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11일
이번 주는 박석규 목사님께서 말씀 선포 해주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해주신 박선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9년 1월 4일
빌 1:27-30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
2009년도 우리교회의 표어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교회 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한 해의 표어를 어떻게 정하는 가에 따라서 그 표어대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심을 보면서 표어를 정할때에는 특별한 기도와 말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복음대로 사는 자에게는 반드시 큰 은혜와 복을 약속하고 있기에 올 한해 우리가 표어대로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복음의 증인에 합당한 삶을 살때 큰 부흥과 축복이 있게될줄로 믿습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정도로 그들의 장점을 들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빌립보교인들의 부족한 점을 위하여서는 책망대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었습니다.  로마 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는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가 전하는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며 자기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 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 (빌1:20-21) 고 피력하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행2:47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공동체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못하면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기는 커녕 도리어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이민 교회들도 예외는 아니겠습니다만 요즘 한국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생활면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개독교)
"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온전할 수 없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점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1)빌립보 교회 안에서 일어난 작은 분쟁이 있었습니다. 즉 유오디아와 순두게 라는 부인들 사이에 갈등, 불화가 있었습니다. 지나친 열성 때문에 일어난 불화인 것 같습니다.
2)빌립보 교회 안에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빌립보 교회 안에는 윤리적 실천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자칫하면 분열로 치닫게 되고 혼란이 야기되어 파멸 에 이르게 될 것을 우려하여 권면한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27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헬라어/폴리튜에스데)는 말은 폴리테스/ 시민 이란 단어에서 온 것으로 '시민으로서 행할 바를 행하라'는 뜻입니다. conduct yourselves
우리가 어떤 나라의 시민이 되면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되고 또한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당시 빌립보는 로마의 속국으로써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로마 시민은 그 당시에 여러 가지로 큰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이 말씀은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생활하라." "예수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천국 시민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복음에 합당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한 대답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1.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27절 하반절에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이 협력하고 함께 힘을 합하여야 제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그렇고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사회생활이 역시 그러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협조하여야 됩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여성 성도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다 열심 히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협력이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빌4:1-2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각각 열심이었으나 협력과 일치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자칫 교회에 분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협력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협력과 일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협력 / 協 글자 모양을 보면 혹 이렇게 풀이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십자가를 기초로 힘을 합하되 3명이 합하라 성경적으로 보면 한사람이면 패하거니와 두사람은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끊을수 없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협력하라 상알으로 용납하고 양보하라 희생하라 그러면 협력이 된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도 협력과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엡 4:1-6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 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고 하였습니다.
사실 협력하지 못하고 분열 되고 나누이는 것은 빌립보 교회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오늘의 이민교회의 문제도 바로 분열과 나누이는 문제였습니다. 미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미래 교회는 협력과 연합의 길을 걷게될것이라고 합니다. 이 길만이 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협력하며 사십시오 독불장군은 없다
2.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두려워함'은 말이 무엇에 놀라듯이 놀란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어떤 두려운 일을 만났을 때 인내로 견디며 주님의 돌보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 안팎에는 대적자들이 많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대적자들은 유대인들을 포함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입니다.
그들은 곧 적그리스도요 (살후2:4), 사단이요(딤전5:14-15), 이단자요, 핍박자들입니다. 성도는 항상 대적자 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독교가 처음 전파된 때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일종의 패배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성도는 신앙의 담력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까? 복음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역사는 실패가 없기 때문입니다. 딤후1:7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마10:28절에서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을 탐지하고 온 정탐군중 10명은 적들을 대장부로 보고 자신들을 메뚜기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믿음이 없이 현실만을 바라봄으로써 적들 앞에 두려워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담대했습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편이십니다. 성도는 결코 두려움에 떠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태연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며 담대히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자입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도 우리는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실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나아갔기에 전혀 두려움이없이 골리앗과 싸웠고, 하나님은 다윗으로 승리케 하셨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은 시편 3편 6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려 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올 한 해 복음의 능력 안에서 담대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3.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고난도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으로 알고 사는 것입니다.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 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고 하였습니다. 고난은 특권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을 전하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록하는 순간도 예수 믿고 복음을 전하는 이유 때문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 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특권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도 특권을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고난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쌍의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능히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고난을 기쁨으로 영접하게 하며 고난은 인내를 낳으며. 인내는 소망 중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하고 위로를 주며 장래의 영광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하였던 시기는 가장 고난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의 영적 각성 및 부흥운동사를 살펴보면 영적 각성과 부흥운동이 가장 강력하게 일어났던 시기도 제2차 세계대전이후 불어 닥쳤던 경제 공황의 시대 였습니다 이때는 가정마다 가정 예배를 드렸고 성전의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정치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의 때는 미국의 경제공황을 능가하는 불황의 때라고 말합니다 고통의 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되고 고난은 장차 올 영원한 영광 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견고케 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난이 올 때 고난을 직시하고 믿음으로 싸워 이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연단시키며 그들에게 궁극적인 복을 주십니다. 약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빈센트(Vincent)도 "고난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약혼할 때 받는 선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음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도 역시 하나님이 주신 가치 있는 선물입니다. 벧전 1:6-7 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 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시민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성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성도의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이것은 곧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생활입니다. 협력 합시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이것은 곧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생활입니다. 담대 합시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이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생활입니다. 인내 합시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금년한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함으로 우리를 향해 좇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는 은혜의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9년도 주일설교
2008년12월28일
행 9:32-35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믿는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빛으로 임하신 주를 만나 회개가 있은 후 성령의 역사는 계속해서 베드로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을 찾아 위로하며 또 그 신앙을 격려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돌아 다니다가 "룻다"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에서 위대한 이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룻다"에 "애니아"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중풍병으로 인하여 팔년이나 고생하고 있는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허다한 재산을 허비하였을 것이요 또한 여러 방법도 써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효력을 얻지 못하여 소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을 때 베드로의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동정의 마음은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 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오늘 이 사건을 중심으로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를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먼저 생각해 볼것은 병을 고치는 것은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병자가 고침 받아 건강하게 되는 기적이 따르므로 제자들은 더욱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찾아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개인들에게 감동과 감화와 느낌으로 깨닫게 하시어 부르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존귀한 기적을 나타내는 데는 사람을 통해 신유의 은사로 역사하시는데 선지자, 사도, 목사 등을 통해서 일어나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육천년 역사 대부분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하셨습니다. 특히 이때의 기적은 사도 들에게 주님이 부탁하신 예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2.기적에, 영혼구원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구약성경 출애굽 당시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은 그 자체가 유명하기보다 장정 60만이라고 하는 많은 이스라엘인을 구원하였기 때문에 유명하며 가치가 큰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진도" 앞바다가 매년 한차례씩 봄이 되면 갈라지고 있습니다만 조개를 줍고 낙지를 캐는 관광객에게나 인기가 있을 뿐이지 아무런 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혼 구원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적은
1)그 주변 온 마을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룻다"와 "사론"에 거하는 모든 주민들 곧 "욥바"로부터 "가이사랴"에 이르는 연안 약 48km 정도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치유 받은 사람을 보았으며 그 기적이 사실임을 확신했습니다(행3:9).
2)이 일을 목격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 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선포하는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목격했던 증거는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임을 부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강한 신의 역사이기 때문에 거역하지 못하고 주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모든 기적의 결론은 영혼 구원입니다
3 . 네 자리를 정돈 하라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예수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믿고 일어나 네자리를 정돈하라" 했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창조 방법도 다르고 사는 방법도 다릅니다. 그리고 자리를 정돈 할 줄 아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사람은 자기주변이나 환경 그리고 자기 사는 곳을 정돈 할 줄 압니다. 도시를 정돈 하고, 시가지를 정돈하고, 도로를 정비합니다. 집안 살림을 정돈하고, 가재도구를 정돈 합니다. 실내장식을 꾸미고 숟가락식기를 정돈해 둡니다 옷장도 정리하고, 입던 옷도 정돈 할 줄 압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개, 돼지는 정돈이라는 행위가 없습니다. 먹는 곳, 싸는 곳, 자는 곳, 눕는 곳, 노는 곳의 구분이 없습니다. 밥그릇 정돈 하는법 없고, 잠자리를 정리 하고 청소하는 법 없습니다. 사람만 자기정돈이 있고 주변 정리가 있고 신변 정리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정리와 정돈이 철저한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와 죽음의 세계를 정돈하셨습니다. 내가 지은 죄를 정리해 주셨고 우리 모두의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 정돈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나 자신을 정돈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삐뚤어지고 잘못된 내 행동을 정돈해야 합니다. 제멋대로 내뱉는 말, 제멋대로 사는 내 행동, 불순종하며 사는 버릇, 원망불평 하며 사는 내 생활 습관, 못된 버릇 정리정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아시는 대로 미국의 도시마다 '홀리데이인' 호텔이 있습니다. 이 호텔의 창시자인 '와이레스 존슨' 이 늘 수첩 에 적어두고 평생 거울로 삼은 성경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는 딤후 2:1 5말씀 이라고 합니다. 그는 매일 그 구절을 읽고 '주님 오늘하루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생활로 나를 바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우리 자신의 자리를 정돈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애니야 에게 "네 자리를 정돈하라" 고하였습니다. 8년 동안 깔고 뭉개었던 애니아의 자리는 냄새 나고 곰팡이 슬고 썩은 자리 였을 것입니다 그 자리를 네 스스로 정리정돈 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가 뭉게 논 자리를 누구보고 정리하라 할 것입니까?
자기가 더럽힌 자리를 누구보고 정리 하라 할 것입니까? 내가 뭉게 논 자리, 내가 더럽힌 자리는 내가 정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애니야 에게 8년이나 누워 지냈던 냄새난 자리, 악취난 자리를 네스스로 정리하라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 를 정돈하라" Get up and take care of your mat(1) 5년, 10년, 20년, 30년 고집과 불신앙으로 쌓이고 쌓인 네 자리 를 믿음의 자리로 정돈하라.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생활 했다고 하면서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네 믿음을 다시한번 돌아보라. 그런 신앙 갖고 천국 갈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불신앙의 자리를 정돈하고 믿음의 자리로 옮겨 앉으라고 말씀 합니다 . (2)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죄악 된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사단의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 할 수 있겠는가? 네 그 자리 청산하지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고 있으면 너는 네 죄악으로 죽는다. 속히 네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나라라고 하나님은 오늘의 강단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3)룻다의 중풍병자가 바로 오늘의 우리 자신입니다. 중풍병자가 한쪽은 사용하고 다른 한쪽은 쓸 수 없는 자 인 것처럼 온전한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너,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지 못하는 네가 바로 중풍병자다 일어나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네가 일어나야한다 라고 하나님은 오늘 말씀 하십니다. 이시간 주의 음성 듣고 일어나십시다. 그리고 더럽고 추한 나의 자리를 정리 하십시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내 가정, 내 사업에 주님이 계실자리를 마련해 드립시다.
주님 모실 수 있는 자리로 정돈해 드립시다. 내가 정돈할 자리는 무엇입니까? 내 생활이 깨끗합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것 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네 자리를 정돈하라. 네 생활을 정리하라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자리가 되게 하라 말씀 하십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어 불순종의 삶을 청산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은 치우고, 추한 것은 버리고, 나쁜 것은 쓸어내는 대청소 하여 언제나 깨끗하고 정결 된 내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해야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새로워진 애니야 를 통하여 "룻다 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주께로 돌아오니라"
베드로 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여 행동함으로 기적을 체험한 애니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해를 마감하며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되는 마지막 송년주일에 우리는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함으로 결론을 삼아야 합니다.
첫째질문은, 나 때문에 른 사람이 예수님께로 오고 있는가, 아니면 떠나고 있는가?
둘째질문은, 나 때문에 예수님이 증거 되고 있는가, 아니면 가리워지고 있는가?
셋째질문은, 나 때문에 형제가 위로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를 받고 있는가?
네째질문은, 나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가, 아니면 부흥의 암적 구실을 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애니야 처럼 믿음의 행동과 순종을 통하여 내 자신이 새로워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어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 갑시다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주가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 붙들고 일어나, 역사의 한때를 만드는 위대한 믿음이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2월21일
마2:1-12 예배를 회복 합시다
 
이번 주 목요일이 성탄절 이지만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탄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오늘 예배를 회복 합시다 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세가지 의미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수많은 예언자들이 목숨을 걸고 예언한 예언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예언의 성취입니다
2.인간이 범죄 하는 순간부터 세상에 대하여 마귀가 지배권을 행사해 왔는데 예수님의 탄생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개입을 성취 하신 것입니다.
3.주전/기원 전 (B.C/Before Christ)의 역사 에서부터 주후. 기원 후 (A.D/ Anno Domini, in the year of our Lord) 의 역사로 바뀌는 새 역사의 현장 이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진행되는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역사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일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동안 온 세상이 기뻐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시던 그때의 역사적, 시대적 상황을 보면 당시 대 로마제국의 권위와 군대를 배경으로 한 독재자 헤롯 왕 밑에서 피지배자로서 고된 삶을 보내고 있던 유대인 들을 생각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결코 축제를 올릴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1. 당시 유대왕 헤롯은 예수의 탄생을 대단히 두려워했습니다.
헤롯 편에서 보면 자기의 정권을 장차 위험케 할 위인이 아닌가 경계를 하고 드디어는 아기예수를 죽여 버릴 계획을 가졌기 때문에 이 성탄 사건이 결코 축제적인 사건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이었지만 로마제국에 의해서 유대의 왕이 되어 로마의 법과 조직으로 유대인의 자유와 인권을 마구 짓밟고 있었습니다. 또한 헤롯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 만 을 신으로 모시는 이교적인 생각으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과 모세로부터 받은 신앙적인 전통을 짓밟고 있었으며 자기정권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의 아내도 죽였고 그의 자식까지도 무참하게 죽여 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자기정권에 반대를 표시하는 유대인들은 그 지위나 신분에 구애 없이 처단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경우에는 후한 벼슬을 주어 자기의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들 중에서도 바리새파사람들과 사두개파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하여 백성을 대변하는 일치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헤롯 자신 의 정권에 대한 종교인들의 비판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1:18절 이하에 나와 있듯이 헤롯이 아기예수를 죽일 계획을 하다가 그것이 실패하자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아기 들을 죽여 버린것도 자기의 정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으레 할 수 있는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롯에게 있어서 첫 성탄절은 결코 기쁨이 아니었고 두려운 것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탄생이 자기생활에 간섭이나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자기의 위치, 자기의 세력, 자기의 영향력에 어떤 침해가 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쁘고 즐거워야 할 성탄절이 혹 염려의 절기가 되지는 않는지요? 가족과 친지들에게 줄 선물, 가족 모임을 통한 파티 준비, 아니 어쩌면 이불황의 때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 혹 이런것들이 내게 염려의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기뻐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쁨과 행복은 만들어 가는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기쁨이 오고 만족이 옵니다
2. 무관심한 일반 대중
그들은 예수라는 아기가 탄생 했다고해서 그것이 기쁨과 축하의 사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고달픈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개인인격이 존대 받는때가 아니라 헤롯의 법과 군대아래 그 생명들은 천대를 받았고, 그들이 가진 소유는 약탈당했고, 그들의 소망도 멍이들어 있었습니다.
자유는 그림의 떡같은 것이었고, 자기의 인권과 사상을 소중히 여기는 민주적인 사고방식은 헤롯의 철통같은 법과 질서아래서 금지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가난하게 살아야했고, 침묵을 지켜야했고 천대를 받으며 헤롯의 법과 군대아래 공포 분위기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이사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반동분자의 낙인이 찍힐까 전전 긍긍하고 살아간 사람들이...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당시의 유대사람 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기예수가 지내던 유대나라의 시대상이요, 그 역사적인 현실 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현실 속에서 안주 하는데만 급급하였고,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였던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서기관들 역시 무관심 하였습. 그들은 성전예식과 율법 토론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예수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 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국땅의 박사들이 관심을 더 갖고 먼 길을 찾아왔음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작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러한 무관심은 오늘에 있어서도 여전히 팽배하여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탄절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해서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민을 위하여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신 놀라운 사실 을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하여 참 생명, 참 길, 참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축하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지키는 성탄절에는 정작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뻐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떠드는 흥에 장단을 맞추는 격 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연말에 한번 즐겁게 노는 축제 분위기속에 빠져 있을뿐 인 것입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에서 그리스도는 그저 들러리에 불과한 엑스트라일 뿐이며, 주인공은 산타클로스, 선물 봉투, 술 잔치 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의 몸이신 교회 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신랑되신 예수의 정결한 신부들인 우리들 입니다
3. 여기 동방 박사들은 예배를 드린 성탄의 주인공 들 이었습니다
헤롯정권아래, 유대인들이 맞이한 그 시대적인 상황아래 아기예수가 나셨다 는것은 하나의 장엄하고 엄숙한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아기예수를 통하여 헤롯의 철저한 정권욕이 잘못된 것임을 규탄하시고, 그의 정치가 하나님의 공정한 법과 정의에 얼마나 어긋나는 것인지를 밝혀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성탄절은 사실 인간이 즐기고 떠들기에 앞서 하나님의 권위와 그가 인간 역사를 간섭하심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떠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성탄절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계절임을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탄생지 방문은 이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헤롯을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냐"고 물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물론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의 왕을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 경제적 여유,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만족 할 것 같으나 무슨 불만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만일 심신의 만족을 가졌다면 정처 없는 위험한 먼길을 떠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일 가족과 직장을 버리고 왕을 찾아 먼 길 을 떠난다면 보는 사람마다 돌았다고 만류할 것입니다.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자녀가 목사가 되겠다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신학교를 간다면 과연 부모님들이 좋아만 할까요? (예화 /며칠 전 워싱턴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는 교수님을 만나서 대화하는 중 자녀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먼 길을 떠나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별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 못 보았습니까? 그들은 세상일에 끌려 땅만 내려다보며 하늘 일에는 무관심하게 살았기에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늘의 비전을 보지못하고 땅만 내려다보고 속세의 걸음을 걷는 한 참으로 만족한 삶은 살 수 없습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아기를 찾자 그에게 경배 했습니다 그들이 별을 따라 정처 없는 길을 떠났으나 결국 왕을 찾은 것입니다. 그 이름을"임마누엘"이라하라. 즉,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하신다"는뜻이다. 이것이 성탄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염려하시고 우리와 같이하십니다.
세월이가도 그 진리는 변함이 없이 예수는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오사 우리의 사정을 돌봐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거하심을 그가 증거 하십니다. 동방 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 을 그리스도의 발 앞에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가장 값진 선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별을 바라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가서 예배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가장 귀한 예물을 아기예수께 드렸습니다. 예배..,이것이 성탄절의 참 정신입니다. 예배는 자기개인의 일상생활의 일을 중단하고, 예수님을 그 모든 개인사무, 가정, 또는 공적인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예배태도는 너무도 우리 개인의 사정과 기분여하 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예배에 빠지고 섭섭하다고 예배 빠지고. 삐져서 예배 빠지고.. 예배를 등한히 하는 기독교인의신앙은 돈독해 질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항상 기도도 없고, 성경도 안 읽고, 전도도 못하는 형식적인 기독교인으로 무력해 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만은 무슨일이 있어도 빠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예배를 중심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발전 할 수 밖에 없고, 기도 하지 않을 수 없고, 성경 말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속에 있는 신앙의 간증을 다른 사람 앞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탄절의 정신은 바로 이 예배 정신에서 찾아야합니다. 아무리 천만 사람을 감동 시킬 만큼 축하의 노래를 잘 불러도 만일 예배정신이 결여되어 있으면 성탄절의 정신에 위배 됩니다. 호화찬란하게 차린 백화점의 크리스마스치장은 예배와는 멉니다 그것은 다만 상업적인 관심의 표시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성탄절을 아기예수를 살해하려던 헤롯의 성탄절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탄절 때 사람들은 분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얼마만큼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탄절은 예배를 회복하는 절기 입니다. 이 성탄을 주신분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이시요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이 복된 성탄절기에 참 예배 정신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2월14일
눅1:26-38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
여러분은 예기치 않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종류의 긴장감을 느끼십니까?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는데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습니다.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 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 임신했을 때가 40, 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입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 입니다만 Merry Christmas 와 Happy Holiday 논란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낮은 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의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것입니다. 감사한것은 지난주 여전도회에서 사랑의 선물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하기 위해 선교비를 주셨는데 마침 월요일 교단의 고아기관인 헵시바 재단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았는데 이 기관에 보내려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교회 절기로 대강 절 셋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Advent)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adventus'에서 유래된 말로 대림절 강림절이라고도 하는데 성탄절에서 거슬러 올라가 네 번째 주일부터 그러니까 금년은 11월 마지막 주일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계속되는데 이 절기는 ‘그리스도가 오셨고 오시고 있고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대강 절을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성탄절의 실제적인 의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요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 위에 오신 놀라운 사건을 진정으로 기쁨과 경외감 가운데 체험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강 절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깨달음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1. 대강절을 통하여 나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음을 더 깊이 깨닫는 시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정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마음이 부풀은 가운데 새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보내고 있었을것입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소식을 전하는데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인사했습니다(28절) 과연 이것이 합당한 인사였을까요? 약혼한 여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소식이 과연 은혜였으며, 평안한 소식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때에 항상 풍요롭고 따뜻하며 충만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전한 소식대로 마리아에게 아기가 생길 때에 결과적으로 일어날 일은 간음죄의 누명을 쓰는 일이요. 그렇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로부터 수치와 경멸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운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을뿐 어디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정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짐으로 확증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과정에서 처녀가 잉태한 것과 같은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비한 탄생이 이루어졌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계획하심 가운데 이끌림을 받는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남을 알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힘들어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가운데 내 삶에 일어날 일들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장기적인 인도하심에 이끌리고 있음을 안다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은혜'가 아닌 일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 할 수 있느냐는 마리아의 의문에 천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이 아들이라 일컬으리라"(35절) 여러분 모두가 대강 절을 보내면서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이와같은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하나님께서는 주님 오시는 대강절에 우리가 겸손함으로 당신을 맞을 준비를 하기 원하십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한 가난하고 이름 없는 여인을 찾아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이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한 작은 일부터 시작하셨는데 바로 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를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겸손하게 우리를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작고 보잘것 없는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도 가리지않고 찾아오십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맞이하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은 겸손하게 누추한 우리를 찾아오셨지만 우리는 그 분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살아갑니까? 마리아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겸손함으로 자신을 열어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를 경험할수 있는 비결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겸손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4:6“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자발적인 겸손은 자기 비하도 아니고 실망도 아니며 약점의 노출도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허식이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진정한 겸손 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의 실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때때로 인간의 선택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 적인 조건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목격하고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을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28∼29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리아의 겸손함의 다른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자기 부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잉태할 것이라는 뜻밖의 선포에 그는 대들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며 자기를 부인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마리아가 만일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거부하고 반항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구상의 그 누구를 통해서도 그 일을 이루실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겸손과 자기부인 이것은 하나님의 강림의 모습이자 의미이고 또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줄로 압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의 신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3. 이 대강절에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마음에 평강으로 화답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임했기에 마리아가 그 모든 일의 결과를 담대히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행동할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성경 적인 표적은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이미 가브리엘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 안에는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응답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내용이라 함은 천사의 말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이라 함은 평안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은혜를 받게 될 때 평안은 그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받는 우리가 얼마나 믿음으로 그 말씀에 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합할 수 있는 근거가 37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셔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모든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가실것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주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믿으며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 가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이 소식이 항상 그리고 특별히 이 대강절 기간에 우리 마음가운데 울려퍼져서 언제나 평안속에 굳게 서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2월 7일
행 9:1-18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오늘 말씀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빛으로 임하신 예수를 만나 변화되어지는 기적 사건입니다 다메섹지방의 크리스찬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대제사장들에 공문을 청하여 가지고 다메섹에 가까이 가던 사울에게 하늘의 빛이 저에게 비치면서 예수님이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죽어서 부활하지 못한 줄 알고 교회를 핍박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며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시고 저를 부르시니 어찌 회개를 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이제는 더 반역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빛으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지니 사울은 두손 들어 항복하고 말았으며 더 버티지 못하고 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주님이 한 사람을 찾으시는 장면을 보여 주신 기사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각자의 입장이 다르겠지만 바울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이 강권적인 역사를 하시어 저를 굴복케 하시고 헤어날 수 없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께서 멸망받을 수 밖에 없던자들을 구원키 위해서 찾으시는데 어떤자는 병석에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어떤 자들은 사업에 실패한 자리에서 부르시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불의의 불행 가운데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또한 어떤 자들은 참 진리를 가리켜 줌으로써 부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여러 형태로 부르시는 중에 여기 바울의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1)하늘의 광명한 빛이 저를 두루 비치어 땅에 엎드려 지게 하셨고
2)주님이 친히 음성을 내시여 그를 부르시었고
3)소경이 되게 하시사 자신이 확신을 얻게 하셨고
4)주님의 지시를 받은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 받음으로써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하시고 남다른 강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체험케 하시어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 구원받아 주를 섬기든지 주님의 사랑에 의한 부르심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바울과 같이 충성스럽게 주를 섬기어야 할 것입니다.
2. 포악한 핍박자도 회개할 수 있으며 어둔 인생들을 깨우치시려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사도바울이 변하기 직전을 보면 그는 스데반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로서 다메섹에 올 때에 살기가 등등해서 기독교를 말살 시키라는 대제사장 공문까지 받아 가지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빛을 비출때 그의 완악한 인간성은 산산히 깨어지고 대 핍박쟁이가 대사도의 복음 전하는 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볼때에
(1) 아무리 세상에 완고한 자가 있다해도 깨어질 날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2)우리들의 식구중 아무리 권고해도 고집 불통의 인간이 있다해도 그도 예수앞에 변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계속 낙심 말고 전도하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안 문제자)
(3)생각할 것은 우리 주위에 아무리 악독하고 우리를 핍박 한다 해도 사울 같은 완악한 자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기도하며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상자가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까지 가서 믿는자는 남여를 불문하고 결박하여 체포해 오리라고 달려가는도중 홀연히 하늘로써 빛을 받았습니다 그 밝은 빛을 견디지 못해 땅에 엎드러진 사울에게 들리는 소리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 음성에 사울은 크게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고 다음의 사실들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1)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은 죽지 않고 살아계심을 깨달았고
2)예수님은 지금 영광중에 계시며 신자를 핍박함이 곧 예수님 자신을 핍박하는 것인 줄을 깨달았고
3) 죄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고
4) 핍박하는 죄인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심을 깨달았고
5) 자기가 주장하는 율법이 예수님 앞에서는 의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3. 소경된 사울이 다시 보게 된 것은 예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개탄하기를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한다고"했습니다. 사울은 살기 등등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을 잡아 죽이기 위해 모든 힘을 썼습니다 스데반을 잡아 죽일때 앞장서서 돌로 먼저 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눈에서 꺼풀이 벗겨지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가 있었고 예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같이 예수를 알아 본 후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한 죽는다“ 했고 (롬14:7-9)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해도 하나님에 영광을 위해 하게 되었다고 했으며"고전10:31 "복음을 전하다가 죽기로 각오를 하면서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면서"(행20:24) 주의 일을 했습니다. 이같은 사상으로 의를 위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길을 다 달려가기 까지 주의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변화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소경이 되었던 것 처럼 현대의 신자 중에도 소경들이 있습니다 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이 바울은 육의 눈은 있어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한 것은 잘 보아 식별하였고 지식에 눈도 있어서제사장들이 예수의 활동은 다 허위라고 비난하는 공문도 볼 수 있었지만 영안이 어두어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어 참 진리를 보지 못하고 예수를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어 보아야 할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종교인의 행세를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종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데나 숭배하고 복을 달라고 비는 자들이 무수합니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예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고 미래 세계를 알지 못하여 신앙의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으며 볼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할 것만 보아 그것을 따르다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는 자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영안이 밝아 예수를 바라보고 따르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4. 전도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한 기적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자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를 소개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변화의 한 모습이지만 주님은 과거에 어떠한 생활을 하였든지 변화를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뜻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수가 있는데 (마4:19)에 고기를 잡던 자 베드로를 불러서 이제는 고기는 그만 잡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고 (마9:9)에는 세관에서 일을 하던 마태를 불러서 전도를 하게 하시려고 제자를 삼으시고 다섯 남편과 산다고 해서 사람들로부터 인간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사마리아 성을 전도하게 하시였던 것입니다 (요4:28-29).
내가 예수 믿은 것이 신기합니까? 전도하세요 전도하기 위해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같이 전도하기를 요구하시는 뜻은 전도란 무거운 짐을 벗겨 주는 격이 되는 때문이요(마11:28)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 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마12:11). 이같이 핍박하고 포학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5. 자아가 깨어지라는 것입니다.
오만 무도하고 매사에 자신 만만한 인간의 실상은 알고 보면 추함과 부족함과 일그러짐과 어리석음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말로는 사망 이외에 아무것도 오지 아니합니다. (잠14:1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참 자아를 발견한다함은 곧 죄악 된 인간 자아를 깨고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요 이 삶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삶입니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사울은 율법에 관하여 정통한 자였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무고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면서 자신의 악행을 개닫지 못한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향하던 그는 주님의 빛과 음성을 듣고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교만과 악함이 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잘 알아도 ,... 성경을 잘 알아도 .... 성령으로 깨지지 않으면 그의 삶은 무의미 합니다 )
지난 날 행했던 모든 일이 엄청난 죄악이었음을 깨달은 사울은 눈물로써 삼일을 보냈습니다. 이 참회의 삼일은 그의 자아가 깨어지는 순간이요 새롭게 태어나는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 삼야를 지내는 동안 뉘우치고 깨어졌던 순간이 (욘1:17) 우리 모두에게도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설교 준비하며 은혜 받고 제목 잡음 11절 “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 사울이 눈 머니까.. 활동이 정지되니까.. 아무것도 할수 없으니까.. 여러분 뭔가 안될때는 기도하는 시간 임을 깨달으라 12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기도하면 보인다 아멘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으며 또한 저는 예수를 영접한 후로 다시 변해 세상으로 빠진 일 없이 순교하기 까지 주만 섬기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은혜 충만히 받기도 하고 이에 열심을 내다가 타락하여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순교를 각오하고 주를 섬길지언정 타락하여 주를 멀리 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30일
행 8:1-8 핍박 과 큰 기쁨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제한 없이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들로 인하여 각종 기사와 이적이 일어났으며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직접 목회하던 교회였슴에도 불구하고 핍박 앞에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교회에 어떤 잘못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다른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신뢰하면서 따라 주어야 합니다 지금 이해가 안되고 고통이 심할지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만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나자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습니다. 사도들은 핍박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며 교회를 지켰고 나머지는 핍박을 피해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도의 직분을 아무에게나 그냥 주신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때 그들의 모습은 형편없었지만 그러나 미래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교회를 지키리라는 확신을 가지셨기에 택하셨을 것입니다.
엄청나게 핍박이 와도 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을지언정 교회를 포기할수 없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나에게 맡겨 주신 교회를 지키겠다 이런 자세를 가진 교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직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죽기까지 충성하십시오. 죽더라도 사명 감당하십시오. 일하는게 너무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을지라도 직분 감당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어려움이 오고 위기가 있는것 같으면 즉시 떠납니다. 성전을 건축하자는 말만 나와도 떠나 버립니다. 목사와 부딪혀도 떠나고, 교인들과 부딪혀도 떠납니다. 떠나면 머리 아프지 않고, 희생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떠나기를 좋아한다면 언제 뿌리를 내릴 것입니까? 뿌리를 내려야 큰 재목이 되어 쓰임을 받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름다운교회에 보내주셨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떠나고 손해 보기 싫어서 떠나고 무거운 짐 지는 게 싫어서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 자세로 어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통해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확장되도록 하셨습니다. 남 유다와 북 사마리아는 오랜 세월 동안 적대관계에 있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도 적대관계는 대단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방법으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는 절대로 실패가 없습니다. 실패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패는 없습니다.
실패의 위기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진짜 실패는 없습니다. 어렵고 큰 문제가 있습니까? 목사와 성도 간에, 성도와 성도 간에 부딪힘이 있다고 염려가 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성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위기 뒤에 기회를 주십니다 가장 큰 어려움 뒤에 큰 축복을 주십니다.  스데반은 7집사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핍박받아 죽었으니 예루살렘 교회의 충격이 어떠했겠습니까? 교인들이 다 흩어져 버린것도 스데반 사건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사도들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패요 끝입니까?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공입니다.
내 교회 건물 크게 짓고, 내 교회에 사람 많이 모이고, 내 교회 재정이 든든하고, 내 교회가 체계적으로 훈련 잘 시키고 그것이 목회의 성공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공은 복음의 확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가장 큰 관심은 영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내 교회가 희생하고 내가 희생해서 복음이 확장된다면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희생해서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음의 길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을 아멘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를 향한 계획이 사단의 계획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물론 사단은 핍박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의 계획까지도 다 이용을 하시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셨습니까?
스데반을 보호하시고 교회의 흩어짐을 막을 수 있을 터인데 왜 막지 않으셨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복음 확장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는 것과 성령을 받은 다음엔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 자신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세례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온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확장시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확장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통해 흩으셨고 흩어진 그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복음의 확장을 가져 왔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강력한 명령은 땅 끝 모든 민족에게 전도하여 영혼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 우리 교회를 보실 때 가장 관심 있게 보시는 것은 복음 전파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건축 했고 얼마나 헌금 많이 들어오는 가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모든 재물을 다 바친다 해도 한 영혼의 값어치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교회만 , 내 유익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정신은 희생정신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나를 살리신 것처럼 나도 이웃 위해 죽어야 하고 내 교회도 다른교회 위해 복음 전파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을 느끼면 그 곳에 안주하기가 쉽습니다. 성전 건축 아름답게 이루었고, 재정 부족 없고, 좋은 시설 속에서 좋은 프로그램 도입하여 교인들에게 유익을 주고 너무너무 좋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흩으셨습니다 최초의 교회입니다 베드로가 목회 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엄청난 핍박을 내리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가 교회가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전도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전도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선교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 양면에 힘을 쓸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교회가 무지무지하게 좋은 상태입니까? 그렇다면 좋은 모든 힘을 모아서 선교에 폭발시켜야 합니다 교회가 어렵고 힘듭니까? 그럴 때 일수록 선교에 더욱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전도에 힘을 모은다면 어떤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얼마나 사모하고 계시겠습니까? 우리 앞에 넓게 펼쳐진 들판을 보시기 바랍니다 추수 할 곡식이 썩어가고 있음에도 일꾼이 없어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우리를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라’고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5절 이하를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빌립도 스데반처럼 7집사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성으로 흩어진 빌립이 예수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더러운 귀신이 떠나고 수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으며 많은 남녀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마술을 통해서 큰 능력을 행하는 마술사 시몬도 세례를 받고 빌립의 뒤를 따랐습니다.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 복음이 전파되는 곳엔 능력이 나타납니다 귀신이 물러가고 질병이 치료됩니다. 예수님의 능력 앞에 이루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은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시간입니다 능력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소리치고 물러가고 각종 질병이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남을 믿습니다 믿으십시오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누구의 말씀인가요? 주님의 말씀입니다 빌립을 통해 역사 하셨다면 우리를 통해서도 역사 하십니다.
사마리아성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면 실버스프링에서도 나타납니다 2000년 전에 나타났다면 2000년 후인 지금도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8절에 보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쫓겨가고 병자가 치료 받으면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파되는곳엔 이처럼 큰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기쁨이요 하나님에게도 기쁨입니다 사람이 가장 기뻐하는 일, 천국에서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일이 복음 전파요 영혼구원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대 핍박이 일어날 때 교회의 끝인 줄 알았습니다 사단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확장으로, 복음의 승리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지금 핍박이 있습니까? 힘든 문제가 있어 걱정입니까? 지난 주간 직장에서 해고 당한분도 여기 계십니다 그러나 격정 하지 마십시요 예수그리스도는 늘 승리만 주십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겐 패배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이제는 나가도록 합시다 십자가의 군병답게 뛰쳐나가 천국을 놀라웁게 확장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23일
시136:1-3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의학용어에 '플라시보(Plasebo)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플라시보란 "기쁘게 해 준다"는 뜻으로 의사나 약사가 병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치료효과가 수십 배, 수백 배로 나타난다는 말인데 원래는 "가짜 약이 진짜 약과 같은 효력을 발휘 한다"는 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약사 에멜 쿠에가 약국의 문을 닫고 잠을 청하려던 어느날밤, '시간이 너무 늦어 병원에 갈 수 없고 너무 아프니 약 좀 지어 달라'며 환자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의사 처방전이 없어 병명을 모르는 약사가 망설이자 환자는 막무가내로 부탁하므로 할 수 없이 인체에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포도당 알약을 조제해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괜찮아 질 겁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보라"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며칠후 길에서 만난 환자가 "선생님 그 약이 무엇인지 참 신통합니다. 알약을 먹고 깨끗하게 나아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어요"하며 뜻밖에 말을 들려주었다. 쿠에는 환자에게 준 약은 가짜였고 그에게 한 말도 뻔한 거짓말의 위로였는데...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실제 효능이 없더라도 이 약만 먹으면 완쾌한다고 믿음을 주면 신기하게 환자의 병이 낫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관절염, 심장병, 심지어 폐결핵 말기 환자와 암환자에게까지 거짓말이지만 '기쁘게 해주는 플라시보'를 투약해보았는데 그를 찾아온 환자들에게서 놀라운 효과를 보게 됐다. '
플라시보 효과'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된것입니다. 쿠에가 일반인들을 위해 처방한 '플라시보'가 있는데 "나는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다"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everyday.) 이것을
하루 열 번씩 반복해 외우면 긍정의 힘이 뜨거운 온천수처럼 솟아나 삶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 보세요 )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는 지금 좋아지고 있다"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의 시에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오늘 지상의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촉구합니다. 감사는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며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향한 명령이며 성도들의 의무이다. 그리고 감사의 결과는 플라시보 효과 정도가 아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리는 감사와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예물은 물론 억지로라도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마음과 육신, 가정과 자녀교육, 사업과 일상생활 그리고 영적 삶에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렇다. 우리의 감사는 하늘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이다. 한 나라의 군주에게, 오대양 육대주의 한 지역 통치자에게, 또는 지구 유성을 다스리는 신이나 태양계를 다스리는 제한된 신이 아니다. 저 광활한 우주공간, 수조 억 개의 별들 그 모든 별들의 세계 넘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계신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이다. 오늘 안계수목사가 드리는 감사, 지금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 정성을 다하는 기도와 찬양, 자신의 생명과 함께 바치는 헌금과 헌신 그리고 우리의 자자손손이 드리는 감사는 바로 그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1. 감사의 방법
그러면 우리는 '나를 기억해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표시할까? 사람이 사람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병을 고쳐준 사람에게, 고통과 좌절 중에서 건져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은 은혜 받은 날을 기념하여 전화로, 선물로, 꽃다발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은혜 베푼 사람의 자손들을 돌보아 주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또 다른 사람에게 베프는 등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감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도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렇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하늘의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와 사랑, 축복과 은택은 오직 그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모든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2) 예물과 헌금으로 감사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감사할 때,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히스기야 왕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고 백성들에게도 감사제물을 가져와 드릴 것을 가르쳤으며(대하 29:31)
예레미야도 감사의 예물을 드릴 것을 가르쳤으며(렘17:26)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해 드리는 구제를 위한 감사헌금을 성도들이 당연히 해야 할 봉사의 직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후 9:11-12)은혜를 끼쳐준 사람에게 감사의 선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듯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예물과 헌금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기도문교회예화 365/4명 )
3) 예배를 드림으로 감사하라
다윗은 시35: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한다"고 했는데 대회 중에서(In the great congregation)란 "교회 가운데서", "예배 중에서"란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외적 증거이다. 예배를 많이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드리는 성도요 예배를 피하는 사람은 감사하기를 피하는 사람이다. 예배를 드리되 마음으로 다하고 정성을 다해 드려라. (선물을 들고 은혜를 보답하러 찾아간 사람 앞에서 조는 사람, 먼 곳 쳐다보는 사람, 몸가짐이 흐트러지는 사람 있는가?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4) 찬양함으로 감사하라
다윗은 시69:30 그 자신이 찬양함으로 열방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고 시 30:4 성도들에게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으며 대상16장에 보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세 사람의 찬양지휘자 밑에 찬양대장 288명과 4000명의 찬양대를 세워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였으며 느헤미야도 찬양대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했고 (느 12:21)  바울도 성도들의 찬양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엡 5:19-20) 시와 찬미와
우리들의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기쁨의 표현입니다 즐겁게 찬양하자.
5) 기도로 감사하라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 중에서 '해달라'는 요청의 기도와 '고맙다'는 감사의 기도, 어느 기도가 더 많은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맛다냐와 박부갸를 세워 감사하는 말씀을 전담하도록 대표기도하게 했고(느 11:17)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큰 시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단 6:10)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감사기도로 기적을 만드는 성도되기를 축원합니다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듯 요청기도와 감사기도가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기도의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6) 공의와 인자와 겸손의 삶으로 감사하라 (미가6:6-8)
미가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공의를 행하며(To do justice) 이것은 자신이 의롭게 바르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자를 사랑하며(To love mercy: 이웃에게 자비함과 친절함을 보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To walk humbly with your God 겸손하게 하나님 과 더불어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공의와 인자와 겸손의 마음이 있어야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헛수고라는 말이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의 삶은 공의와 인자와 겸손이 행동과 말에서 자연스럽게 열매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3. 감사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적극적으로 명령한 것은 감사 그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감사, 입술의 감사, 행동의 감사는 플라시보 효과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축복을 가져온다. 암이나 에이즈를 앓는 중환자 30명을 15명씩 반으로 나눠 1년 동안을 약을 주면서 15명 한 팀에게는 "감사합니다."를 열 번 이상 하고 먹게 했고 다른 팀에겐 그냥 약을 먹게 했는데 일 년 후 그들의 병의 상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감사합니다"를 말했던 사람들은 거의 완치가 됐던지 많은 치료가 있었고 그냥 약을 먹은 사람은 현상유지 또는 더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는 노시보(Nocebo) 효과이다. 노시보란 "해를 끼치다"란 뜻인데 아무리 적절한 처방을 통해 좋은 약을 제조해 주어도 본인이 믿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개념입니다 섹스피어는 "겨울바람과 눈보라가 아무리 거세고 살을에어도 감사하지 않는 마음보다는 모질지 않다"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보다는 노시보 효과만 나타날 것입니다. 하늘에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 감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1)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신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인생 중에서 최고로 자기 행위를 옳게 하는 자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며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후대해주심 (시 142: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로다"
"하나님이 후대해주심"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심, 하나님이 풍성케 해주심)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로다"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고, 유익한 사람과 내게 도움을 줄 복 받은 사람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는 축복을 주십니다. * 보장과 보증의 축복
3)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주신다 (단2장, 6:10)
다니엘은 살해 위협 때와 사자굴에 던져 넣음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죽음의 위기들이 축복의 기회들이 되게 했습니다 위기의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하십시요 어려움의 때일수록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고 고통스런 때일수록 예배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아플수록 목소리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괴롭고 힘들수록 요청기도와 감사기도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뱃속에서 배고픔의 소리가 들리고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공의와 인자와 겸손으로 살아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평강의 마음을 얻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감사와 감사기도, 감사 찬송, 감사예물, 성공적 예배는 지금 내가 자각하고 있는 불안한 현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절망적 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을 채우게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태산처럼 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며 평안의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5) 영적으로 깨어있게 함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어떤 시험에라도 빠져들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는 성도가 됩니다 (살전 5:18)
딤후2:26 깨어 있는 사람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축복의 사람이 되며 깨어 있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며 (고전15:34) 죄를 다스리는 권세 있는 성도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깨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에 죽지 않고 산 채로 들림 받아 공중으로 휴거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감사 하는 성도가 받을 축복은 영적인 축복에서 물질적 육체적 축복까지, 지상의 축복에서 하늘의 축복까지...그 수와 양을 계수할 수 없는 전천후 축복입니다 아무쪼록 2008년 추수감사절에 감사하는 성도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자료를 제공해 주신 김엘리야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16일
눅17:11-19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마음자세
마귀의 마진은 얼마일까요? 보통 사업은 20-30 % 마진을 보지만 마귀는 단 1%라도 이익이 되면 곧 성공이라 합니다.  개인의 심령을 파괴하고 가정의 화목을 무너뜨리며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는 사단의 장난에 넘어지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주일은 일년 중 가장 축복되고 즐겁고 고마워야 할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런데 감사절이 오는 때가 겨울 준비에 우리들의 고민이 하나 더 늘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때론 감사와 감격이 없이 맞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부담스러운 연례행사가 되어 버리지는 않는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더더욱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의 불안이 가중되어 모두가 힘들어 하는 가운데 맞게되는 금년 감사절을 과연 어떻게 지키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와 그 은혜를 감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는 하나님을 알고 기념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고백하는 감사입니다. 오늘 이시간 추수감사절의 정신 과 감사하는 생활의 비결을 성경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살펴보며 진정한 절기 성경적 절기 복된 절기를 지키고자 합니다.
1. 추수감사란 구원의 은혜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추수감사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신26:1-4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토지 소산의 맏물을 거두어들인 후 처음 익은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여호와의 성소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렇게 아뢰라" 가르쳤습니다. 다같이 스크린을 보며 함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신26:5-9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킴으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이 고백적인 감사의 주 내용은 조상이 겪은 역경과 여호와께 부르짖음, 그리고 구원과 가나안 땅으로 정착하도록 인도하심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얻은 열매로 추수감사절을 노래하면서도 추수에 대한 설명을 하지않고 여호와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추수감사는 추수한 기쁨에 도취되어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구원 역사를 기념하고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는 감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 추수시기를 따라 지킨 추수감사절의 이름은 추수와 관계가 없는 장막절, 혹은 초막절로 불려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신 행사를 기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또는 The fest of booths)은 초막절이라고도 부르며 히브리어로는 '쑤콧'이라고 부른다. '쑤콧'은 우리말로 초막 혹은 장막을 뜻한다. 장막절은 유월절,칠칠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삼대 절기 중의 하나로서 고대에는 이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었다. 따라서 장막절은 "여호와의 절기"(레 23:39; 사 21:19) 또는 단순히 "절기"(왕상 8:2,65,12:32; 겔 45:25; 느8:14; 대하 5:3,7:8)라고 불리웠다.절기중의 절기였기 때문이다.
가을 축제인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간 지속된다. 양력으로 티슈리월은 보통 9월달이다. 첫날은 일이 금지된 완전한 휴일인 '욤 토브'로 지킨다.
장막절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출애굽 이후의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역사적 요소요,둘째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추수하는 수장절(The Fest of Ingathering;출23:16b,34:22b)을 지키는 농경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은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터키를 구워먹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추수 감사 축제를 즐기고 기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수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전체의 표현이었습니다.  매년 11월4째 목요일을 정한 최근의 미국 감사절은 1621년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상륙하여 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어 처음 익은 열매들을 제단에 놓고 눈물의 감사를 드린 것이 그 효시가 된 것입니다.
2. 청교도들의 감사는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마음의 감사였습니다
 추운 초겨울 12월에 메사추세츠 플리머스 항구에 102명이 상륙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과 병으로 인하여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어 버리고, 그 이듬해 봄에 원주민 추장에게 감자와 옥수수 종자를 얻어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이 가장 필요한 때에 3개월 동안 가뭄이 들어 수확할 수 없는 폐농 직전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으로 성별한 기도의 날을 정하고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사 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던 기적이 그들에게서도 나타나서 가물었던 땅에 10일간 비가 내려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생명적인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는 본래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형식적이고도 관료적인 신앙에 항거하여 보다 더 생명적이고 내면적인 경건한 신앙생활을 살기 위한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12년 동안 본국에서 박해에 견디다 못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불리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생명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며 대서양을 건넜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 제일주의가 그들의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1621년 11월 11일에 체결된 메이플라워 계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할지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항해를 계속하였노라] 고 선언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든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신대륙에 와서 죽음과 투쟁하며 결실을 얻었으므로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들보다는 슬퍼해야 할 일이 많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신앙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추수감사절은 진정 기쁘고 감사하여 지키는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절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예물은 우리 신앙의 내면적인 은혜를 물질로써 바치는 것이기에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바쳐야 하며 과부의 엽전 두 개와 같은 헌금이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절기는 반드시 택한 제단에서 각 개인이 정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더 나가서는 오늘 본문에 주님을 만나 함께 깨끗해진 열 명의 나환자 중 한 명처럼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것을 본받아 우리도 진정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와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몸만 아니라 물질만 아니라 마음이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우리의 마음이 , 어둠에 잡혀있었던 우리의 생각이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면 삽니다 돌아오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음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음이 곧 타락이요, 병입니다. 감사는 창조를 낳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일 먼저 교회당 건축하고, 다음에 학교 건축하고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특별히 일년에 한번씩 한 주일을 정해 감사 예배를 드리는 오늘의 우리들은 우리 교회에 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내 개인과 가정에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시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평소의 생활이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문안 후에 감사하라는 권면이 수없이 나옵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뤼라], [범사에 감사하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 생활 자체가 감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감격으로 사무쳤고 그의 하루 생활은, 아니 일생의 생활은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러한 감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모든것이 다 평안하고 환경이 좋으면 누가 감사하지 않겠는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 하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로 인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3. 감사는, 가난했던 지난날을 기억하며 감사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바울의 일생을 간단히 기록한 말씀이 나옵니다. 수없이 매를 맞고 몇 번이나 감옥에 갔고 여러번 파선을 당하고, 에베소, 고린도,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핍박과 환난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언뜻 생각할 때 몸이 건강하거나 가정이 화평하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업이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면 감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몸의 건강이나 가정의 평안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독신생활을 하였으며 쉴 만한 집도 없이 살아온 사람입니다. 바울사도는 일생토록 나그네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사는 삶속에서 평안이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감사하는 생각과 생활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그 깊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을 심령속 깊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사탄에게서 해방을 받은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같이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는 신앙이 있으면 우리도 순경이나 역경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언제든지 감사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닌 줄 압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되니 자연히 그의 생활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선 마음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6:22). 바울이 가는 곳마다 죽은 생명을 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를 위해서 무슨 열매든지 맺는 사람일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주를 위하여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면 열매 맺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더 많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우리 매일 매일의 생활과 일생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과 역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같이 우리도 과거 가난하던 때를 기억하며 이처럼 풍요로운 미국땅에 살면서 가진 것이 많은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에 더욱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 9일
행5:17-32 옥 문이 열린 기적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며 각종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자 이를 시기한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감옥에 잡아넣었는데 주의 사자가 (Angel of the Lord" 천사로 이해 /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으로 구원 얻을 후사들을 돕는 직책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석방을 시키신 기적입니다. 주의 사자(천사로이해)는 석방된 사도들에게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보면 파수병도 그대로 있었고 옥문도 그대로 채워져 있었으나 사도들은 천사의 인도로 저절로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같이 능력을 행하신 것은 생명의 말씀 즉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영생의 도, 이 복된 소식을 증거하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으며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잠시라도 쉴 수 없고 멈출 수 없다는 뜻에서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의 원하는 뜻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사람이 막을 수 없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서 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전도하는 자에게 선교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아멘) 전도를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하나님이 원하는 뜻은 생명의 말씀이 계속해서 전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제는 전도에 좀 더 정성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지역에는 한인이 없다든지 , 전도할만한 한인 마켓이 없다든지 하는 핑계가 있을수 없습니얼마나 많은 한인 마켓들이 있습니까? 예전 캠프스프링스의 5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각 단체별로 특별전도 계획을 세워서 본격적으로 전도에 나셔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매월 1주를 정하고 각 단체별로 돌아가면서 특별전도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그저전도지) 주시는 교훈은?
1.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잠시라도 쉴 수 없으며 사도들 앞에는 가로막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업은 중단도 하고 폐업도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이나 폐업이 없는 것입니다. (요5:17)에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에는 멈출 수 없다는 뜻에서 기적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사도들이 감옥에 있으면 복음이 증거 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감옥의 문을 저절로 열리게 하시고 석방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사람이 막을 수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감옥이 저들을 수감치 못하였고 핍박이나 박해가 저들의 활동을 가로 막지 못했습니다.  또한 주의 일을 하는데 아무것도 제제하지를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 기사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에는 형통만 있지 불행이나 역 수난은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기사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든 간에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자기만 살기 위한 방법을 쓰기때문에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버는것도 주님의 뜻대로 살기위해서이고 정직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았지만..... 돈을 못 벌어 못 살아도 주님의 뜻인 줄로 알면.... 마음도 편하고 또한 그와 같은 생각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형통케 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 같이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요셉의 형통이 노예로 팔려 갔을때,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 갔을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릴줄 아는것이 축복입니다.  따라합시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형통입니다"
2. 사도들은 자신들의 의무와 직책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졌다는 교훈입니다.
사도들의 의무와 직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옥에 감금되었으니 이들은 사명을 감당해야 함으로 옥문이 절로 열리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 할 것은 이 제자들과 같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소임을 다 할 때에 이같은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물질을 드려 봉사하면 반드시 물질에 대한 보상이 있습니다
2) 몸을 드려 봉사하면 반드시 건강케 되는 보상이 있습니다
3) 마음을 드려 봉사하면 평안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들이 기적을 원하지만 그 기적이 이루어지는 배후의 사건을 알지 못하고 원하기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철저하게 영적 원리에 따라 일어납니다.  믿음의 원리, 순종의 원리, 헌신의 원리, 심은대로 거두는 원리입니다.
3. 사도들의 신앙을 통한 우리 신앙을 점검해 봅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위협은 물론 투옥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말씀 전파하는 일에 골몰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협박과 위협으로 죽인다고 해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감옥에 가서도 기도와 찬송하는 일에 전념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심한 고문과 매도 맞고 춥고 배고픈 일이 있었으나 육신에 대한 어떠한 고통과 염려와 두려움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아니했습니다. 육체야 어떻게 되던 신령한 구령 운동에 전념을 다하는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감옥에서) 옥문이 열림 그 순교적 자세의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정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나를 피곤하게 했던 "무너진 인격과 싸우지 말고 더 큰 하나님의 역사와 싸우라"
4. 사도들은 원칙에 충실하며 사명감에 불타고 있던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이 제자들의 삶의 원칙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며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순종하며 살려고 힘쓰는 자들이었습니다. 29절" We must obey God rather then men"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도 이러한 원칙의 사람을 주님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자기 좋은대로 살려고 하며 자유롭게 방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복종 같은 행위가 무엇을 하는 행위인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삶이 바로 되지 못한 자는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은 옥에서 나와 다시 성전에 가서 가르쳤습니다. 보통 예를 본다면 감옥에서 탈옥케 되었으니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쉬고 싶고, 보고 싶은 식구들도 만나 볼 수도 있는데 이들은 곧 바로 성전에 가서 기도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 증거를 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개인의 생활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생활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절로 문이 열리는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 수감 생활을 했다 풀려난 주기철목사의 간증 )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든 생활가운데 잠겼던 문이 저절로 열리는 형통함을 받기 위해서는 나 중심의 생활이 ......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바꾸어 져야 합니다.  나 중심의 생활은 내 힘밖에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 중심의 생활은 하나님이 힘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네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나 하나님의 신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가 해서 된것이 무엇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그 어떤것으로도 감금이나 제제 할수없는 자유함이 있고 형통만 있다고 하는것을 보여준 기사입니다. 사도들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며 원칙에 충실하여 사명을 감당 했을 때 그들은 자유를 얻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함을 받았습니다.
성도여러분! 교회에서 무슨 직책을 맡았던지 그 직무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실망되고 낙심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람이 산다는 자체가 이러한 역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릅니다. 버나드쇼가 일생을 회고하면서 "내 생애에는 언제나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오는 실망이요 또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질 때 오는 실망이다 이유는 소원이 이루어져도 허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분을 지켜 주십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어도 죽지를 아니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 불에 들어갔어도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원칙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것입니다.
지난주 한국 분당 만나감리교회 김병삼 목사 설교를 듣다가 간증을 통해 은혜 받았습니다.  교우가운데 진리부동산 개업 개업예배 설교시 상호대로 진리대로 사십시오.  3개월후 심방했더니 한건도 없었습니다 /원칙대로 하다 보니까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부동산은 적당한 거짓말)6개월후에 예배를 드려달라 / 예배드리고 문닫으려고 한다 목사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런데 폐업한지 얼마 후 십일조라고 하며 2300 만원 가져옴 / 폐업예배 드린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닫은 가게 앞으로 새 길이 나며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오고 건물이 비싼 값에 팔림 2억3천이익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건물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겼다는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앙 원칙에 충실하는 그 믿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축복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를 붙들고 사명 감당하며 사십시오 성공한 사업가 장관 미국 존 워너메이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자기의 일을 발견하고 그 길로 나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최배송 /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아멘
신앙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직무에 충실한 성도되어 언제나 하나님이 저절로 문을 열어주시는 ...그래서 하나님의 보장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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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view2008년12월21일 - 마2:1-12 예배를 회복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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