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2월14일
눅1:26-38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
여러분은 예기치 않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종류의 긴장감을 느끼십니까?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는데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습니다.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 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 임신했을 때가 40, 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입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 입니다만 Merry Christmas 와 Happy Holiday 논란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낮은 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의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것입니다. 감사한것은 지난주 여전도회에서 사랑의 선물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하기 위해 선교비를 주셨는데 마침 월요일 교단의 고아기관인 헵시바 재단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았는데 이 기관에 보내려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교회 절기로 대강 절 셋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Advent)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adventus'에서 유래된 말로 대림절 강림절이라고도 하는데 성탄절에서 거슬러 올라가 네 번째 주일부터 그러니까 금년은 11월 마지막 주일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계속되는데 이 절기는 ‘그리스도가 오셨고 오시고 있고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대강 절을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성탄절의 실제적인 의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요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 위에 오신 놀라운 사건을 진정으로 기쁨과 경외감 가운데 체험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강 절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깨달음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1. 대강절을 통하여 나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음을 더 깊이 깨닫는 시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정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마음이 부풀은 가운데 새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보내고 있었을것입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소식을 전하는데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인사했습니다(28절) 과연 이것이 합당한 인사였을까요? 약혼한 여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소식이 과연 은혜였으며, 평안한 소식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때에 항상 풍요롭고 따뜻하며 충만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전한 소식대로 마리아에게 아기가 생길 때에 결과적으로 일어날 일은 간음죄의 누명을 쓰는 일이요. 그렇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로부터 수치와 경멸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운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을뿐 어디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정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짐으로 확증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과정에서 처녀가 잉태한 것과 같은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비한 탄생이 이루어졌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계획하심 가운데 이끌림을 받는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남을 알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힘들어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가운데 내 삶에 일어날 일들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장기적인 인도하심에 이끌리고 있음을 안다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은혜'가 아닌 일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 할 수 있느냐는 마리아의 의문에 천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이 아들이라 일컬으리라"(35절) 여러분 모두가 대강 절을 보내면서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이와같은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하나님께서는 주님 오시는 대강절에 우리가 겸손함으로 당신을 맞을 준비를 하기 원하십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한 가난하고 이름 없는 여인을 찾아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이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한 작은 일부터 시작하셨는데 바로 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를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겸손하게 우리를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작고 보잘것 없는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도 가리지않고 찾아오십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맞이하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은 겸손하게 누추한 우리를 찾아오셨지만 우리는 그 분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살아갑니까? 마리아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겸손함으로 자신을 열어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를 경험할수 있는 비결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겸손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4:6“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자발적인 겸손은 자기 비하도 아니고 실망도 아니며 약점의 노출도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허식이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진정한 겸손 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의 실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때때로 인간의 선택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 적인 조건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목격하고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을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28∼29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리아의 겸손함의 다른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자기 부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잉태할 것이라는 뜻밖의 선포에 그는 대들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며 자기를 부인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마리아가 만일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거부하고 반항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구상의 그 누구를 통해서도 그 일을 이루실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겸손과 자기부인 이것은 하나님의 강림의 모습이자 의미이고 또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줄로 압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의 신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3. 이 대강절에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마음에 평강으로 화답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임했기에 마리아가 그 모든 일의 결과를 담대히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행동할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성경 적인 표적은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이미 가브리엘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 안에는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응답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내용이라 함은 천사의 말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이라 함은 평안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은혜를 받게 될 때 평안은 그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받는 우리가 얼마나 믿음으로 그 말씀에 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합할 수 있는 근거가 37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셔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모든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가실것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주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믿으며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 가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이 소식이 항상 그리고 특별히 이 대강절 기간에 우리 마음가운데 울려퍼져서 언제나 평안속에 굳게 서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2월 7일
행 9:1-18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오늘 말씀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빛으로 임하신 예수를 만나 변화되어지는 기적 사건입니다 다메섹지방의 크리스찬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대제사장들에 공문을 청하여 가지고 다메섹에 가까이 가던 사울에게 하늘의 빛이 저에게 비치면서 예수님이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죽어서 부활하지 못한 줄 알고 교회를 핍박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며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시고 저를 부르시니 어찌 회개를 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이제는 더 반역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빛으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지니 사울은 두손 들어 항복하고 말았으며 더 버티지 못하고 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주님이 한 사람을 찾으시는 장면을 보여 주신 기사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각자의 입장이 다르겠지만 바울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이 강권적인 역사를 하시어 저를 굴복케 하시고 헤어날 수 없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께서 멸망받을 수 밖에 없던자들을 구원키 위해서 찾으시는데 어떤자는 병석에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어떤 자들은 사업에 실패한 자리에서 부르시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불의의 불행 가운데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또한 어떤 자들은 참 진리를 가리켜 줌으로써 부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여러 형태로 부르시는 중에 여기 바울의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1)하늘의 광명한 빛이 저를 두루 비치어 땅에 엎드려 지게 하셨고
2)주님이 친히 음성을 내시여 그를 부르시었고
3)소경이 되게 하시사 자신이 확신을 얻게 하셨고
4)주님의 지시를 받은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 받음으로써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하시고 남다른 강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체험케 하시어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 구원받아 주를 섬기든지 주님의 사랑에 의한 부르심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바울과 같이 충성스럽게 주를 섬기어야 할 것입니다.
2. 포악한 핍박자도 회개할 수 있으며 어둔 인생들을 깨우치시려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사도바울이 변하기 직전을 보면 그는 스데반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로서 다메섹에 올 때에 살기가 등등해서 기독교를 말살 시키라는 대제사장 공문까지 받아 가지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빛을 비출때 그의 완악한 인간성은 산산히 깨어지고 대 핍박쟁이가 대사도의 복음 전하는 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볼때에
(1) 아무리 세상에 완고한 자가 있다해도 깨어질 날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2)우리들의 식구중 아무리 권고해도 고집 불통의 인간이 있다해도 그도 예수앞에 변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계속 낙심 말고 전도하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안 문제자)
(3)생각할 것은 우리 주위에 아무리 악독하고 우리를 핍박 한다 해도 사울 같은 완악한 자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기도하며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상자가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까지 가서 믿는자는 남여를 불문하고 결박하여 체포해 오리라고 달려가는도중 홀연히 하늘로써 빛을 받았습니다 그 밝은 빛을 견디지 못해 땅에 엎드러진 사울에게 들리는 소리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 음성에 사울은 크게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고 다음의 사실들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1)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은 죽지 않고 살아계심을 깨달았고
2)예수님은 지금 영광중에 계시며 신자를 핍박함이 곧 예수님 자신을 핍박하는 것인 줄을 깨달았고
3) 죄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고
4) 핍박하는 죄인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심을 깨달았고
5) 자기가 주장하는 율법이 예수님 앞에서는 의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3. 소경된 사울이 다시 보게 된 것은 예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개탄하기를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한다고"했습니다. 사울은 살기 등등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을 잡아 죽이기 위해 모든 힘을 썼습니다 스데반을 잡아 죽일때 앞장서서 돌로 먼저 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눈에서 꺼풀이 벗겨지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가 있었고 예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같이 예수를 알아 본 후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한 죽는다“ 했고 (롬14:7-9)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해도 하나님에 영광을 위해 하게 되었다고 했으며"고전10:31 "복음을 전하다가 죽기로 각오를 하면서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면서"(행20:24) 주의 일을 했습니다. 이같은 사상으로 의를 위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길을 다 달려가기 까지 주의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변화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소경이 되었던 것 처럼 현대의 신자 중에도 소경들이 있습니다 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이 바울은 육의 눈은 있어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한 것은 잘 보아 식별하였고 지식에 눈도 있어서제사장들이 예수의 활동은 다 허위라고 비난하는 공문도 볼 수 있었지만 영안이 어두어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어 참 진리를 보지 못하고 예수를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어 보아야 할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종교인의 행세를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종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데나 숭배하고 복을 달라고 비는 자들이 무수합니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예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고 미래 세계를 알지 못하여 신앙의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으며 볼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할 것만 보아 그것을 따르다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는 자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영안이 밝아 예수를 바라보고 따르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4. 전도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한 기적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자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를 소개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변화의 한 모습이지만 주님은 과거에 어떠한 생활을 하였든지 변화를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뜻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수가 있는데 (마4:19)에 고기를 잡던 자 베드로를 불러서 이제는 고기는 그만 잡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고 (마9:9)에는 세관에서 일을 하던 마태를 불러서 전도를 하게 하시려고 제자를 삼으시고 다섯 남편과 산다고 해서 사람들로부터 인간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사마리아 성을 전도하게 하시였던 것입니다 (요4:28-29).
내가 예수 믿은 것이 신기합니까? 전도하세요 전도하기 위해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같이 전도하기를 요구하시는 뜻은 전도란 무거운 짐을 벗겨 주는 격이 되는 때문이요(마11:28)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 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마12:11). 이같이 핍박하고 포학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5. 자아가 깨어지라는 것입니다.
오만 무도하고 매사에 자신 만만한 인간의 실상은 알고 보면 추함과 부족함과 일그러짐과 어리석음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말로는 사망 이외에 아무것도 오지 아니합니다. (잠14:1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참 자아를 발견한다함은 곧 죄악 된 인간 자아를 깨고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요 이 삶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삶입니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사울은 율법에 관하여 정통한 자였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무고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면서 자신의 악행을 개닫지 못한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향하던 그는 주님의 빛과 음성을 듣고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교만과 악함이 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잘 알아도 ,... 성경을 잘 알아도 .... 성령으로 깨지지 않으면 그의 삶은 무의미 합니다 )
지난 날 행했던 모든 일이 엄청난 죄악이었음을 깨달은 사울은 눈물로써 삼일을 보냈습니다. 이 참회의 삼일은 그의 자아가 깨어지는 순간이요 새롭게 태어나는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 삼야를 지내는 동안 뉘우치고 깨어졌던 순간이 (욘1:17) 우리 모두에게도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설교 준비하며 은혜 받고 제목 잡음 11절 “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 사울이 눈 머니까.. 활동이 정지되니까.. 아무것도 할수 없으니까.. 여러분 뭔가 안될때는 기도하는 시간 임을 깨달으라 12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기도하면 보인다 아멘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으며 또한 저는 예수를 영접한 후로 다시 변해 세상으로 빠진 일 없이 순교하기 까지 주만 섬기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은혜 충만히 받기도 하고 이에 열심을 내다가 타락하여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순교를 각오하고 주를 섬길지언정 타락하여 주를 멀리 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30일
행 8:1-8 핍박 과 큰 기쁨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제한 없이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들로 인하여 각종 기사와 이적이 일어났으며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직접 목회하던 교회였슴에도 불구하고 핍박 앞에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교회에 어떤 잘못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다른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신뢰하면서 따라 주어야 합니다 지금 이해가 안되고 고통이 심할지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만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나자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습니다. 사도들은 핍박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며 교회를 지켰고 나머지는 핍박을 피해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도의 직분을 아무에게나 그냥 주신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때 그들의 모습은 형편없었지만 그러나 미래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교회를 지키리라는 확신을 가지셨기에 택하셨을 것입니다.
엄청나게 핍박이 와도 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을지언정 교회를 포기할수 없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나에게 맡겨 주신 교회를 지키겠다 이런 자세를 가진 교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직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죽기까지 충성하십시오. 죽더라도 사명 감당하십시오. 일하는게 너무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을지라도 직분 감당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어려움이 오고 위기가 있는것 같으면 즉시 떠납니다. 성전을 건축하자는 말만 나와도 떠나 버립니다. 목사와 부딪혀도 떠나고, 교인들과 부딪혀도 떠납니다. 떠나면 머리 아프지 않고, 희생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떠나기를 좋아한다면 언제 뿌리를 내릴 것입니까? 뿌리를 내려야 큰 재목이 되어 쓰임을 받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름다운교회에 보내주셨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떠나고 손해 보기 싫어서 떠나고 무거운 짐 지는 게 싫어서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 자세로 어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통해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확장되도록 하셨습니다. 남 유다와 북 사마리아는 오랜 세월 동안 적대관계에 있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도 적대관계는 대단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방법으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는 절대로 실패가 없습니다. 실패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패는 없습니다.
실패의 위기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진짜 실패는 없습니다. 어렵고 큰 문제가 있습니까? 목사와 성도 간에, 성도와 성도 간에 부딪힘이 있다고 염려가 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성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위기 뒤에 기회를 주십니다 가장 큰 어려움 뒤에 큰 축복을 주십니다.  스데반은 7집사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핍박받아 죽었으니 예루살렘 교회의 충격이 어떠했겠습니까? 교인들이 다 흩어져 버린것도 스데반 사건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사도들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패요 끝입니까?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공입니다.
내 교회 건물 크게 짓고, 내 교회에 사람 많이 모이고, 내 교회 재정이 든든하고, 내 교회가 체계적으로 훈련 잘 시키고 그것이 목회의 성공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공은 복음의 확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가장 큰 관심은 영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내 교회가 희생하고 내가 희생해서 복음이 확장된다면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희생해서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음의 길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을 아멘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를 향한 계획이 사단의 계획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물론 사단은 핍박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의 계획까지도 다 이용을 하시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셨습니까?
스데반을 보호하시고 교회의 흩어짐을 막을 수 있을 터인데 왜 막지 않으셨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복음 확장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는 것과 성령을 받은 다음엔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 자신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세례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온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확장시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확장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통해 흩으셨고 흩어진 그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복음의 확장을 가져 왔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강력한 명령은 땅 끝 모든 민족에게 전도하여 영혼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 우리 교회를 보실 때 가장 관심 있게 보시는 것은 복음 전파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건축 했고 얼마나 헌금 많이 들어오는 가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모든 재물을 다 바친다 해도 한 영혼의 값어치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교회만 , 내 유익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정신은 희생정신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나를 살리신 것처럼 나도 이웃 위해 죽어야 하고 내 교회도 다른교회 위해 복음 전파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을 느끼면 그 곳에 안주하기가 쉽습니다. 성전 건축 아름답게 이루었고, 재정 부족 없고, 좋은 시설 속에서 좋은 프로그램 도입하여 교인들에게 유익을 주고 너무너무 좋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흩으셨습니다 최초의 교회입니다 베드로가 목회 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엄청난 핍박을 내리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가 교회가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전도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전도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선교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 양면에 힘을 쓸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교회가 무지무지하게 좋은 상태입니까? 그렇다면 좋은 모든 힘을 모아서 선교에 폭발시켜야 합니다 교회가 어렵고 힘듭니까? 그럴 때 일수록 선교에 더욱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전도에 힘을 모은다면 어떤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얼마나 사모하고 계시겠습니까? 우리 앞에 넓게 펼쳐진 들판을 보시기 바랍니다 추수 할 곡식이 썩어가고 있음에도 일꾼이 없어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우리를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라’고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5절 이하를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빌립도 스데반처럼 7집사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성으로 흩어진 빌립이 예수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더러운 귀신이 떠나고 수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으며 많은 남녀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마술을 통해서 큰 능력을 행하는 마술사 시몬도 세례를 받고 빌립의 뒤를 따랐습니다.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 복음이 전파되는 곳엔 능력이 나타납니다 귀신이 물러가고 질병이 치료됩니다. 예수님의 능력 앞에 이루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은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시간입니다 능력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소리치고 물러가고 각종 질병이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남을 믿습니다 믿으십시오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누구의 말씀인가요? 주님의 말씀입니다 빌립을 통해 역사 하셨다면 우리를 통해서도 역사 하십니다.
사마리아성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면 실버스프링에서도 나타납니다 2000년 전에 나타났다면 2000년 후인 지금도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8절에 보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쫓겨가고 병자가 치료 받으면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파되는곳엔 이처럼 큰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기쁨이요 하나님에게도 기쁨입니다 사람이 가장 기뻐하는 일, 천국에서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일이 복음 전파요 영혼구원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대 핍박이 일어날 때 교회의 끝인 줄 알았습니다 사단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확장으로, 복음의 승리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지금 핍박이 있습니까? 힘든 문제가 있어 걱정입니까? 지난 주간 직장에서 해고 당한분도 여기 계십니다 그러나 격정 하지 마십시요 예수그리스도는 늘 승리만 주십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겐 패배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이제는 나가도록 합시다 십자가의 군병답게 뛰쳐나가 천국을 놀라웁게 확장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23일
시136:1-3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의학용어에 '플라시보(Plasebo)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플라시보란 "기쁘게 해 준다"는 뜻으로 의사나 약사가 병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치료효과가 수십 배, 수백 배로 나타난다는 말인데 원래는 "가짜 약이 진짜 약과 같은 효력을 발휘 한다"는 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약사 에멜 쿠에가 약국의 문을 닫고 잠을 청하려던 어느날밤, '시간이 너무 늦어 병원에 갈 수 없고 너무 아프니 약 좀 지어 달라'며 환자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의사 처방전이 없어 병명을 모르는 약사가 망설이자 환자는 막무가내로 부탁하므로 할 수 없이 인체에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포도당 알약을 조제해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괜찮아 질 겁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보라"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며칠후 길에서 만난 환자가 "선생님 그 약이 무엇인지 참 신통합니다. 알약을 먹고 깨끗하게 나아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어요"하며 뜻밖에 말을 들려주었다. 쿠에는 환자에게 준 약은 가짜였고 그에게 한 말도 뻔한 거짓말의 위로였는데...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실제 효능이 없더라도 이 약만 먹으면 완쾌한다고 믿음을 주면 신기하게 환자의 병이 낫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관절염, 심장병, 심지어 폐결핵 말기 환자와 암환자에게까지 거짓말이지만 '기쁘게 해주는 플라시보'를 투약해보았는데 그를 찾아온 환자들에게서 놀라운 효과를 보게 됐다. '
플라시보 효과'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된것입니다. 쿠에가 일반인들을 위해 처방한 '플라시보'가 있는데 "나는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다"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everyday.) 이것을
하루 열 번씩 반복해 외우면 긍정의 힘이 뜨거운 온천수처럼 솟아나 삶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 보세요 )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는 지금 좋아지고 있다"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의 시에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오늘 지상의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촉구합니다. 감사는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며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향한 명령이며 성도들의 의무이다. 그리고 감사의 결과는 플라시보 효과 정도가 아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리는 감사와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예물은 물론 억지로라도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마음과 육신, 가정과 자녀교육, 사업과 일상생활 그리고 영적 삶에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렇다. 우리의 감사는 하늘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이다. 한 나라의 군주에게, 오대양 육대주의 한 지역 통치자에게, 또는 지구 유성을 다스리는 신이나 태양계를 다스리는 제한된 신이 아니다. 저 광활한 우주공간, 수조 억 개의 별들 그 모든 별들의 세계 넘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계신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이다. 오늘 안계수목사가 드리는 감사, 지금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 정성을 다하는 기도와 찬양, 자신의 생명과 함께 바치는 헌금과 헌신 그리고 우리의 자자손손이 드리는 감사는 바로 그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1. 감사의 방법
그러면 우리는 '나를 기억해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표시할까? 사람이 사람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병을 고쳐준 사람에게, 고통과 좌절 중에서 건져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은 은혜 받은 날을 기념하여 전화로, 선물로, 꽃다발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은혜 베푼 사람의 자손들을 돌보아 주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또 다른 사람에게 베프는 등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감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도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렇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하늘의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와 사랑, 축복과 은택은 오직 그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모든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2) 예물과 헌금으로 감사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감사할 때,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히스기야 왕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고 백성들에게도 감사제물을 가져와 드릴 것을 가르쳤으며(대하 29:31)
예레미야도 감사의 예물을 드릴 것을 가르쳤으며(렘17:26)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해 드리는 구제를 위한 감사헌금을 성도들이 당연히 해야 할 봉사의 직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후 9:11-12)은혜를 끼쳐준 사람에게 감사의 선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듯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예물과 헌금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기도문교회예화 365/4명 )
3) 예배를 드림으로 감사하라
다윗은 시35: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한다"고 했는데 대회 중에서(In the great congregation)란 "교회 가운데서", "예배 중에서"란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외적 증거이다. 예배를 많이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드리는 성도요 예배를 피하는 사람은 감사하기를 피하는 사람이다. 예배를 드리되 마음으로 다하고 정성을 다해 드려라. (선물을 들고 은혜를 보답하러 찾아간 사람 앞에서 조는 사람, 먼 곳 쳐다보는 사람, 몸가짐이 흐트러지는 사람 있는가?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4) 찬양함으로 감사하라
다윗은 시69:30 그 자신이 찬양함으로 열방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고 시 30:4 성도들에게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으며 대상16장에 보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세 사람의 찬양지휘자 밑에 찬양대장 288명과 4000명의 찬양대를 세워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였으며 느헤미야도 찬양대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했고 (느 12:21)  바울도 성도들의 찬양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엡 5:19-20) 시와 찬미와
우리들의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기쁨의 표현입니다 즐겁게 찬양하자.
5) 기도로 감사하라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 중에서 '해달라'는 요청의 기도와 '고맙다'는 감사의 기도, 어느 기도가 더 많은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맛다냐와 박부갸를 세워 감사하는 말씀을 전담하도록 대표기도하게 했고(느 11:17)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큰 시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단 6:10)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감사기도로 기적을 만드는 성도되기를 축원합니다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듯 요청기도와 감사기도가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기도의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6) 공의와 인자와 겸손의 삶으로 감사하라 (미가6:6-8)
미가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공의를 행하며(To do justice) 이것은 자신이 의롭게 바르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자를 사랑하며(To love mercy: 이웃에게 자비함과 친절함을 보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To walk humbly with your God 겸손하게 하나님 과 더불어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공의와 인자와 겸손의 마음이 있어야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헛수고라는 말이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의 삶은 공의와 인자와 겸손이 행동과 말에서 자연스럽게 열매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3. 감사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적극적으로 명령한 것은 감사 그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감사, 입술의 감사, 행동의 감사는 플라시보 효과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축복을 가져온다. 암이나 에이즈를 앓는 중환자 30명을 15명씩 반으로 나눠 1년 동안을 약을 주면서 15명 한 팀에게는 "감사합니다."를 열 번 이상 하고 먹게 했고 다른 팀에겐 그냥 약을 먹게 했는데 일 년 후 그들의 병의 상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감사합니다"를 말했던 사람들은 거의 완치가 됐던지 많은 치료가 있었고 그냥 약을 먹은 사람은 현상유지 또는 더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는 노시보(Nocebo) 효과이다. 노시보란 "해를 끼치다"란 뜻인데 아무리 적절한 처방을 통해 좋은 약을 제조해 주어도 본인이 믿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개념입니다 섹스피어는 "겨울바람과 눈보라가 아무리 거세고 살을에어도 감사하지 않는 마음보다는 모질지 않다"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보다는 노시보 효과만 나타날 것입니다. 하늘에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 감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1)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신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인생 중에서 최고로 자기 행위를 옳게 하는 자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며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후대해주심 (시 142: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로다"
"하나님이 후대해주심"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심, 하나님이 풍성케 해주심)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로다"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고, 유익한 사람과 내게 도움을 줄 복 받은 사람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는 축복을 주십니다. * 보장과 보증의 축복
3)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주신다 (단2장, 6:10)
다니엘은 살해 위협 때와 사자굴에 던져 넣음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죽음의 위기들이 축복의 기회들이 되게 했습니다 위기의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하십시요 어려움의 때일수록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고 고통스런 때일수록 예배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아플수록 목소리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괴롭고 힘들수록 요청기도와 감사기도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뱃속에서 배고픔의 소리가 들리고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공의와 인자와 겸손으로 살아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평강의 마음을 얻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감사와 감사기도, 감사 찬송, 감사예물, 성공적 예배는 지금 내가 자각하고 있는 불안한 현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절망적 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을 채우게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태산처럼 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며 평안의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5) 영적으로 깨어있게 함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어떤 시험에라도 빠져들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는 성도가 됩니다 (살전 5:18)
딤후2:26 깨어 있는 사람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축복의 사람이 되며 깨어 있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며 (고전15:34) 죄를 다스리는 권세 있는 성도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깨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에 죽지 않고 산 채로 들림 받아 공중으로 휴거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감사 하는 성도가 받을 축복은 영적인 축복에서 물질적 육체적 축복까지, 지상의 축복에서 하늘의 축복까지...그 수와 양을 계수할 수 없는 전천후 축복입니다 아무쪼록 2008년 추수감사절에 감사하는 성도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자료를 제공해 주신 김엘리야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16일
눅17:11-19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마음자세
마귀의 마진은 얼마일까요? 보통 사업은 20-30 % 마진을 보지만 마귀는 단 1%라도 이익이 되면 곧 성공이라 합니다.  개인의 심령을 파괴하고 가정의 화목을 무너뜨리며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는 사단의 장난에 넘어지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주일은 일년 중 가장 축복되고 즐겁고 고마워야 할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런데 감사절이 오는 때가 겨울 준비에 우리들의 고민이 하나 더 늘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때론 감사와 감격이 없이 맞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부담스러운 연례행사가 되어 버리지는 않는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더더욱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의 불안이 가중되어 모두가 힘들어 하는 가운데 맞게되는 금년 감사절을 과연 어떻게 지키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와 그 은혜를 감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는 하나님을 알고 기념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고백하는 감사입니다. 오늘 이시간 추수감사절의 정신 과 감사하는 생활의 비결을 성경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살펴보며 진정한 절기 성경적 절기 복된 절기를 지키고자 합니다.
1. 추수감사란 구원의 은혜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추수감사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신26:1-4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토지 소산의 맏물을 거두어들인 후 처음 익은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여호와의 성소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렇게 아뢰라" 가르쳤습니다. 다같이 스크린을 보며 함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신26:5-9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킴으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이 고백적인 감사의 주 내용은 조상이 겪은 역경과 여호와께 부르짖음, 그리고 구원과 가나안 땅으로 정착하도록 인도하심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얻은 열매로 추수감사절을 노래하면서도 추수에 대한 설명을 하지않고 여호와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추수감사는 추수한 기쁨에 도취되어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구원 역사를 기념하고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는 감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 추수시기를 따라 지킨 추수감사절의 이름은 추수와 관계가 없는 장막절, 혹은 초막절로 불려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신 행사를 기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또는 The fest of booths)은 초막절이라고도 부르며 히브리어로는 '쑤콧'이라고 부른다. '쑤콧'은 우리말로 초막 혹은 장막을 뜻한다. 장막절은 유월절,칠칠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삼대 절기 중의 하나로서 고대에는 이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었다. 따라서 장막절은 "여호와의 절기"(레 23:39; 사 21:19) 또는 단순히 "절기"(왕상 8:2,65,12:32; 겔 45:25; 느8:14; 대하 5:3,7:8)라고 불리웠다.절기중의 절기였기 때문이다.
가을 축제인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간 지속된다. 양력으로 티슈리월은 보통 9월달이다. 첫날은 일이 금지된 완전한 휴일인 '욤 토브'로 지킨다.
장막절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출애굽 이후의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역사적 요소요,둘째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추수하는 수장절(The Fest of Ingathering;출23:16b,34:22b)을 지키는 농경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은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터키를 구워먹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추수 감사 축제를 즐기고 기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수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전체의 표현이었습니다.  매년 11월4째 목요일을 정한 최근의 미국 감사절은 1621년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상륙하여 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어 처음 익은 열매들을 제단에 놓고 눈물의 감사를 드린 것이 그 효시가 된 것입니다.
2. 청교도들의 감사는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마음의 감사였습니다
 추운 초겨울 12월에 메사추세츠 플리머스 항구에 102명이 상륙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과 병으로 인하여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어 버리고, 그 이듬해 봄에 원주민 추장에게 감자와 옥수수 종자를 얻어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이 가장 필요한 때에 3개월 동안 가뭄이 들어 수확할 수 없는 폐농 직전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으로 성별한 기도의 날을 정하고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사 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던 기적이 그들에게서도 나타나서 가물었던 땅에 10일간 비가 내려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생명적인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는 본래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형식적이고도 관료적인 신앙에 항거하여 보다 더 생명적이고 내면적인 경건한 신앙생활을 살기 위한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12년 동안 본국에서 박해에 견디다 못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불리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생명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며 대서양을 건넜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 제일주의가 그들의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1621년 11월 11일에 체결된 메이플라워 계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할지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항해를 계속하였노라] 고 선언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든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신대륙에 와서 죽음과 투쟁하며 결실을 얻었으므로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들보다는 슬퍼해야 할 일이 많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신앙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추수감사절은 진정 기쁘고 감사하여 지키는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절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예물은 우리 신앙의 내면적인 은혜를 물질로써 바치는 것이기에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바쳐야 하며 과부의 엽전 두 개와 같은 헌금이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절기는 반드시 택한 제단에서 각 개인이 정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더 나가서는 오늘 본문에 주님을 만나 함께 깨끗해진 열 명의 나환자 중 한 명처럼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것을 본받아 우리도 진정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와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몸만 아니라 물질만 아니라 마음이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우리의 마음이 , 어둠에 잡혀있었던 우리의 생각이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면 삽니다 돌아오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음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음이 곧 타락이요, 병입니다. 감사는 창조를 낳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일 먼저 교회당 건축하고, 다음에 학교 건축하고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특별히 일년에 한번씩 한 주일을 정해 감사 예배를 드리는 오늘의 우리들은 우리 교회에 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내 개인과 가정에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시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평소의 생활이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문안 후에 감사하라는 권면이 수없이 나옵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뤼라], [범사에 감사하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 생활 자체가 감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감격으로 사무쳤고 그의 하루 생활은, 아니 일생의 생활은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러한 감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모든것이 다 평안하고 환경이 좋으면 누가 감사하지 않겠는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 하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로 인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3. 감사는, 가난했던 지난날을 기억하며 감사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바울의 일생을 간단히 기록한 말씀이 나옵니다. 수없이 매를 맞고 몇 번이나 감옥에 갔고 여러번 파선을 당하고, 에베소, 고린도,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핍박과 환난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언뜻 생각할 때 몸이 건강하거나 가정이 화평하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업이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면 감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몸의 건강이나 가정의 평안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독신생활을 하였으며 쉴 만한 집도 없이 살아온 사람입니다. 바울사도는 일생토록 나그네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사는 삶속에서 평안이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감사하는 생각과 생활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그 깊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을 심령속 깊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사탄에게서 해방을 받은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같이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는 신앙이 있으면 우리도 순경이나 역경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언제든지 감사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닌 줄 압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되니 자연히 그의 생활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선 마음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6:22). 바울이 가는 곳마다 죽은 생명을 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를 위해서 무슨 열매든지 맺는 사람일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주를 위하여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면 열매 맺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더 많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우리 매일 매일의 생활과 일생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과 역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같이 우리도 과거 가난하던 때를 기억하며 이처럼 풍요로운 미국땅에 살면서 가진 것이 많은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에 더욱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 9일
행5:17-32 옥 문이 열린 기적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며 각종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자 이를 시기한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감옥에 잡아넣었는데 주의 사자가 (Angel of the Lord" 천사로 이해 /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으로 구원 얻을 후사들을 돕는 직책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석방을 시키신 기적입니다. 주의 사자(천사로이해)는 석방된 사도들에게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보면 파수병도 그대로 있었고 옥문도 그대로 채워져 있었으나 사도들은 천사의 인도로 저절로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같이 능력을 행하신 것은 생명의 말씀 즉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영생의 도, 이 복된 소식을 증거하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으며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잠시라도 쉴 수 없고 멈출 수 없다는 뜻에서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의 원하는 뜻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사람이 막을 수 없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서 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전도하는 자에게 선교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아멘) 전도를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하나님이 원하는 뜻은 생명의 말씀이 계속해서 전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제는 전도에 좀 더 정성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지역에는 한인이 없다든지 , 전도할만한 한인 마켓이 없다든지 하는 핑계가 있을수 없습니얼마나 많은 한인 마켓들이 있습니까? 예전 캠프스프링스의 5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각 단체별로 특별전도 계획을 세워서 본격적으로 전도에 나셔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매월 1주를 정하고 각 단체별로 돌아가면서 특별전도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그저전도지) 주시는 교훈은?
1.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잠시라도 쉴 수 없으며 사도들 앞에는 가로막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업은 중단도 하고 폐업도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이나 폐업이 없는 것입니다. (요5:17)에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에는 멈출 수 없다는 뜻에서 기적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사도들이 감옥에 있으면 복음이 증거 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감옥의 문을 저절로 열리게 하시고 석방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사람이 막을 수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감옥이 저들을 수감치 못하였고 핍박이나 박해가 저들의 활동을 가로 막지 못했습니다.  또한 주의 일을 하는데 아무것도 제제하지를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 기사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에는 형통만 있지 불행이나 역 수난은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기사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든 간에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자기만 살기 위한 방법을 쓰기때문에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버는것도 주님의 뜻대로 살기위해서이고 정직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았지만..... 돈을 못 벌어 못 살아도 주님의 뜻인 줄로 알면.... 마음도 편하고 또한 그와 같은 생각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형통케 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 같이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요셉의 형통이 노예로 팔려 갔을때,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 갔을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릴줄 아는것이 축복입니다.  따라합시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형통입니다"
2. 사도들은 자신들의 의무와 직책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졌다는 교훈입니다.
사도들의 의무와 직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옥에 감금되었으니 이들은 사명을 감당해야 함으로 옥문이 절로 열리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 할 것은 이 제자들과 같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소임을 다 할 때에 이같은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물질을 드려 봉사하면 반드시 물질에 대한 보상이 있습니다
2) 몸을 드려 봉사하면 반드시 건강케 되는 보상이 있습니다
3) 마음을 드려 봉사하면 평안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들이 기적을 원하지만 그 기적이 이루어지는 배후의 사건을 알지 못하고 원하기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철저하게 영적 원리에 따라 일어납니다.  믿음의 원리, 순종의 원리, 헌신의 원리, 심은대로 거두는 원리입니다.
3. 사도들의 신앙을 통한 우리 신앙을 점검해 봅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위협은 물론 투옥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말씀 전파하는 일에 골몰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협박과 위협으로 죽인다고 해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감옥에 가서도 기도와 찬송하는 일에 전념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심한 고문과 매도 맞고 춥고 배고픈 일이 있었으나 육신에 대한 어떠한 고통과 염려와 두려움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아니했습니다. 육체야 어떻게 되던 신령한 구령 운동에 전념을 다하는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감옥에서) 옥문이 열림 그 순교적 자세의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정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나를 피곤하게 했던 "무너진 인격과 싸우지 말고 더 큰 하나님의 역사와 싸우라"
4. 사도들은 원칙에 충실하며 사명감에 불타고 있던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이 제자들의 삶의 원칙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며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순종하며 살려고 힘쓰는 자들이었습니다. 29절" We must obey God rather then men"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도 이러한 원칙의 사람을 주님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자기 좋은대로 살려고 하며 자유롭게 방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복종 같은 행위가 무엇을 하는 행위인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삶이 바로 되지 못한 자는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은 옥에서 나와 다시 성전에 가서 가르쳤습니다. 보통 예를 본다면 감옥에서 탈옥케 되었으니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쉬고 싶고, 보고 싶은 식구들도 만나 볼 수도 있는데 이들은 곧 바로 성전에 가서 기도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 증거를 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개인의 생활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생활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절로 문이 열리는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 수감 생활을 했다 풀려난 주기철목사의 간증 )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든 생활가운데 잠겼던 문이 저절로 열리는 형통함을 받기 위해서는 나 중심의 생활이 ......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바꾸어 져야 합니다.  나 중심의 생활은 내 힘밖에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 중심의 생활은 하나님이 힘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네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나 하나님의 신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가 해서 된것이 무엇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그 어떤것으로도 감금이나 제제 할수없는 자유함이 있고 형통만 있다고 하는것을 보여준 기사입니다. 사도들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며 원칙에 충실하여 사명을 감당 했을 때 그들은 자유를 얻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함을 받았습니다.
성도여러분! 교회에서 무슨 직책을 맡았던지 그 직무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실망되고 낙심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람이 산다는 자체가 이러한 역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릅니다. 버나드쇼가 일생을 회고하면서 "내 생애에는 언제나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오는 실망이요 또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질 때 오는 실망이다 이유는 소원이 이루어져도 허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분을 지켜 주십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어도 죽지를 아니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 불에 들어갔어도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원칙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것입니다.
지난주 한국 분당 만나감리교회 김병삼 목사 설교를 듣다가 간증을 통해 은혜 받았습니다.  교우가운데 진리부동산 개업 개업예배 설교시 상호대로 진리대로 사십시오.  3개월후 심방했더니 한건도 없었습니다 /원칙대로 하다 보니까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부동산은 적당한 거짓말)6개월후에 예배를 드려달라 / 예배드리고 문닫으려고 한다 목사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런데 폐업한지 얼마 후 십일조라고 하며 2300 만원 가져옴 / 폐업예배 드린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닫은 가게 앞으로 새 길이 나며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오고 건물이 비싼 값에 팔림 2억3천이익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건물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겼다는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앙 원칙에 충실하는 그 믿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축복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를 붙들고 사명 감당하며 사십시오 성공한 사업가 장관 미국 존 워너메이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자기의 일을 발견하고 그 길로 나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최배송 /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아멘
신앙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직무에 충실한 성도되어 언제나 하나님이 저절로 문을 열어주시는 ...그래서 하나님의 보장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1월 2일
딤후4:6-21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혹 기억하실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1997년 11월 첫주에 오늘의 본문을 설교하면서 매년 11월 첫주에는 같은 본문과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할것이라고 여러분들께 약속했습니다. 작년에는 교회 이전 사정상 건너뛰고 올해로 11번째로 그 약속을 지키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사도바울이 소아시아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있는 디모데후서는 디모데 개인에게 보낸 편지로 신약 성경에서는 사도 바울의 가장 마지막 편지입니다.
그러고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은 “관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말함으로 그의 임박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관제(Drinking Offering) 민 15:1-12 희생제사의 마지막 부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는 유대인 동족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디모데,...그는 제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목회를 돕는 동역자요, 그러면서도 친 아들과도 같은 깊은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겨울이 오기전에 너는 어서 오라”
왜 사도바울은.. 지금 에베소교회를 섬기기에 여념이 없는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전에 어서 오라는 부탁을 하는것일까요? 뭔가 급한 사정이 있는것은 분명하지만,..겨울이 오기전에“ 라고 단서를 붙이는 이유는... 또 다른 애정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지중해는 겨울철이 되면, 예측할수 없는 겨울풍랑이 갑작스럽게 불어 닥칩니다. 사도바울 자신이 선교 여행을 하면서, 이미 여러차례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죽음의 경험을 했었기에 폭풍시즌이 시작하는 겨울전에 오라고 말함으로... 디모데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서 오기를” 바라는 그의 말 가운데서 사도 바울도. 한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죽음을 넘어선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로인해 그는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살았지만.. 죽음 때문에 복음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아와 추위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때로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맹수와 싸우기도 하고 배가 파선을 당해 죽을 뻔 도 했고 심지어는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39이라고 하는 최고의 태장을 3번씩이나 맞았고 돌에 맞아 거의 죽음 직전까지도 갔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압력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이미 생명을 바친 하나님의 사도 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감옥에 갇힌 사도바울은 외로움을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자신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의 황제 앞에 서게 되자, 믿음의 형제들이 자기를 떠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과 3년간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제자들이 골고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듯이 사도바울의 믿음의 형제들도 다들 떠나고 만 것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위기 앞에서 보여 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면 주위에 친구가 많아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진정한 친구는 실패와 위기 가운데서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누군가가 자기 옆에 있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저 옆에만 같이 있어주는 것으로 족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려운 순간, 고통스런 순간, 우리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주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자기에게 자기에게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냥 말없이 있어주기만을 원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일에 바쁜줄을 알고 에베소 교회에 필요한 줄도 알지만 자기 곁에 디모데가 와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게 몇가지 부탁을 합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고 외투와 성경책을 가져 올 것을 부탁합니다.
11절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여러분 마가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로서 사도바울이 바나바와 같이 1차 선교여행을 함께한 복음의 동역자 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선교여행중에 이 마가가 어려움을 참지못하고 도중 하차해 버린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일로 매우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조금 어렵다고 도증하차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도바울은 너무 낙심이 된 나머지 ,... 마가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중에 2차 선교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는 이 마가를 데리고 가기를 원했고 바울은 전에 쓰라린 기억이 있어 마가와는 결코 같이 갈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마가로 인해 그토록 절친했던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고, 선교를 위해 이방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죽음의 사선을 같이 넘으면서 동거동락 하던 바나바와 바울이 이 마가로 인해 서로 다투어 갈라지고 만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바울은..... 이 마가를 데려 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때가 되면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여기 사도바울도, .... 교회에 보낸 많은 편지에 용서할 것을 권유했지.. 그 자신 권유할 뿐만 아니라 .. 스스로 용서를 베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린다고 하는 말을 다른말로 말하면 하나님과 화해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기 이전에 먼저 화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이웃과 먼저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다툰일이 생각나거들랑 먼저 화해를 구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
주기도문을 외우다 보면 참으로 우리가 감당키 어려운 구절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옵시고 라는 구절입니다. 이 말을 앞뒤를 바꾸어 말한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것같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게 하옵소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용서의 힘을 가지고/..남을 용서한다고 하는 것, 정말 순서도 맞는것 같고, 이래야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같습니다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내가 나에게 해를 끼친 ....나의 형제를 용서할 때 그 후에 주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지난 한주간에 마음에 상처받은 일이 있어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거들랑 지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하기전에 먼저 남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용서하신다면.. 우리 주님도 도저히 용서하실 수 없지만 무조건 용서 하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마가를 용서 했습니다.
용서 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나를 도와달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한다고 말은 하면서 같이..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이제 사도바울이 또 하나 부탁하는 것은 드로아 가보의 집에 가서 .....그가 평소에 입다가 ...두고 온 .... 외투를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어두 컴컴하고 음침하고 습기가 많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의 추위와 고통을 생각하고...겨울이 오기 전에 겉옷을 가져오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외투가 무슨 특별한 값어치가 있는 옷이었을까요? ...
혹 로마에서 다른 외투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요?... 차라리 디모데가
돈을 가지고 와서 로마의 시장에서 새것을 살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는 드로아의 가보의 집에 가서 예전의 그 외투를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원했던 이 외투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전도 중에 맹수를 만나 싸우다가 찢어지고 / 여기저기 꿰맨 자국이 남아 있는 옷이었습니다 . 거기에는.. 그가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아 피를 흘렸던 핏자국이 베어 있는 옷이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옷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받았던 고난과 아픔을 통해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총을. 다시 한번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죽음의 순간 입고 싶은 옷이 있습니다. 한국서는 수의를 입히지만 미국에서는,.. 평소에 입던 옷을 입힙니다.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습니까? 언제 어느 순간 죽을지 모르니까.... 미리미리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말해 두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거들랑 이 옷을 입혀 달라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은총이 담긴 옷, 에벤에셀의 옷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또 성경책을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 가죽 성경책에도 여러 가지 사연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로마에 두루마리 성경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새 성경책이 없을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기의 신앙의 얼이 담긴 그 성경책을 원합니다.  저도 제 서재에는 많은 성경책이 있습니다. 제 신앙의 대를 이어온 성경책이기 때문에 낡았지만 귀하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이 가져 오기를 원했던 이 가죽 성경책은 바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였을 것입니다.
겨울은 인생에 비교한다면 죽음에 비유됩니다. 푸르럿던 잎들을 다 떨쳐 버리고.. 벌거벗은 몸, 맨 몸으로 사는 계절입니다. 자신을 감싸던 오색 찬란한 잎들을 다 떨어 버리고 맨 몸으로 서는 계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는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다 벗어 버릴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겨울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2008 년도의 겨울이 아니라 인생의 겨울 말입니다.
신앙은, 아직 오고 있지 않은 것을 볼 줄 아는 힘입니다. 우리의 겨울은 이제 코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인생이란 시간은 우리의 생각대로 그리 움직여주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정한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시간,.. 우리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속히 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일도 할 때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할 수 있을 때 교회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성전 봉헌예배를 드린 후 많은이들로부터 격려를 들었습니다.  지난주 버지니아의 교회 제직 취임식에 가서도 많은 목사님들로 부터 " 모두들 열심하더니 좋은 결과 얻었다는 격려를 받았고 심지어는 한국식당에 가서도 직원으로부터 축하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새 생명 구원을 위하여 전도에 더욱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겨울이 오기 전에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를 읽어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인생이란 시계는 한번만 태엽을 감는다네, 그리고 이 시계의 바늘이 언제 멈출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조금 일찍 올른지, 아니면 조금 후에 올른지 오늘 이라는 시간만이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이지 지금 허락될 때 힘써서 일하고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해야지, 내일은 약속할 수 없다네 그 어느 누구도....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26일
민12:1~11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이번 주일 설교는 강중희 목사님이 선포 하셨습니다.
오늘 은혜의 말씀을 선포해 주신 강중희 목사님(인천세광교회)께 감사드립니다.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19일
민2:1-2 아름다운교회의 삶
오늘 우리교회는 창립 15주년을 맞이 했습니다 한없는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돌리며 오늘의 이 찬란한 새 역사를 이루기까지 함께 동역해 오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만 해서는 안되겠지만 역사를 알고 전통을 잘 보존하고 계승함은 오늘 우리의 과제입니다.
15년 교회 역사의 회고
년도 표어
1994 믿음으로 전진하는 교회 (히12:2)
1995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행9:31)
1996 일하며 성장하는 교회 (요5:17)
1997 새 역사를 창조하는 교회 (사43;19)
1998 네 장막 터를 넓히라 (사54:2) 교우들이 집 장만 대세
1999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49:22) 본격적 축복
2000 예수 사랑 총력전도 성전 건축 (요13:34)
2001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아쉽게도 본격적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교세가 약화됨
2002 날마다 더하여져 가는 교회 (행2:46-47)
200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12)
교회적 시련이 오면서 믿음을 보존하는 시기
2004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고후9:8)
2005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 (요15:10-11)
2006 희망을 주는 교회 (호12:6)
2007 선교하는 교회 (막16:15)
2008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교회 (사45:25)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교회의 삶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민2장에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12지파의 진 배치와 가난안을 목적지로한 광야 행진을 위한 행군 순서가 마련되어있다 즉 하나님께서 성막중심의 진 배치를 명하신 사실과 행진 및 숙영할 때에 각 지파가 위치할 장소에 대한 계시로 행진 때 중심이 될 유다, 르으벤, 에브라임, 단지파의 진 기에 각각 소속된 지파들의 명단과 그들의 장정 수가 소개되고, 그들보다 성막에 근접하여 위치할 레위 지파의 배치에 대하여 소개하고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 장정의 총 수와 레위지파의 특별한 위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성막 중심의 삶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1.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2절“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고 했다 여기 회막은 성막을 말하며 오늘의 의미로는 교회를 말한다 * 집의 출입문이 교회를 향하도록 하라
즉 이스라엘의 삶의 거처인 진 즉 천막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 배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생활의 모든 영역(동서남북) 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강조하신 것이다.
단지 숙영(잠을잠) 때문만 아니라 행진시 에도 성막중심의 진 배치를 함으로써 어느 환경과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사는 삶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은 없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진영배치는 죄악과 불의가 가득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소망 있는 일인가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결국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삶이다.
2. 성막 중심의 삶이란 상호 협력의 삶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살아가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부단히 필요하다 / 성막을 중심으로 한 진 배열을 보면
바로 이 협력정신이 강하게 들어있다 하나님께서는 동서남북 4방향의 진영을 각각 야곱의 아내와 첩들의 후손 지파를 고려하여 배치 하셨다.
그렇게해서 하나님께서는 혹 발생할지도 모를 감정적인 분규를 미연에 방지하고 각 지파들로 하여금 상호 협력하고 하나 되는 일에 힘쓰도록 조치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는 늘 협력하는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막2장 중풍병자 고침의 협력
3.성막 중심의 삶이란 질서와 조화의 삶이다
20세 이상으로 전투 가능한 수효는 603,550 명 이었고 그에 기준하여 여자와 노약자들을 합친다면 무려 2-3백만명으로 추산되는 큰 무리가 함께 숙영하고 이동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질서하고 혼란해 질수있는 대 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질서있게 진행 시켜 나갈수 있도록 특별한 지침을 마련해 주셨다 뿐만아니라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인구수를 적절히 균형있게 배치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해 지지 않도록 조치 하셨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많은 지파로 하여금 적은 지파의 약점을 보완 함으로서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질서있는 신앙생활과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원만하고 조화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 것이다.
목회자나 성도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하나님의 집의 질서를 위하여 직분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하나님의 교회의 여러 직임을 두신 것은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목사의 직임)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결론)이 뜻 깊은 주일에 드리는 회개와 소망의 기도의 제목입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듯이 우리들은 영적인 가나안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자
2.이스라엘이 성막중심으로 진을 쳤듯이 우리는 심령과 생활에서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성막은 예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중심의 삶이란 예수님이 나의 삶에 총 사령관이 되시는 것이요 내가 죽는 것입니다.
3. 교회생활에서 서로 시기하며 경쟁적인 삶을 사는가? 아니면 서로 돕고 상부상조하는 사역을 하는가?
4. 교회와 직장의 삶 가운데서 약한자를 돕고 짐을 서로 지는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2008년10월12일
행 5:12-16 교회는 병원입니다
당신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믿음의 영웅이 됩시다 아멘...
지난주 말씀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범해서 징벌을 받아 그 생명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능력의 역사는 많이 나타나고 예루살렘 장안에 소문이 크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능력의 역사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에게 이 병고치는 능력을 주셨는데 심지어는 베드로가 지나갈때 그 그림자에 덮힘을 받아도 병이 낳는 줄로 믿어서 사람들이 병든자를 침대 위 또는 길거리 담요 위에 뉘여 놓고 베드로가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예루살렘과 그 주위에 있는 동네 사람들까지 병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못 고치는 병이 없이 다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부흥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모인 무리들에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모든 사람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교회가 불치의 질병을 고치고 괴로움을 받는 모든 사람을 치료하는 그런 병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종합병원입니다.  이병원에서 인생들은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구제 불능이었던 사람들도 교회에 나아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형편없던 사람들이 신사가 되고, 숙녀가 됩니다. 불행에 찌들리던 사람들이 행복해 집니다 .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주신 이 병원에서 모든 것을 고침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질병에 허덕이고 여러 가지 질병에 지쳐 있습니다. 아니 다른 질병이 아니더라도 인생들은 저마다 지쳐 있습니다 돈에 지치고, 사람에게 지치고, 자기 자신에게 지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는것에 지쳤고,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심지어 자식이나 배우자에게도 지쳤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지침으로 살 의욕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수고와 질병도 이 좋은 교회라는 병원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시골 여성도 자식 간증)
교회는 병원입니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육신적인 질병이든지, 정신질환이든지, 가난에 관한 질병이든지, 다 고침을 받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경제의 문제나 건강의 문제로 고통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은 고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병원인 이 교회는 여러분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교회라는 병원에서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본문 16절을 보면 다 나음을 입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침 받는 순서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고침을 받을 수 있느냐?
1. 첫 번째는 교회로 나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교회로 나아와야 고침을 받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이 가로막아도 나와야 고침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다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솔로몬 행각은 기둥이 162개나 되는 큰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거나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붙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도 나온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에게 나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모든 불행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할 것을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거북이도 먼저 목을 뽑아 내야 앞으로 갈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지만 먼저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기도로 모일 때 함께 모이십시오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함께 모이십시오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주저앉으면 바로 그 자리가 실패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 모이고, 더욱 힘써 성공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사이 다니엘 21일 기도회로 매일 저녁 모이는데 소위 직분 받았는다는분들 가운데 한번도 참여치 않으신 분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각성하셔야 됩니다 20일 부터는 새로 삽결줄 33 기도운동이 시작됩니다 많이 작정 하십시요
2. 병원에 와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의 처방을 따라야 합니다. 수술할 병이면 수술을 해야 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의사가 금식하라고 하면 배가 고파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의사가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하면 다리를 잘라야 합니다 그래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하십시오 설교를 통하여, 또는 구역회를 통하여 또는 성령의 감동으로 받은 모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설사 다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불행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썩은 다리를 아끼려다가 온 몸을 잃는 것보다 썩은 다리를 잃고 온 몸을 얻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큰 것을 잃게 됨이 너무나 많습니다. (소탐대실)
여러분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설교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것과, 성경공부 모임을 통하여 배운 것을 행하십시오 그것이 모든 질병을 물리치고 복되게 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처럼 해야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믿지 말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합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눅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령과 진리에 기초해서 전파하는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함이 곧 하나님을 경외함이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아 주일을 성수하고 전도생활에 힘쓰고 십일조를 드리고 봉사의 일에 참여하는것이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믿으므로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요 말라기서 4:2 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송아지 뛰는 것 보셨습니까? TV 한국 대관령 목장/ 교회사슴 온 대지가 자기 것처럼 누비며 뜁니다. 여러분 순종 하십시오 복종 하십시오 그것이 어려워도 복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늘 그렇게 살 뿐입니다. 늘 그 질병에 시달리거나 더욱 힘겨워질 뿐입니다. 그러나 복종하면 큰 기쁨으로 뛸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회복되는 시간이 아주 조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와서 처방을 받거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회복입니다. 조금 있으면 건강한 몸으로 일어설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병원 되는 교회에 나와서 그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였다면 우리는 잠시 후에 모든 것이 치유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여 행하였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 우리를 불행하게 하던 모든 것이 물러갈 것입니다.
가난이 불행이었다면 가난이 물러갈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불행이었다면 정신적인 것이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잘못된 습관이 불행이었다면 그 습관이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조금만 더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안되는것 같아도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 우리는 봉헌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성전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우리에게 있었습니까? 안되는것 같았지만 하나님이 행하셨잖습니까? 세틀먼트 날자도 세번씩이나 어겻고 , 융자는 더욱 힘들어 졌고, 더욱 마지막 세틀시에는 깨질 단계까지 갔지만 하나님이 결국 도와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병원인 교회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조금 그 축복이 늦는 것 같을 때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그곳에 좋은 곳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행복한 곳이 있습니다. 서둘러 주저앉아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였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순종하셨다면, 복종하셨다면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준비하신 치료의 광선이 비출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종하지 못하였다면 복종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지 복종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병원이 되는 교회에 날마다 다니면서도 늘 병든 인생으로 그렇게만 살 것입니다. 더욱 복종하고 순종하여 기적의 치유를 경험하는 모두가 되십시오 교회는 병원입니다 처방을 따라 순종하고 기다리면 누구든지 고침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성령의 감동과 설교 말씀에 순복하여 큰 축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안계수 목사
아름다운감리교회
  Cate: 2008년도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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