분은 입만 뻥긋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만 하고 속으로는 "내가 했지!"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척 하면서 결국 자기가 영광을 취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모습은 마치 "국민의 뜻"을 내세우며 자기 욕망을 이루려는 정치인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지 말고 진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크게 성공하거나 큰일을 성취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출세해야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고전10장 3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삶이 없는 사람이 크게 성공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은 얼마나 평범한 일입니까? 그런 일을 가지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게 성공해서 영광 돌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은 큰 일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빵 한 조각을 놓고도 진지하게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누구보다 영광 돌리는 사람입니다.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일터를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입니다. 밀레의 그림은 만종에 대한 예화 이야기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누구인지 알기 힘듭니다. 그러나 식사 한 끼 같이 해보고, 일을 같이 한번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살지는 못해도 모든 생각과 태도의 중심에 정말 하나님이 있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입에 침을 튀기면서 "하나님을 내세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해도 작고 평범한 삶에서 허점이 많은 사람은 영광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항상 거창한 것만 찾지 말고 지극히 작고 평범한 일에서도 하나님 자녀답게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겸손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남을 속이는 태도이고, 결국은 자기 자신도 속이는 태도입니다. 갈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갈6:3) 교만한 사람은 자기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봅니다. 그런 교만한 눈에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그런 교만한 마음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래 겸손하기 힘듭니다. 조금만 틈이 생겨도 자꾸만 높아지려고 합니다. 공부를 조금만 잘해도 높아지려고 하고, 돈이 조금만 많아도 높아지려고 하고, 얼굴이 조금만 잘 생겨도 높아지려고 하고, 심지어는 조금만 은혜를 더 받는 것 같아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면 마음을 힘써 낮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를 죽일 수 있을 때 치유의 길, 문제 해결의 길은 활짝 열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은 가장 위대한 말입니다. 이 말은 "나는 날마다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친다!"는 말입니다.
가끔 너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잠잠히 지내면 그것은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가끔 분노가 치밀지만 그 분노를 참으면 그것도 역시 날마다 죽는 삶에 속합니다.
가끔 '편안한 삶'에 대한 추구가 나를 유혹합니다. 그런 삶은 내 육신을 편안하게 하지만 내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편안한 삶보다 헌신적인 삶이 내일이 있고, 가치가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편안한 삶의 유혹을 멀리하면 그것도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그처럼 한번 자랑을 참고, 한번 분노를 참으면, 한번 유혹을 참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풍성한 축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나 됨을 하나님의 은혜로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복은 바로 그 복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위대합니까? 그는 큰일을 했어도,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되어도 항상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3.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가장 실제적인 표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배는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고, 우리의 성패와운명을 결정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 돌리는 행위입니다. 그 예배가 형식적인 예배, 지루한 예배, 감동과 감격과 감사가 없는 3대 불감증의 예배가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배 중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양식을 얻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요셉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금요일 저녁에 집에서 출발하여 걸어서 교회까지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월요일 저녁쯤에나 돌아오는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예배 시간만이 감격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향해 가는 길도 은혜가 넘쳤을 것이고, 예배를 드린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은혜가 넘쳤을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려면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예배 시간 전에도 예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 시간 후에도 예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예배에 참석한다든지 축도가 끝나자마자 후다닥 도망친다든지 하는 그런 모습에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항상 예배 시간 전에 조금 일찍 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예배가 끝난 후에는 받은 말씀 가지고 한 톨이라도 흘릴까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를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되지 않겠습니까? 요즘 구조조정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세계 일류 기업 메리린치가 망하고 , 페니메이가 부도날중 누가 알았습니까? 이제는 장사가 잘 되는 기업, 잘 할 수 있는 기업에 집중하고, 문어발식으로 늘어놓지 말고 좀 자르고 중요한 사업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 생활도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본질적인 일, 중요한 일,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가장 소중한 삶은 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실패하게 할때 어떤 방법을 씁니까? 삶을 산만하게 만들고 중심이 없게 만듭니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들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본질적인 삶에서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본질적인 삶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예배의 수준의 우리의 삶의 수준입니다. 예배하는 태도가 인생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또한 예배의 축복의 우리의 축복을 결정하고, 예배의 질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길이 다 막혀도 하늘로 향하는 길은 열려 있기 때문이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펼쳐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 인생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산다는 사람은 절망의 날에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유지되는 인생임을 겸허하게 인정한다면 절망의 날에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소망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일이 잘 되나 못 되나 상관없이, 큰 일 에서나 작은 일에서나 상관없이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사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9년 1월25일
행12:1-19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기독교를 핍박할 계획을 세우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지목하여 처형 했습니다 야고보를 처형한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너무도 기뻐하는 것을 본 헤롯은 초대교회의 수장인 베드로까지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체포하여 투옥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두 쇠사슬에 매여 감옥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런데 여러분!
사형당할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어찌 잠을 잘 수가 있었을까요? 자기의 생사운명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 염려없이 자는 것은 안도의 잠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중에서 당황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염려를 주께 맡기고 잠자는 믿음이 더욱 차원높은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 같이 안도의 잠을 잘지라도 죄악의 잠을 자지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요나같이 사명 회피의 잠을 자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기적의 교훈
1. 환난 속에서도 평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와중에서도 잠을 잘 정도로 평안을 가졌습니다. 예수께서는 풍랑을 만난 배안에서도 주무시는 평안을 가지셨습니다. 사람에게 임하는 환난은 각양각색 입니다. 그런데 각자에게 임하는 환난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환난입니다. 그를 거룩하게 하고 그를 연단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서 완전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반드시 임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가정의 환난을 필요로 하고 어떤 사람은 병의 환난을 요하며 어떤 사람은 빈곤의 환난을 요하며 어떤 사람은 실패 낙담의 환난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각 그 시달리는 병에 따라 특수한 약을 필요로 하듯이 각자의 결점을 보충하기 위해 하나님은 특수한 환난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믿는자의 환난은 과거의 보응이 아니라 내일의 준비입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특수한 환난에 의해 즐거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연마하고 또 장식되며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임하는 환난을 감사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잠깐 고난을 받게 하시고 그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없는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심이 있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사냥을 좋아하여 늘 하인을 데리고 다녔다 하루는 사냥을 가면서 주인이 하인에게 물었다 "너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늘 시험을 당하였다고 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이 없는데." 하인이 대답하기를 "주인이시여, 노하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지금 저기에 있는 꿩을 쏘아 한 마리는 즉사 하고 한 마리는 한쪽 다리가 맞아 살겠다고 절름발이가 되어 달아난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것을 먼저 가서 잡으시겠습니까?" 하였다. 주인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물론 산 놈을 따라가 잡을 것이 아니냐?"했다. 그때 하인은 "옳습니다. 주인님은 이미 그 영이 죽었으니 마귀가 잡으려고 시험할 필요가 없고, 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니까 마귀가 잡으려고 별별 시험을 다 할겁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고난은 살아 있는 자에게 오는 연단입니다 주 안에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2. 하나님의 사람의 귀중성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
온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철야 기도할 만큼 그래서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를 보낼 만큼 하나님의 사람은 귀한 존재였습니다. 이 같은 일은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는 의미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가 되도록 사명에 불타는 자가 되며 귀히 쓰임받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아세라 선지자 바알선지자 850명은 버리되 엘리야 한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심 같이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 하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귀중히 여기십니까? 잠3:3-4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떠나지 않게” “목에 매며” “마음판에 새기라” 친밀한 교제 상징단어들
요새 한국 언론에서는 백악관 비서실에 근무하게 된 김정호목사딸 김소연양 이야기가 화제 입니다 소연양은 그냥 뽑힌게 아니다 그녀는 정권인수위의 정부 부처 평가팀(Agency Review) 소속 농무부 평가팀 멤버로 일했으며, 이전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산실로 꼽히는‘미국 진보센터(CAP)’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또한 선거에 앞서 약 1년 전부터 자원봉사자로 시작해 정식 선거운동 본부 요원으로 발탁돼 미디어와 이메일 응답, 자원봉사자 훈련 업무 등을 담당해 왔다 (최소 3년)
유진 강 이라는 젊은이도 비서관으로 발탁됐는데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관계를 맺었다.
평소에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친밀한 교제가 있는자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귀중한 존재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보호 하시는 사람입니다.
3. 온 교회가 뜨거운 기도의 열의로 베드로는 석방 되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어려움을 당할 때 온 교회가 기도했습니다. 이는 아주 귀한 일인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것은 귀한 일이며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사랑입니다.
이들의 기도한 일들을 살펴보면
첫째,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라고 했습니다.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모인곳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또 오순절에 120명이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은 곳도 마리아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이 집이 초대 교회의 집합장소요 예배당이 된 것입니다. 이는 한 두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심기도였습니다. 사도들이나 집사들만 모인 것이 아니고 "로데"와 같은 계집아이도 같이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혼자 하는 기도보다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하는 기도는 위대한 힘이 있으며 기도를 하는 자들도 힘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금요기도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한번 나와 보세요 영이 새로워 질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작년 삽결줄 기도운동을 통해 이미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계산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체험이 있지 않습니까?
둘째,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5절"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주의 사자 석방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 간절히” earnestly 엑테네스 성실한 진지한 열심있는 간절히 기도한 내용
(1) 하나님의 뜻이면 베드로를 석방시켜 달라는 기도요
(2) 베드로가 용감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모든 당하는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기도.
(3)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는 초자연적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으니
기적인 역사로 이 수난을 이기고 죽음을 면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헤롯의 행한 악의 세력이 크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능력은 더욱 크시고 이 능력이 행하시도록 하는 성도들의 기도의 힘은 더욱더 컸던 것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요새 개인적으로 많이기도/함께하자
4.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 만이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이 세상 에서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여기 감옥 안에 있던 베드로의 착고가 저절로 풀려지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의 문제도 하나님이 스스로 해결하사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10절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 지라"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데리고 나올때 베드로의 손에 묶여 있던 쇠사슬도 감옥에서 밖으로 나오는 쇠문의 문도 스스로 풀렸습니다.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모든 문제를 인간들이 해결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특히 구원에 있어서는 인간의 어떠한 공로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엡2:8-9)말씀합니다.
11절에서 베드로는 "나를 헤롯의 손과 유다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옥에서 나온 후에야 비로소 천사를 동원한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무지했지만 끝까지 무지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돌이켜 봄으로써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과정 속에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지난 후에는 알아야 합니다. 결코 무지가 자랑일 수 없고 자기 합리화의 근거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편 강도는 끝까지 무지함으로써 구원에 이르지 못했던 반면 다른 한편 강도는 비록 죽음 직전이었지만 깨달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같이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계산 할 수 없는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돌이 킬 수 없는 길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감옥이나 죽음을 개의치 않고 전도의 사명을 수행하려던 베드로 같이 나의 남은 여생을 주님의 병기로 쓰임 받도록 봉사합시다. 나의 여생을 주님을 위해 쓰임 받기를 원하고 충성할 때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옥케 된 것 같이 하는 일들이 잘 풀리어 형통케 될 것이며 주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이 언제나 임하게 될 것이니 이런 믿음의 역사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9년 1월18일
행9:36-41 나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는 있으면 안 될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 등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자는 있으면 안 될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징벌로 죽었지만 베드로는 전도 사업에 꼭 필요한 사람이므로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해도 저를 멸하지 아니하시고 구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다비다의 부활도 그가 생전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거니와 너무나 필요한 인물이기에 베드로의 기도와 성도들의 눈물을 보시고 다시 살려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다비다 같이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기적의 교훈
1. 죽음은 선한자 악한 자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도 죽으셨는데 그 어느 누가 이 세상에서 죽지 아니하고 살아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36절에 보면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로보다 더 귀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선을 베푸는 것으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망은 인생의 최대 강적입니다 사망 앞에는 금력, 권력, 지력등 인간의 어떤 힘이라도 쓸데없고 이 사망에게는 경우도, 예의도, 체면도 없고, 사망의 초청장을 받았을때는 사정도, 항의도 못하고 그저 따라 갈 것 뿐입니다. 사망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든지 언제나 옵니다.
그래서 만리장성을 쌓고 천하의 병기를 거두고 아방궁을 짓고 불노초와 불사약을 구하여 먹으며 말하기를 이제는 나를 대적할 자 없으리니 만세 무궁하리라 하던 중국의 진시황도 갔고 3대륙을 휩쓸던 알렉산더 대왕도 갔고 나의 일생에 불가능이 어디 있느냐 하던 나폴레옹도 남대서양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6대주에 부는 바람은 인간의 한숨이 아니며 5대양의 넘치는 물결은 인간의 눈물이 아니냐는 대 탄식의 유명한 말을 남겨 놓고 세상을 따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은 인생의 최대의 비애요 최대의 공포요 최대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사망은 누구나 슬퍼하고 겁을 먹는 것입니다. 이 사망은 무상합니다. 어느 때 올지 알 수도 없습니다. 며칠전 뉴욕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 / 승객들의 반응 /
죽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옵니다. 그러므로 덕망 있고 존경받던 다비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내세 소망이 있습니다. 내세의 소망을 가리켜 *복스러운 소망(딛2:13) *하늘에 쌓아둔 산 소망(골1:5) *좋은 소망(살후2:16) *영원한 소망이라고 합니다(딛1:2).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죄인이 죽으면 지옥에 가고 성도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눅16:19-31)
2. 하나님의 큰 영광이 드러나기 위하여 다비다가 살아났습니다
영광이란 이름이 빛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심도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사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인간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려고 하며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정함이 없는 허탄한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재물을 위한 사업, 재물을 위한 투쟁, 재물을 위한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생애는 그러한 세속적인 재물이나 일시적인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더우기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도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높은 자리에 두신 것은 우리 인간에게 특별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기를 원하였으며 그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하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42:8)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께서 받으실 영광과 찬송을 어떤 인간이나 우상이나 다른 그 무엇에게도 빼앗기지 아니하였고 당신의 영광을 도적하는 사람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모두 패망하였던 것입니다.
행12:23에 보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였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은 사실이 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 말년에 실패한 것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실 베드로가 기도하므로 죽은 자가 살아났을때 베드로의 영광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오늘날 병고치는 역사행하고 얼마나 자랑/ 금전요구 / 어떤 집회 광고 / 신유
베드로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역사하셨으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 하나님께 나는 자유해...
3.베드로의 진지한 기도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모든 힘을 집중하여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사람을 다락에서 다 내어 보냈으니 그것은 정신을 하나님께만 집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은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 벽을 향하고 앉아 기도한 것과 같고 (왕하20:2) 야곱이 밤중에 자기 가족들 전부 강을 건너게 하고 자기는 홀로 강 이편에서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창32:23-24) 이처럼 정신 집중은 기도 생활에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영이시기에 우리도 영적으로 교제해야 하는데 이 영적 교제의 출발이 혼에서 즉 마음 또는 정신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내용입니다 / 혼(마음)을 통하여 영의 세계로 연결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 마음 (지,정,의)을 하나님의 뜻에 붙들어 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기독교 명작의 저자요 경건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토마스 아켐피스"(Thomasakempis)는 기도할 때에 그 얼굴이 아주 변화되어 하늘의 것에 집중된 모습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는데 이 모습 역시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도 모든 생각을 집중하고 자신을 바치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4.베드로에게 주의 능력을 확신케 하려고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다비다가 죽어 버렸으며 시신의 속옷과 겉옷까지 다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종종 주님의 능력보다도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앞세웠던 사람이었습니다(마16:21-23)십자가부인.
주님께서 잡혀 가시기 직전까지 기도하지 못하고 실의의 잠만 자던 사람이었으며 (눅22:31, 46) 죽음의 공포 앞에 주님마저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였습니다(눅22:60). 그러나 지금은 삶과 죽음의 모든 권한을 주님께 위임하고 오직 주님의 뜻만을 묻는 성화된 인격자가 된 것입니다.
이같은 베드로 사도의 신앙 태도는 당시 모든 신자의 귀감이며 참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을 보여 주기도 한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다비다는 물론이거니와 베드로 사도 역시 더욱 신앙의 확신을 얻어 힘있게 주의 사명에 충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제는 다비다와 같이 주를 믿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영원히 죽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42절에 보면 다비다가 살아났다는 사실은 곧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졌고 온 동리에 퍼졌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 살았던 다비다는 다시 죽어서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합니다.  이 세상에 다시 돌아 올수 없습니다 먼 훗날 천국에서 만나서 간증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이제는 다비다가 다시 살아날 수 없기에 그대신 내가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내가 살아야 합니다 내 영이 살고 내 믿음이 살아나야 합니다. 내 기도가 , 내 헌신이 , 내 충성이 살아나야 합니다 내 사랑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아름다운 교회로 찾아 올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어쩌면 아직도 우리교회의 전도의 문이 열리지 않는것이 내가 죽어있기 때문이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살아나길 바랍니다 기도가 살아나길 바랍니다 헌신이 살아나길 바랍니다. 사랑이 살아나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하지마세요 교회는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내가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비다가 살아남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주님을 믿게 되었듯이 우리 모두의 심령이 살아 꿈틀거림을 통해 복음의 문을 활짝 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2월6일 부흥회 /어떤 게임에서 승부수를 던진다/ 이번 성회가 우리교회 승부수 /기도작정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9년 1월11일
이번 주는 박석규 목사님께서 말씀 선포 해주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해주신 박선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9년 1월 4일
빌 1:27-30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
2009년도 우리교회의 표어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교회 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한 해의 표어를 어떻게 정하는 가에 따라서 그 표어대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심을 보면서 표어를 정할때에는 특별한 기도와 말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복음대로 사는 자에게는 반드시 큰 은혜와 복을 약속하고 있기에 올 한해 우리가 표어대로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복음의 증인에 합당한 삶을 살때 큰 부흥과 축복이 있게될줄로 믿습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정도로 그들의 장점을 들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빌립보교인들의 부족한 점을 위하여서는 책망대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었습니다.  로마 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는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가 전하는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며 자기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 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 (빌1:20-21) 고 피력하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행2:47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공동체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못하면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기는 커녕 도리어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이민 교회들도 예외는 아니겠습니다만 요즘 한국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생활면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개독교)
"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온전할 수 없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점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1)빌립보 교회 안에서 일어난 작은 분쟁이 있었습니다. 즉 유오디아와 순두게 라는 부인들 사이에 갈등, 불화가 있었습니다. 지나친 열성 때문에 일어난 불화인 것 같습니다.
2)빌립보 교회 안에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빌립보 교회 안에는 윤리적 실천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자칫하면 분열로 치닫게 되고 혼란이 야기되어 파멸 에 이르게 될 것을 우려하여 권면한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27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헬라어/폴리튜에스데)는 말은 폴리테스/ 시민 이란 단어에서 온 것으로 '시민으로서 행할 바를 행하라'는 뜻입니다. conduct yourselves
우리가 어떤 나라의 시민이 되면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되고 또한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당시 빌립보는 로마의 속국으로써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로마 시민은 그 당시에 여러 가지로 큰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이 말씀은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생활하라." "예수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천국 시민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복음에 합당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한 대답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1.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27절 하반절에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이 협력하고 함께 힘을 합하여야 제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그렇고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사회생활이 역시 그러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협조하여야 됩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여성 성도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다 열심 히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협력이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빌4:1-2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각각 열심이었으나 협력과 일치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자칫 교회에 분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협력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협력과 일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협력 / 協 글자 모양을 보면 혹 이렇게 풀이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십자가를 기초로 힘을 합하되 3명이 합하라 성경적으로 보면 한사람이면 패하거니와 두사람은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끊을수 없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협력하라 상알으로 용납하고 양보하라 희생하라 그러면 협력이 된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도 협력과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엡 4:1-6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 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고 하였습니다.
사실 협력하지 못하고 분열 되고 나누이는 것은 빌립보 교회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오늘의 이민교회의 문제도 바로 분열과 나누이는 문제였습니다. 미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미래 교회는 협력과 연합의 길을 걷게될것이라고 합니다. 이 길만이 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협력하며 사십시오 독불장군은 없다
2.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두려워함'은 말이 무엇에 놀라듯이 놀란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어떤 두려운 일을 만났을 때 인내로 견디며 주님의 돌보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 안팎에는 대적자들이 많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대적자들은 유대인들을 포함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입니다.
그들은 곧 적그리스도요 (살후2:4), 사단이요(딤전5:14-15), 이단자요, 핍박자들입니다. 성도는 항상 대적자 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독교가 처음 전파된 때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일종의 패배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성도는 신앙의 담력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까? 복음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역사는 실패가 없기 때문입니다. 딤후1:7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마10:28절에서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을 탐지하고 온 정탐군중 10명은 적들을 대장부로 보고 자신들을 메뚜기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믿음이 없이 현실만을 바라봄으로써 적들 앞에 두려워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담대했습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편이십니다. 성도는 결코 두려움에 떠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태연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며 담대히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자입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도 우리는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실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나아갔기에 전혀 두려움이없이 골리앗과 싸웠고, 하나님은 다윗으로 승리케 하셨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은 시편 3편 6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려 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올 한 해 복음의 능력 안에서 담대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3.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고난도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으로 알고 사는 것입니다.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 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고 하였습니다. 고난은 특권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을 전하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록하는 순간도 예수 믿고 복음을 전하는 이유 때문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 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특권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도 특권을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고난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쌍의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능히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고난을 기쁨으로 영접하게 하며 고난은 인내를 낳으며. 인내는 소망 중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하고 위로를 주며 장래의 영광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하였던 시기는 가장 고난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의 영적 각성 및 부흥운동사를 살펴보면 영적 각성과 부흥운동이 가장 강력하게 일어났던 시기도 제2차 세계대전이후 불어 닥쳤던 경제 공황의 시대 였습니다 이때는 가정마다 가정 예배를 드렸고 성전의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정치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의 때는 미국의 경제공황을 능가하는 불황의 때라고 말합니다 고통의 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되고 고난은 장차 올 영원한 영광 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견고케 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난이 올 때 고난을 직시하고 믿음으로 싸워 이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연단시키며 그들에게 궁극적인 복을 주십니다. 약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빈센트(Vincent)도 "고난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약혼할 때 받는 선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음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도 역시 하나님이 주신 가치 있는 선물입니다. 벧전 1:6-7 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 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시민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성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성도의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이것은 곧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생활입니다. 협력 합시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이것은 곧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생활입니다. 담대 합시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이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생활입니다. 인내 합시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금년한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함으로 우리를 향해 좇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는 은혜의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8년12월28일
행 9:32-35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믿는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빛으로 임하신 주를 만나 회개가 있은 후 성령의 역사는 계속해서 베드로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을 찾아 위로하며 또 그 신앙을 격려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돌아 다니다가 "룻다"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에서 위대한 이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룻다"에 "애니아"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중풍병으로 인하여 팔년이나 고생하고 있는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허다한 재산을 허비하였을 것이요 또한 여러 방법도 써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효력을 얻지 못하여 소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을 때 베드로의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동정의 마음은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 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오늘 이 사건을 중심으로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를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먼저 생각해 볼것은 병을 고치는 것은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병자가 고침 받아 건강하게 되는 기적이 따르므로 제자들은 더욱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찾아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개인들에게 감동과 감화와 느낌으로 깨닫게 하시어 부르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존귀한 기적을 나타내는 데는 사람을 통해 신유의 은사로 역사하시는데 선지자, 사도, 목사 등을 통해서 일어나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육천년 역사 대부분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하셨습니다. 특히 이때의 기적은 사도 들에게 주님이 부탁하신 예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2.기적에, 영혼구원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구약성경 출애굽 당시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은 그 자체가 유명하기보다 장정 60만이라고 하는 많은 이스라엘인을 구원하였기 때문에 유명하며 가치가 큰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진도" 앞바다가 매년 한차례씩 봄이 되면 갈라지고 있습니다만 조개를 줍고 낙지를 캐는 관광객에게나 인기가 있을 뿐이지 아무런 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혼 구원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적은
1)그 주변 온 마을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룻다"와 "사론"에 거하는 모든 주민들 곧 "욥바"로부터 "가이사랴"에 이르는 연안 약 48km 정도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치유 받은 사람을 보았으며 그 기적이 사실임을 확신했습니다(행3:9).
2)이 일을 목격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 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선포하는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목격했던 증거는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임을 부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강한 신의 역사이기 때문에 거역하지 못하고 주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모든 기적의 결론은 영혼 구원입니다
3 . 네 자리를 정돈 하라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예수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믿고 일어나 네자리를 정돈하라" 했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창조 방법도 다르고 사는 방법도 다릅니다. 그리고 자리를 정돈 할 줄 아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사람은 자기주변이나 환경 그리고 자기 사는 곳을 정돈 할 줄 압니다. 도시를 정돈 하고, 시가지를 정돈하고, 도로를 정비합니다. 집안 살림을 정돈하고, 가재도구를 정돈 합니다. 실내장식을 꾸미고 숟가락식기를 정돈해 둡니다 옷장도 정리하고, 입던 옷도 정돈 할 줄 압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개, 돼지는 정돈이라는 행위가 없습니다. 먹는 곳, 싸는 곳, 자는 곳, 눕는 곳, 노는 곳의 구분이 없습니다. 밥그릇 정돈 하는법 없고, 잠자리를 정리 하고 청소하는 법 없습니다. 사람만 자기정돈이 있고 주변 정리가 있고 신변 정리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정리와 정돈이 철저한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와 죽음의 세계를 정돈하셨습니다. 내가 지은 죄를 정리해 주셨고 우리 모두의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 정돈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나 자신을 정돈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삐뚤어지고 잘못된 내 행동을 정돈해야 합니다. 제멋대로 내뱉는 말, 제멋대로 사는 내 행동, 불순종하며 사는 버릇, 원망불평 하며 사는 내 생활 습관, 못된 버릇 정리정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아시는 대로 미국의 도시마다 '홀리데이인' 호텔이 있습니다. 이 호텔의 창시자인 '와이레스 존슨' 이 늘 수첩 에 적어두고 평생 거울로 삼은 성경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는 딤후 2:1 5말씀 이라고 합니다. 그는 매일 그 구절을 읽고 '주님 오늘하루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생활로 나를 바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우리 자신의 자리를 정돈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애니야 에게 "네 자리를 정돈하라" 고하였습니다. 8년 동안 깔고 뭉개었던 애니아의 자리는 냄새 나고 곰팡이 슬고 썩은 자리 였을 것입니다 그 자리를 네 스스로 정리정돈 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가 뭉게 논 자리를 누구보고 정리하라 할 것입니까?
자기가 더럽힌 자리를 누구보고 정리 하라 할 것입니까? 내가 뭉게 논 자리, 내가 더럽힌 자리는 내가 정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애니야 에게 8년이나 누워 지냈던 냄새난 자리, 악취난 자리를 네스스로 정리하라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 를 정돈하라" Get up and take care of your mat(1) 5년, 10년, 20년, 30년 고집과 불신앙으로 쌓이고 쌓인 네 자리 를 믿음의 자리로 정돈하라.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생활 했다고 하면서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네 믿음을 다시한번 돌아보라. 그런 신앙 갖고 천국 갈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불신앙의 자리를 정돈하고 믿음의 자리로 옮겨 앉으라고 말씀 합니다 . (2)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죄악 된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사단의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 할 수 있겠는가? 네 그 자리 청산하지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고 있으면 너는 네 죄악으로 죽는다. 속히 네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나라라고 하나님은 오늘의 강단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3)룻다의 중풍병자가 바로 오늘의 우리 자신입니다. 중풍병자가 한쪽은 사용하고 다른 한쪽은 쓸 수 없는 자 인 것처럼 온전한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너,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지 못하는 네가 바로 중풍병자다 일어나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네가 일어나야한다 라고 하나님은 오늘 말씀 하십니다. 이시간 주의 음성 듣고 일어나십시다. 그리고 더럽고 추한 나의 자리를 정리 하십시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내 가정, 내 사업에 주님이 계실자리를 마련해 드립시다.
주님 모실 수 있는 자리로 정돈해 드립시다. 내가 정돈할 자리는 무엇입니까? 내 생활이 깨끗합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것 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네 자리를 정돈하라. 네 생활을 정리하라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자리가 되게 하라 말씀 하십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어 불순종의 삶을 청산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은 치우고, 추한 것은 버리고, 나쁜 것은 쓸어내는 대청소 하여 언제나 깨끗하고 정결 된 내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해야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새로워진 애니야 를 통하여 "룻다 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주께로 돌아오니라"
베드로 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여 행동함으로 기적을 체험한 애니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해를 마감하며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되는 마지막 송년주일에 우리는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함으로 결론을 삼아야 합니다.
첫째질문은, 나 때문에 른 사람이 예수님께로 오고 있는가, 아니면 떠나고 있는가?
둘째질문은, 나 때문에 예수님이 증거 되고 있는가, 아니면 가리워지고 있는가?
셋째질문은, 나 때문에 형제가 위로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를 받고 있는가?
네째질문은, 나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가, 아니면 부흥의 암적 구실을 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애니야 처럼 믿음의 행동과 순종을 통하여 내 자신이 새로워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어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 갑시다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주가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 붙들고 일어나, 역사의 한때를 만드는 위대한 믿음이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2월21일
마2:1-12 예배를 회복 합시다
 
이번 주 목요일이 성탄절 이지만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탄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오늘 예배를 회복 합시다 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세가지 의미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수많은 예언자들이 목숨을 걸고 예언한 예언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예언의 성취입니다
2.인간이 범죄 하는 순간부터 세상에 대하여 마귀가 지배권을 행사해 왔는데 예수님의 탄생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개입을 성취 하신 것입니다.
3.주전/기원 전 (B.C/Before Christ)의 역사 에서부터 주후. 기원 후 (A.D/ Anno Domini, in the year of our Lord) 의 역사로 바뀌는 새 역사의 현장 이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진행되는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역사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일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동안 온 세상이 기뻐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시던 그때의 역사적, 시대적 상황을 보면 당시 대 로마제국의 권위와 군대를 배경으로 한 독재자 헤롯 왕 밑에서 피지배자로서 고된 삶을 보내고 있던 유대인 들을 생각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결코 축제를 올릴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1. 당시 유대왕 헤롯은 예수의 탄생을 대단히 두려워했습니다.
헤롯 편에서 보면 자기의 정권을 장차 위험케 할 위인이 아닌가 경계를 하고 드디어는 아기예수를 죽여 버릴 계획을 가졌기 때문에 이 성탄 사건이 결코 축제적인 사건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이었지만 로마제국에 의해서 유대의 왕이 되어 로마의 법과 조직으로 유대인의 자유와 인권을 마구 짓밟고 있었습니다. 또한 헤롯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 만 을 신으로 모시는 이교적인 생각으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과 모세로부터 받은 신앙적인 전통을 짓밟고 있었으며 자기정권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의 아내도 죽였고 그의 자식까지도 무참하게 죽여 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자기정권에 반대를 표시하는 유대인들은 그 지위나 신분에 구애 없이 처단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경우에는 후한 벼슬을 주어 자기의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들 중에서도 바리새파사람들과 사두개파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하여 백성을 대변하는 일치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헤롯 자신 의 정권에 대한 종교인들의 비판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1:18절 이하에 나와 있듯이 헤롯이 아기예수를 죽일 계획을 하다가 그것이 실패하자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아기 들을 죽여 버린것도 자기의 정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으레 할 수 있는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롯에게 있어서 첫 성탄절은 결코 기쁨이 아니었고 두려운 것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탄생이 자기생활에 간섭이나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자기의 위치, 자기의 세력, 자기의 영향력에 어떤 침해가 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쁘고 즐거워야 할 성탄절이 혹 염려의 절기가 되지는 않는지요? 가족과 친지들에게 줄 선물, 가족 모임을 통한 파티 준비, 아니 어쩌면 이불황의 때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 혹 이런것들이 내게 염려의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기뻐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쁨과 행복은 만들어 가는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기쁨이 오고 만족이 옵니다
2. 무관심한 일반 대중
그들은 예수라는 아기가 탄생 했다고해서 그것이 기쁨과 축하의 사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고달픈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개인인격이 존대 받는때가 아니라 헤롯의 법과 군대아래 그 생명들은 천대를 받았고, 그들이 가진 소유는 약탈당했고, 그들의 소망도 멍이들어 있었습니다.
자유는 그림의 떡같은 것이었고, 자기의 인권과 사상을 소중히 여기는 민주적인 사고방식은 헤롯의 철통같은 법과 질서아래서 금지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가난하게 살아야했고, 침묵을 지켜야했고 천대를 받으며 헤롯의 법과 군대아래 공포 분위기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이사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반동분자의 낙인이 찍힐까 전전 긍긍하고 살아간 사람들이...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당시의 유대사람 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기예수가 지내던 유대나라의 시대상이요, 그 역사적인 현실 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현실 속에서 안주 하는데만 급급하였고,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였던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서기관들 역시 무관심 하였습. 그들은 성전예식과 율법 토론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예수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 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국땅의 박사들이 관심을 더 갖고 먼 길을 찾아왔음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작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러한 무관심은 오늘에 있어서도 여전히 팽배하여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탄절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해서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민을 위하여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신 놀라운 사실 을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하여 참 생명, 참 길, 참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축하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지키는 성탄절에는 정작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뻐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떠드는 흥에 장단을 맞추는 격 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연말에 한번 즐겁게 노는 축제 분위기속에 빠져 있을뿐 인 것입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에서 그리스도는 그저 들러리에 불과한 엑스트라일 뿐이며, 주인공은 산타클로스, 선물 봉투, 술 잔치 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의 몸이신 교회 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신랑되신 예수의 정결한 신부들인 우리들 입니다
3. 여기 동방 박사들은 예배를 드린 성탄의 주인공 들 이었습니다
헤롯정권아래, 유대인들이 맞이한 그 시대적인 상황아래 아기예수가 나셨다 는것은 하나의 장엄하고 엄숙한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아기예수를 통하여 헤롯의 철저한 정권욕이 잘못된 것임을 규탄하시고, 그의 정치가 하나님의 공정한 법과 정의에 얼마나 어긋나는 것인지를 밝혀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성탄절은 사실 인간이 즐기고 떠들기에 앞서 하나님의 권위와 그가 인간 역사를 간섭하심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떠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성탄절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계절임을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탄생지 방문은 이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헤롯을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냐"고 물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물론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의 왕을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 경제적 여유,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만족 할 것 같으나 무슨 불만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만일 심신의 만족을 가졌다면 정처 없는 위험한 먼길을 떠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일 가족과 직장을 버리고 왕을 찾아 먼 길 을 떠난다면 보는 사람마다 돌았다고 만류할 것입니다.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자녀가 목사가 되겠다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신학교를 간다면 과연 부모님들이 좋아만 할까요? (예화 /며칠 전 워싱턴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는 교수님을 만나서 대화하는 중 자녀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먼 길을 떠나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별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 못 보았습니까? 그들은 세상일에 끌려 땅만 내려다보며 하늘 일에는 무관심하게 살았기에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늘의 비전을 보지못하고 땅만 내려다보고 속세의 걸음을 걷는 한 참으로 만족한 삶은 살 수 없습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아기를 찾자 그에게 경배 했습니다 그들이 별을 따라 정처 없는 길을 떠났으나 결국 왕을 찾은 것입니다. 그 이름을"임마누엘"이라하라. 즉,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하신다"는뜻이다. 이것이 성탄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염려하시고 우리와 같이하십니다.
세월이가도 그 진리는 변함이 없이 예수는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오사 우리의 사정을 돌봐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거하심을 그가 증거 하십니다. 동방 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 을 그리스도의 발 앞에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가장 값진 선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별을 바라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가서 예배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가장 귀한 예물을 아기예수께 드렸습니다. 예배..,이것이 성탄절의 참 정신입니다. 예배는 자기개인의 일상생활의 일을 중단하고, 예수님을 그 모든 개인사무, 가정, 또는 공적인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예배태도는 너무도 우리 개인의 사정과 기분여하 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예배에 빠지고 섭섭하다고 예배 빠지고. 삐져서 예배 빠지고.. 예배를 등한히 하는 기독교인의신앙은 돈독해 질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항상 기도도 없고, 성경도 안 읽고, 전도도 못하는 형식적인 기독교인으로 무력해 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만은 무슨일이 있어도 빠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예배를 중심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발전 할 수 밖에 없고, 기도 하지 않을 수 없고, 성경 말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속에 있는 신앙의 간증을 다른 사람 앞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탄절의 정신은 바로 이 예배 정신에서 찾아야합니다. 아무리 천만 사람을 감동 시킬 만큼 축하의 노래를 잘 불러도 만일 예배정신이 결여되어 있으면 성탄절의 정신에 위배 됩니다. 호화찬란하게 차린 백화점의 크리스마스치장은 예배와는 멉니다 그것은 다만 상업적인 관심의 표시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성탄절을 아기예수를 살해하려던 헤롯의 성탄절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탄절 때 사람들은 분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얼마만큼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탄절은 예배를 회복하는 절기 입니다. 이 성탄을 주신분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이시요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이 복된 성탄절기에 참 예배 정신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2월14일
눅1:26-38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
여러분은 예기치 않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종류의 긴장감을 느끼십니까?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는데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습니다.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 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 임신했을 때가 40, 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입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 입니다만 Merry Christmas 와 Happy Holiday 논란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낮은 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의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것입니다. 감사한것은 지난주 여전도회에서 사랑의 선물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하기 위해 선교비를 주셨는데 마침 월요일 교단의 고아기관인 헵시바 재단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았는데 이 기관에 보내려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교회 절기로 대강 절 셋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Advent)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adventus'에서 유래된 말로 대림절 강림절이라고도 하는데 성탄절에서 거슬러 올라가 네 번째 주일부터 그러니까 금년은 11월 마지막 주일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계속되는데 이 절기는 ‘그리스도가 오셨고 오시고 있고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대강 절을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성탄절의 실제적인 의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요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 위에 오신 놀라운 사건을 진정으로 기쁨과 경외감 가운데 체험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강 절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깨달음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1. 대강절을 통하여 나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음을 더 깊이 깨닫는 시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정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마음이 부풀은 가운데 새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보내고 있었을것입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소식을 전하는데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인사했습니다(28절) 과연 이것이 합당한 인사였을까요? 약혼한 여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소식이 과연 은혜였으며, 평안한 소식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때에 항상 풍요롭고 따뜻하며 충만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전한 소식대로 마리아에게 아기가 생길 때에 결과적으로 일어날 일은 간음죄의 누명을 쓰는 일이요. 그렇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로부터 수치와 경멸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운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을뿐 어디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정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짐으로 확증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과정에서 처녀가 잉태한 것과 같은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비한 탄생이 이루어졌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계획하심 가운데 이끌림을 받는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남을 알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힘들어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가운데 내 삶에 일어날 일들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장기적인 인도하심에 이끌리고 있음을 안다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은혜'가 아닌 일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 할 수 있느냐는 마리아의 의문에 천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이 아들이라 일컬으리라"(35절) 여러분 모두가 대강 절을 보내면서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이와같은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하나님께서는 주님 오시는 대강절에 우리가 겸손함으로 당신을 맞을 준비를 하기 원하십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한 가난하고 이름 없는 여인을 찾아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이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한 작은 일부터 시작하셨는데 바로 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를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겸손하게 우리를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작고 보잘것 없는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도 가리지않고 찾아오십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맞이하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은 겸손하게 누추한 우리를 찾아오셨지만 우리는 그 분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살아갑니까? 마리아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겸손함으로 자신을 열어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를 경험할수 있는 비결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겸손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4:6“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자발적인 겸손은 자기 비하도 아니고 실망도 아니며 약점의 노출도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허식이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진정한 겸손 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의 실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때때로 인간의 선택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 적인 조건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목격하고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을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28∼29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리아의 겸손함의 다른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자기 부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잉태할 것이라는 뜻밖의 선포에 그는 대들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며 자기를 부인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마리아가 만일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거부하고 반항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구상의 그 누구를 통해서도 그 일을 이루실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겸손과 자기부인 이것은 하나님의 강림의 모습이자 의미이고 또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줄로 압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의 신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3. 이 대강절에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마음에 평강으로 화답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임했기에 마리아가 그 모든 일의 결과를 담대히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행동할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성경 적인 표적은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이미 가브리엘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 안에는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응답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내용이라 함은 천사의 말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이라 함은 평안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은혜를 받게 될 때 평안은 그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받는 우리가 얼마나 믿음으로 그 말씀에 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합할 수 있는 근거가 37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셔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모든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가실것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주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믿으며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 가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이 소식이 항상 그리고 특별히 이 대강절 기간에 우리 마음가운데 울려퍼져서 언제나 평안속에 굳게 서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2월 7일
행 9:1-18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오늘 말씀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빛으로 임하신 예수를 만나 변화되어지는 기적 사건입니다 다메섹지방의 크리스찬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대제사장들에 공문을 청하여 가지고 다메섹에 가까이 가던 사울에게 하늘의 빛이 저에게 비치면서 예수님이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죽어서 부활하지 못한 줄 알고 교회를 핍박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며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시고 저를 부르시니 어찌 회개를 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이제는 더 반역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빛으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지니 사울은 두손 들어 항복하고 말았으며 더 버티지 못하고 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주님이 한 사람을 찾으시는 장면을 보여 주신 기사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각자의 입장이 다르겠지만 바울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이 강권적인 역사를 하시어 저를 굴복케 하시고 헤어날 수 없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께서 멸망받을 수 밖에 없던자들을 구원키 위해서 찾으시는데 어떤자는 병석에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어떤 자들은 사업에 실패한 자리에서 부르시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불의의 불행 가운데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또한 어떤 자들은 참 진리를 가리켜 줌으로써 부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여러 형태로 부르시는 중에 여기 바울의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1)하늘의 광명한 빛이 저를 두루 비치어 땅에 엎드려 지게 하셨고
2)주님이 친히 음성을 내시여 그를 부르시었고
3)소경이 되게 하시사 자신이 확신을 얻게 하셨고
4)주님의 지시를 받은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 받음으로써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하시고 남다른 강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체험케 하시어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 구원받아 주를 섬기든지 주님의 사랑에 의한 부르심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바울과 같이 충성스럽게 주를 섬기어야 할 것입니다.
2. 포악한 핍박자도 회개할 수 있으며 어둔 인생들을 깨우치시려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사도바울이 변하기 직전을 보면 그는 스데반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로서 다메섹에 올 때에 살기가 등등해서 기독교를 말살 시키라는 대제사장 공문까지 받아 가지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빛을 비출때 그의 완악한 인간성은 산산히 깨어지고 대 핍박쟁이가 대사도의 복음 전하는 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볼때에
(1) 아무리 세상에 완고한 자가 있다해도 깨어질 날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2)우리들의 식구중 아무리 권고해도 고집 불통의 인간이 있다해도 그도 예수앞에 변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계속 낙심 말고 전도하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안 문제자)
(3)생각할 것은 우리 주위에 아무리 악독하고 우리를 핍박 한다 해도 사울 같은 완악한 자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기도하며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상자가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까지 가서 믿는자는 남여를 불문하고 결박하여 체포해 오리라고 달려가는도중 홀연히 하늘로써 빛을 받았습니다 그 밝은 빛을 견디지 못해 땅에 엎드러진 사울에게 들리는 소리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 음성에 사울은 크게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고 다음의 사실들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1)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은 죽지 않고 살아계심을 깨달았고
2)예수님은 지금 영광중에 계시며 신자를 핍박함이 곧 예수님 자신을 핍박하는 것인 줄을 깨달았고
3) 죄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고
4) 핍박하는 죄인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심을 깨달았고
5) 자기가 주장하는 율법이 예수님 앞에서는 의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3. 소경된 사울이 다시 보게 된 것은 예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개탄하기를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한다고"했습니다. 사울은 살기 등등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을 잡아 죽이기 위해 모든 힘을 썼습니다 스데반을 잡아 죽일때 앞장서서 돌로 먼저 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눈에서 꺼풀이 벗겨지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가 있었고 예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같이 예수를 알아 본 후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한 죽는다“ 했고 (롬14:7-9)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해도 하나님에 영광을 위해 하게 되었다고 했으며"고전10:31 "복음을 전하다가 죽기로 각오를 하면서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면서"(행20:24) 주의 일을 했습니다. 이같은 사상으로 의를 위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길을 다 달려가기 까지 주의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변화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소경이 되었던 것 처럼 현대의 신자 중에도 소경들이 있습니다 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이 바울은 육의 눈은 있어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한 것은 잘 보아 식별하였고 지식에 눈도 있어서제사장들이 예수의 활동은 다 허위라고 비난하는 공문도 볼 수 있었지만 영안이 어두어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어 참 진리를 보지 못하고 예수를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어 보아야 할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종교인의 행세를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종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데나 숭배하고 복을 달라고 비는 자들이 무수합니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예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고 미래 세계를 알지 못하여 신앙의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으며 볼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할 것만 보아 그것을 따르다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는 자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영안이 밝아 예수를 바라보고 따르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4. 전도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한 기적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자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를 소개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변화의 한 모습이지만 주님은 과거에 어떠한 생활을 하였든지 변화를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뜻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수가 있는데 (마4:19)에 고기를 잡던 자 베드로를 불러서 이제는 고기는 그만 잡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고 (마9:9)에는 세관에서 일을 하던 마태를 불러서 전도를 하게 하시려고 제자를 삼으시고 다섯 남편과 산다고 해서 사람들로부터 인간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사마리아 성을 전도하게 하시였던 것입니다 (요4:28-29).
내가 예수 믿은 것이 신기합니까? 전도하세요 전도하기 위해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같이 전도하기를 요구하시는 뜻은 전도란 무거운 짐을 벗겨 주는 격이 되는 때문이요(마11:28)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 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마12:11). 이같이 핍박하고 포학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5. 자아가 깨어지라는 것입니다.
오만 무도하고 매사에 자신 만만한 인간의 실상은 알고 보면 추함과 부족함과 일그러짐과 어리석음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말로는 사망 이외에 아무것도 오지 아니합니다. (잠14:1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참 자아를 발견한다함은 곧 죄악 된 인간 자아를 깨고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요 이 삶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삶입니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사울은 율법에 관하여 정통한 자였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무고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면서 자신의 악행을 개닫지 못한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향하던 그는 주님의 빛과 음성을 듣고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교만과 악함이 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잘 알아도 ,... 성경을 잘 알아도 .... 성령으로 깨지지 않으면 그의 삶은 무의미 합니다 )
지난 날 행했던 모든 일이 엄청난 죄악이었음을 깨달은 사울은 눈물로써 삼일을 보냈습니다. 이 참회의 삼일은 그의 자아가 깨어지는 순간이요 새롭게 태어나는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 삼야를 지내는 동안 뉘우치고 깨어졌던 순간이 (욘1:17) 우리 모두에게도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설교 준비하며 은혜 받고 제목 잡음 11절 “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 사울이 눈 머니까.. 활동이 정지되니까.. 아무것도 할수 없으니까.. 여러분 뭔가 안될때는 기도하는 시간 임을 깨달으라 12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기도하면 보인다 아멘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으며 또한 저는 예수를 영접한 후로 다시 변해 세상으로 빠진 일 없이 순교하기 까지 주만 섬기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은혜 충만히 받기도 하고 이에 열심을 내다가 타락하여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순교를 각오하고 주를 섬길지언정 타락하여 주를 멀리 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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